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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친교의 삶
조회수 | 11
작성일 | 20.09.21
친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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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함께 나누며 담소를 나눈다는 것은 친교의 표시입니다.
잔치에 음식과 술이 빠질 수 없는 것은 기쁨을 표시하는 가장 직접적인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혼자하는 식사만큼 밋밋하고 재미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끼니를 채우는 것이지 사랑을 먹고 생명을 나누는 잔치의 즐거움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당신의 식탁에 초대하셨다는 것은 그들을 친구로 대접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시혜(施惠)의 대상이거나 그저 마지못해 만나야 하는 타인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 나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과의 만남은 쉽지만,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출신이었던 마태오를
당신 제자로 삼으셨다는 것은 그 누구도 예외없이 당신의 제자로 받아들이심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에게나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앉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바로 나도 그 자리의 일부입니다. 내 스스로 모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기 때문에라도 그들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인간을 친구로서 받아들이는 일,
이 일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중점을 두고 노력해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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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씨튼 수녀회 최혜영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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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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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 마태오는
세리로서 로마를 위해 자기 동족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을 하였다. 그래서 동족에게는 반역자로 미움을 받았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을 죄인 취급했다.

예수께서
그런 사람을 가까이 부르셨다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더욱이 마태오가 자기 집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푼 것은 예수께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복음은
‘많은’ 세금 징수인들과 ‘죄인들로 알려진 사람’이 그 만찬에 왔다고 전한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더욱더 충격을 받았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사도직에 적합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사람을 교회 초석 하나로 뽑으셨다. 그러나 마태오는 예수께서 부르셨을 때 자기가 죄인임을 솔직히 인정했다. 예수께서 보시기에 그는 진리에 온전히 마음을 열고 ‘일어나서 예수를 따랐다’.

마태오란 이름에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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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속회 선교사 박강수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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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제의 부끄러움과 비참함을 딛고 다시 한번 기꺼이 일어서겠습니다!

그 옛날 국경지대 왁자지껄한 세관에 넋잃고 앉아있던 세리 마태오의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는 딸린 부양 가족들 생계를 도맡은 가장으로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덕분에 돈도 좀 벌었습니다. 가족들 앞에 얼굴을 들게 되었습니다. 의식주 걱정없이 그럭저럭 살아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깊은 회의감과 절망감이 수시로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세리라는 직업을 계속 해나가야 할 것인가?

하루 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세관에 앉아 환전해주는 일, 암암리에 급전을 빌려 주고 막대한 이자를 챙기는 고리대금업, 동족을 등쳐먹는 일, 윗선에 상납하는 일, 이중 장부 쓰는 일인데...

그런 마태오 앞에 누군가가 나타납니다. 선량하지만 강렬한 눈매를 지니신 분입니다. 지금 네 마음 깊숙한 곳을 꿰뚫고 있다는 표정의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마태오야! 너 지금 여기서 무엇하고 있느냐? 이 일이 인간로서 가당키나 한 일이냐? 지금 즉시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당장 일어서서 나를 따라라!”

천둥같은 주님의 음성을 마태오는 거스를수 없었습니다. 애지중지해온 장부도 금고도, 세리라는 안정된 수입원도 즉시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끝닿는데 없이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꽉 막힌 이 시대, 뭘 하기도 그렇고 안하기도 그렇습니다. 대체 탈출구는 있는걸까? 하는 큰 불안감과 더불어 우울감이 슬금슬금 찾아옵니다. 별의 별 생각을 다 해보고, 이런 계획 저런 아이디어를 고민해보지만, 너무나도 큰 막막함과 무기력함 앞에 아무것도 하지못한채 그저 주저앉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영혼없는 얼굴, 생기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얼굴, 숨만 쉴뿐이지 죽은 얼굴로 하릴없이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오가 들어있습니다.

은혜롭게도 주님께서는 그 옛날 세리 마태오를 부르시듯,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합니다.

어둡고 음습하고 비정한 세관에만 앉아있지말고, 밝고 화사하며 햇살좋은 곳으로 걸어 나와야겠습니다. 모든 것이 제한되고 답답한 조건 속에서도, 하루 매순간을 보다 의미있고 역동적인 순간으로 꾸며가야겠습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왔다.”(마태오 복음 9장 12~13절)

역대급 대죄인 마태오를 당신의 제자로 삼아주신 예수님의 활짝 열린 개방성을 묵상하며, 똑같은 죄인인 저 역시 주님께 감지덕지하며, 그저 감사의 찬가를 반복할 뿐입니다.

“저 같이 부당한 죄인을 당신 가까이 불러주신 자비하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홍빛보다 붉은 감당하기 힘든 죄들, 머릿칼보다 많은 숱한 죄들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롭게 당신의 제자로 불러주시니, 온몸과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죄인들의 주님은 세세대대로 찬미받으소서! 저는 그저 매일 좋으신 주님 자비와 은총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어제의 부끄러움과 비참함을 딛고 다시 한번 기꺼이 일어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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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2020년 9월 21일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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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의 여정

-부르심, 들음,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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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배치된 말씀이 참 풍부하고 은혜롭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줍니다.

‘부르심의 여정-부르심, 들음, 따름-’,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마침 어제 교황님의 삼종기도후 메세지도 이와 일치하며 기뻤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everyone를 부르신다. 언제나always 부르신다’라는 제목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복음의 성 마태오, 제1독서 에페소서의 성 바오로, 모두 주님의 부르심에 듣고 따름으로 응답한 분들입니다.

주님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분들입니다.
말 그대로 주님이 이들의 사랑이자 운명이 된 분들입니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주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이분들의 인생은, 또 우리의 인생은 어땠을까요? 마침 어제 방문했던 어느 형제분도 주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도저히 살아 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시대에 식자들은 연대와 협력을 주장합니다.

오늘 복음의 세리 마태오는 말 그대로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었고, 반면 마태오를 부르신 예수님은 연대와 협력의 사람이셨습니다. 일체의 편견없이 현재 있는 그대로의 마태오와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부르십니다. 참으로 과거에 자유로웠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부르심은 순전히 은총입니다. 주님께서 불러야 따라 나서지 않습니까? 부르심에 듣고 즉시 따라 나섰던 세리 마태오, 내면은 주님을 깨어 찾았기에 부르심을 들었고 즉시 따라 나섰습니다.

참으로 깨어 잘 듣는 것이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숱한 부르심을 듣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늘 귀기울여 주님의 부르심을 듣는 경청이, 또 들음과 즉시 주님을 따라 나서는 일이 얼마나 결정적인지요. 한 두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매일 끊임없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따라 나서는 삶이 우리 믿는 이들의 일상입니다.

모두가 예외없이 주님께 부르심의 대상입니다.

참으로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따름으로 주님을 닮아갈 때 비로소 참 나의 실현입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영원한 롤모델은 예수님이며 바로 이 예수님과의 신뢰와 사랑관계가 결정적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르심의 대상임을 예수님은 분명히 밝히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9,12-13).

얼마나 은혜로운 주님의 초대의 부르심인지요. 자비하신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참으로 부르심이 필요없는 건강한 사람, 의인은 몇이나 될런지요. 잘 들여다 보면 병자아닌 사람, 죄인 아닌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참으로 모두가 주님으로부터의 치유와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매일 평생 끊임없이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듣고 따라야 합니다. 이래야 늘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부르심은 애매하거나 추상적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요 현실적입니다.

첫째, 회개에로 부르십니다.

회개는 우리의 기본적 삶의 자세입니다. 부르심에 내포된 회개입니다.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늘 회개에로 부르시는 주님이요, 바로 오늘 복음의 세리 마태오가 회개하여 즉시 주님을 따라 나섭니다. 늘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이요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저절로 회개에의 응답이요 회개와 더불어 겸손도 뒤따릅니다.

둘째, 예수님께로 부르십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분별하여 따르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듣고 따라야 할 분은 참 스승이신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거짓 길로 부르는 우상들의 유혹도 많습니다. 이런면에서 세리 마태오의 들음은 정확했고 지체없이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참으로 복음의 세리 마태오처럼 깨어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 나서는 일이 얼마나 우리 영성생활에 본질적이요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셋째, 성덕聖德에로 부르십니다.

성덕에로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바오로의 권고대로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온유溫柔란 말과 더불어 저절로 떠오르는 온후溫厚, 온화穩和, 온건穩健이란 말마디들입니다. 참으로 따뜻하고 다정한 인품의 성덕에로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넷째, ‘하나’의 일치에로 부르십니다.

참으로 회개하여 주님을 따라 성덕의 길로 따라 나설 때 하나에로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마련입니다. 이래야 갈림없는 온전한 통합적, 융합적 인간입니다.

어느 유명 정치인과의 인터뷰 한 대목입니다.

-“20년 집권을 책임져야 할 후배 정치가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습니까?” “제일 중요하게 보는 건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입니다. 생각, 정책, 생활 모든 게 총체적으로 공적인 사고방식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모든 걸 구조적으로 볼 줄 알고, 통시적으로도 공시적으로도 다보고, 균형을 잡을 줄 알고, 생각도 중요하며 자세도 중요해요. 제가 공무원 교육을 하며 늘 하는 이야기가 삼실입니다. 진실, 성실, 절실, 이 자세가 퍼블릭 마인드의 기본입니다.”

퍼블릭 마인드의 사람, 바로 통합적 인간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예수님이요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십니다.

하나의 귀착점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만물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안에 계십니다. 하느님 한분으로 충만한 세상 안에서 바로 주님 안에서 숨쉬며 움직이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살아 계신 하느님 증명인 겁니다.

요즘 산책중 시냇가 깊고 맑은 일급수 여울물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무수한 물고기들이 노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깊고 고요한 현존 안에 자유로이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다섯째, 교회 공동체에로 부르십니다.

최종의 결정적 부르심입니다. 주님은 세리 마태오을 부르시어 제자들의 공동체 식탁에 참여시킵니다. 다양성의 일치에 기초를 제공하는 연대와 협력의 가시적 빛나는 표지가 공동기도요 공동식사입니다. 차별과 혐오가 말끔히 배제된 참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은 공동기도와 공동식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공동체의 일치는 획일화가 아니라 다양성의 일치, 바로 조화와 균형입니다. 바로 역할 분담에서, 즉 우열이나 호오, 경쟁과 비교가 아닌 연대와 협력의 상호보완과 섬김의 직무와 소임에서 잘 드러납니다. 공동체 성원들의 직무는 참 다양합니다. 바오로의 설명이 적절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려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층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자랑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은총입니다. 이를 깨달아야 비로소 겸손입니다. 또 혼자서의 성장과 성숙은 일치는 없습니다.

주님의 교회 공동체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할 때 공동체와의 일치와 더불어 성장과 성숙의 삶이요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도달합니다. 공동체를 떠난 성장과 성숙, 충만한 삶은 환상이요 착각일 뿐입니다.
주님의 이 모든 부르심을 총괄 종합하는 것이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부르심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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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0년 9월 21일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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