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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위령의 날(11월 2일) 둘째 미사 독서와 복음
조회수 | 49
작성일 | 20.11.01
제1독서 :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지혜서 3,1-9 <또는 3,1-6.9>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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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독서 :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5장 17절-21절

형제 여러분,
17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20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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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장 25절-30절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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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의 속박이나 굴레에 놓이게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온전한 자유인이고 싶어 합니다. 멍에는 바로 속박이고 굴레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멍에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주님께 속박받고 구속받고 싶어 합니다. 주님만이 참행복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죽음의 굴레에서 구원하시어 영원한 안식을 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죄로 찌든 우리의 삶을 그분께로 돌리고, 그분께서 주시는 멍에를 멜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주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멍에는 의로움, 평화, 희망, 온유와 겸손, 사랑과 생명의 멍에입니다. 그 멍에는 실천할수록 편하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세상 안에 사는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걸어가야 하는 인생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곧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고, 그분만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평화와 진리와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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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11월 2일 둘째 미사
  |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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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또 한 분의 교우를 주님께 보내 드립니다.
이 사람이 살아온 시간 동안 지은 죄는 묻지 마시고 그가 살아 내야 했던 삶의 멍에만 생각해 주십시오. 설령 그가 주님께 충실한 믿음의 삶을 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에게 운명처럼 부여된 삶의 멍에를 한평생 지고 살아 냈다는 그것만으로 그는 아름답고 위대해 보입니다. 주님, 저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본당에서 장례 미사를 드리고
고인과 장례 행렬이 성당 문을 빠져 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독백처럼 바치는 저의 기도입니다. 장례 때마다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는 생각할 것 없이 한 사람의 영혼을 주님께 보내는 순간은 그가 살아온 일생이 그저 장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사실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해서
‘잘 살았다’
또는 ‘못 살았다’ 할 때,
주님 앞에서 그 차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판단과 평가일 따름이지요.
주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당신의 자녀가 비록 이승에서 못난 삶을 살고 돌아왔다고 해서 주님께서 당신 자녀에게 분노하시고 섭섭해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 눈에는 그가 살아왔던 그 모든 이야기가,
설령 우리 눈에는 온통 죄스러운 삶일지라도, 주님께서는 한계와 약함을 가지고 최선을 살았던 그의 장한 모습만을 바라보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도, 우
리 자신도, 주님의 마음이 되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부족해 보이고 결점투성이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가 가진 약함과 한계를 가지고 그 나름대로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죄스럽고 못난 모습도 있는 그대로 주님께서는 사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모든 경험을 다 하신 분이시기에 누구보다 우리의 약함과 한계를 잘 아십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면 빛 속에서 사는 삶이 됩니다. 곧 우리 인생의 멍에는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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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1년 11월 2일 둘째 미사
  |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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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많은 교구에서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를 이루려면 긴 인내의 시간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소공동체 모임이 가장 잘 이루어지는 곳이 어디인지 혹시 아십니까? 바로 성당 묘지입니다. 한 번 묘지에 묻히면 이사를 가는 분도 거의 없고,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위령의 날’을 맞아
많은 분들이 성당 묘지를 찾아가 미사를 드립니다. 묘지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문득 <임옥당>의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무덤들 사이를 거닐면서
하나씩 묘비명을 읽어 본다.
한두 구절이지만
주의 깊게 읽으면 많은 얘기가 숨어 있다.

그들이 염려한 것이나
투쟁한 것이나 성취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짜로 줄어들었다.
살아 있을 적에는
지위와 재물이 그들을 갈라놓았어도
죽고 나니
이곳에 나란히 누워 있다.

…… 홀연히 나는
내 목숨이 어느 순간에 끝날 것을 본다.
내가 죽음과 그렇게 가까운 것을 보는 순간
즉시로 나는 내 생 안에서 자유로워진다.
남하고 다투거나 그들을 비평할 필요가 무엇인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기 힘듭니다. 그리고 죽음이 무섭다고 생각한다면 그 원인은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자각하게 되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죽음은 그다지 두렵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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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2년 11월 2일 둘째 미사
  |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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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다 못해 쓸쓸함이 느껴지는
늦가을 밤에 본당 신부로서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어느 하루를 떠올립니다.

그날 아침 일찍,
저는 한 교우의 장례 미사를 집전하였습니다. 마음이 안타깝고 착잡하지만 오열하는 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날 정오에는 한 부부가 탄생되는 젊은 남녀의 혼인 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미사 중에 그들은 조금 긴장한 모습이나 행복한 미소가 흘렀습니다. 떠나는 이를 애도하고 그 가족을 안타까워하던 장례 미사의 그늘이 여전히 제 마음에 남아 있지만, 젊은이들의 구김살 없는 행복에 함께 물들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날 오후에는
아기들에 대한 유아 세례가 있었습니다. 아기들은 생명이, 탄생이 무엇인지를 존재로 보여 주었습니다. 세례수를 부으며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순수한 기쁨이 번졌습니다. 그 순간 아이의 얼굴은 영적 생명력과 육신의 생명력이 모순 없이 일치하는 기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이로운 순간에도 그날 아침 제 마음을 헤집은, 죽음과 이별이라는 인간 조건의 그림자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하루는 참으로 슬픔과 기쁨,
경이로움과 허무감이 그 경계를 알 수 없이 제 가슴속을 드나들면서 보람과 함께 버거움도 느끼게 하였습니다. 사제로 사는 가장 큰 매력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의 모든 과정을 만나고 도울 수 있는 것이라고 한 선배 사제의 말이 기억납니다. 저 또한 그러한 일에 깊이 감사해야 한다고 느끼며 늘 기도해야 함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그날 장례 미사 때 읽었던
영국의 뉴먼 추기경의 기도 시 ‘이끄소서, 온유한 빛’의 첫 구절을 오늘 밤 저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끄소서, 온유한 빛이여. 사방은 어두움에 잠기오니, 그대 나를 인도하소서. 밤은 깊고 집까지는 길이 멉니다. 나를 인도하소서. 내 발을 지켜 주소서. 먼 경치를 보려고 구하는 것이 아니오니, 한 발치만 밝혀 주시면 족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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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11월 19일
  |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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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 성월의 끄트머리인 까닭인지
죽음에 대한 묵상의 기회를 자주 가집니다. 이 죽음에 대한 묵상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합니다. 죽음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볼 때 삶이 더욱 절실해지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손톤 와일더의 희곡 『우리 읍내』는 죽음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삶의 소중함을 애잔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젊은 주부 에밀리가 일찍 죽어, 막 죽은 이들의 세계인 마을의 무덤가로 오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단 한 번이라도
산 이들의 세계로 돌아가 보기를 염원했던 그녀는 마침내 행복했던 열두 살 때의 어느 하루로 되돌아가는 기회를 갖습니다. 그 시절의 행복을 되찾으려던 그녀는 다시 찾은 이승에서 사람들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얼마나 맹목적이고 이기적으로 보내며 허무하게 사는지를 깨닫고 비통 속에 말합니다.

“몰랐어요, 모든 게 그렇게 지나가는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데려다 주세요, 산마루 제 무덤으로요. 아, 잠깐만요. 한 번만 더 보고요. 안녕, 이승이여. 안녕, 우리 읍내도 잘 있어.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과 커피도, 새 옷과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묻습니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순간?”

사색의
이 계절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은 지금 여기서 더욱 생생하게 살게 하는 길을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신앙의 눈으로 죽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죽음으로 단절되는 유한한 삶에서 슬픔과 허무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삶의 빛나는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아 있는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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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11월 24일
  |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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