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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감사의 마음
조회수 | 2,942
작성일 | 07.09.24
요즘 저는 아침에 너무나 바빠졌습니다. 글쎄 전과는 달리 한 가지 일이 더 생겼거든요. 그것은 가을이 되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맞습니다. 성지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쓰는 일이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가뜩이나 아침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떨어진 낙엽을 쓸다보니 더 바쁜 아침 시간을 맞게 되네요.

어제 역시 낙엽을 열심히 쓸고 있었습니다. 성지 입구까지 낙엽을 다 쓸고 난 뒤, 다 쓸었다는 성취감을 느끼며 뒤를 도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글쎄 제가 쓸었을 때와 똑같은 양의 낙엽이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괜히 쓸었다’라는 생각과 함께 화도 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떨어진 낙엽을 가만히 나두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다신 낙엽 안 쓸꺼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하긴 떨어진 낙엽을 밟는 기분도 좋으니까요.

오후가 되었습니다. 성지의 마당에서부터 입구까지 떨어진 낙엽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바닥을 낙엽이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니라서 너무나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바람에 의해서 곳곳에 조금씩 모여 있는 낙엽이 가뜩이나 정돈이 안 된 성지를 더욱 더 어수선하게 만들더군요.

결국 저는 빗자루를 들었습니다. 다시 성지 입구까지 낙엽을 다 쓸고서는 ‘또 떨어져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뒤를 도는 순간, 저의 예상과 달리 비교적 깨끗한 성지의 길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상쾌하던 지요. 낙엽이 아무리 떨어진다고 해도 낙엽을 쓰는 것이 안 쓰는 것보다는 훨씬 깨끗한 것이지요.

생각해보니 이 낙엽을 쓸면서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낙엽을 쓸고 난 뒤에 깨끗한 길을 보면서 한 가지 일을 이뤘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낙엽을 쓸면서 땀을 흘리게 되니 저의 건강에도 좋겠지요. 성지에 오신 분들도 깨끗한 길을 보면서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것 역시 감사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낙엽이 떨어짐으로 인해 시간의 빠름을 생각하게 하고, 다시금 나의 삶을 정리해볼 수가 있어서 더욱더 감사할 일이 아닌가 생각하네요.

어떤 일이든 감사할 일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감사할 일을 찾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리 조상님들은 바로 이러한 감사의 삶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 그 절정에 자리한 팔월 한가위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 되었던 못 되었던 간에, 그래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조상님 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 조상님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 역시 오늘 한가위 축제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요? 조상님들의 감사하는 마음은 사라진 채 하나의 행사 치레 정도로만 오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가위를 지내는 오늘, 주님과 조상님께 그리고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나에게 힘을 주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내게 해 준 것이 뭐 있다고…….’하면서 감사의 조건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내가 숨 쉬면서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이라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이런 감사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오늘 하루 이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기쁘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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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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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귀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짝반짝 빛나서? 아니면 사람들이 금을 좋아하니까? 색깔 때문에 귀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도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금보다도 예쁜 색깔이 많으며, 그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꼭 귀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꼭 귀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라면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라면을 좋아한다고 해서 ‘라면이 귀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금을 귀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금이 세상의 모래처럼 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다면 지금처럼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모래가 이 세상에서 아주 적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모래를 금고에 모셔놓고 애지중지할 것이며, 중요한 행사의 경품으로 모래가 나면 사람들은 최고의 경품이라고 말하면서 서로들 그 경품을 타기 위해서 앞 다툴 것입니다.

그 밖의 모든 사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지 않은 것이 흔한 것보다도 훨씬 가치가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흔하지 않은 것들을 모으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흔하지 않은 사물에 대해서는 높은 격을 부여하면서도, 사람에 대해서는 왜 높은 격을 부여하지 않을까?”

사람들 중에 똑같은 사람이 있을까요? 쌍둥이라 할지라도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고 하지요. 또한 사물들처럼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 고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여 또 다른 창조 활동을 할 수 있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하고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사물에만 더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 어떤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만 필요한 재물에만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필요한 보화를 쌓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라는 한가위입니다. 이렇게 기쁜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가위에 나는 과연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지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한가위는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지요. 따라서 먹고 마시면 그만인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지요. 이렇게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과 조상님 덕분이라고 말하면서 감사의 제사를 바쳤던 것입니다. 즉, 내가 얻은 그 물질 자체에 소중함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조상님 그리고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더 큰 소중함을 부여했기 때문에 이렇게 큰 명절을 통해 함께 나누었던 것입니다.

조상님들의 이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들은 한가위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까요? 사물인가요? 아니면 사람인가요?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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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예수님께서 모든 탐욕을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탐욕을 물리쳐 버리라고, 없애버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본성상 탐욕이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계셨나 봅니다.

탐욕은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소유하기를 원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재물 차원을 넘어서 권력, 명예 등 보이지 않는 것에 까지 탐욕은 그 대상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탐욕에 대한 경계의 말씀을 하신 다음에 당신께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을 하십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시고자 하신 비유의 요점은 사람의 생명은 하느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과 지상이 아닌 하늘나라에 재화를 쌓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비유에 탄성을 울리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비유의 시작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로 시작하여 주위를 당신 쪽으로 끌어당기시는 듯 하더니 갑자기 그들의 시선을 하느님께 돌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순간, 사람들의 눈이 열린 것이지요.

‘아, 우리 삶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구나! 우리는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도록 노력해야하는 구나!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사실 예수님의 비유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어리석은 부자도 선택의 갈래에 놓여 있었습니다. 부자는 자신이 땅에서 거둔 수확물을 보고 이렇게 독백하지요.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라는 건 우리 삶에 무수히 놓여 있는 선택의 기로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는 이 시점에 서게 되었을 때, 대부분 현재 나의 상태를 살펴보고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점검을 한 후에 마지막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내어 행동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인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걸 알아내는 과정에 있어 나는 나의 탐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아마 한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에게는 또 다시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이 올 터인데, 그때마다 먼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건 무엇일까?’, ‘그럼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재화를 하늘에 쌓는 삶 말입니다.

김인섭 바오로 신부
  |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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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산만을 추구하던 어떤 부유한 사람에 대한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유한 사람을 우리가 묵상해보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며 그가 버는 모든 재물은 오직 자신을 위한 것임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어떤 부유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께 이러한 질문을 하는 저 자신도 이러한 모습을 지니고 살았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가족들이 다 모여 서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재미있는 게임을 하며 즐거운 한가위를 맞이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 시절 저는 함께 모인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영원할 것 같은 그 시간도 저의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시고 난 후 연기처럼 사라져 이제는 한가위에 집에 가도 그때의 그 행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 사랑을 나누던 어린 시절의 그 기쁨이 저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마치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우리 가족에만 집착하며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이 오직 우리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던 저의 이기적인 모습이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어떤 부유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왜 나쁘겠습니까? 가족들을 사랑하여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왜 나쁘겠습니까? 하지만 마치 그것만이 전부이고 영원한 듯 착각하며 타인에 대해서 배타적이고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집착하는 그 모습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문제인 이유는 그것만을 추구하며 살다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그를 지탱하고 있던 뿌리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내가 사랑하고 집착하던 돈, 명예, 권력,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대로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듯이 느껴져도,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져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하느님의 뜻, 즉 가난한 이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내가 용서받은 것처럼 용서되지 않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언제나 의로운 것을 선택하려는 삶을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들을 얻고 더욱더 풍만한 재화를 얻으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깊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천교구 김상우 신부
  |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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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후배 신부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미 주님 곁으로 건 어떤 신부를 가리키면서 ‘형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주님 곁으로 간 그 신부보다 이 후배 신부의 나이가 더 많거든요. 그래서 “네가 더 나이 많잖아?”라고 이상해서 물었지요. 그랬더니 “제 동기들끼리 이렇게 하기로 했어요. 무조건 먼저 주님 곁으로 가면 ‘형님’이라고…….”라고 대답합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저의 나이가 더 많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주님 앞에서의 삶은 저보다 더 선배님이 분명하니까요.

더군다나 우리 가톨릭 교리 안에는 통공교리가 있지요. 즉,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다고 우리는 고백합니다. 공은 서로 통한다는 말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이들과 연옥 영혼들 그리고 천상 영광중에 있는 성인들과의 일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 공이 연옥 영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며, 천상 영광중에 있는 성인들의 전구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보다 먼저 주님의 곁으로 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더불어 전구를 청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공을 주고받으면서 삽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을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움을 주는 그 많은 사람들, 여기에 주님의 곁에 계시면서 영광 속에 있는 성인성녀들의 도움 역시 감사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혹시 아무런 감사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감사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큰 위력을 가지면서 사람의 인생을 바꿔주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찡그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갖고 표현하면서 살다보면 모든 것에 고맙고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얼굴을 찡그리면서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한가위를 맞이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날인가요? 단순히 일하지 않고 편하게 쉬는 날일까요? 아닙니다. 온 가족이 모여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동시에 우리를 위해 전구해주시는 먼저 가신 조상님들께도 감사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사람의 생명은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면서 더 중요한 것을 쫓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즉, 이 세상 안에서 부유한 사람이 아닌,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은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행복한 한가위를 보내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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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즐거운 한가위 명절 보내고 계십니까?

한가위 속담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가위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기에 많은 음식을 장만해서 잘 먹고, 즐거운 놀이를 하며 지내게 되므로 늘 이 날만 같았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때에는 배불리 먹지 못하고, 일에만 시달렸던 백성들의 소망을 대변했던 말이었다고도 합니다. 또한, 송편을 빚어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풍성한 한가위 명절에 자신들만 챙겼던 것이 아니라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해주신 하느님과 조상님들께도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한가위 명절을 맞아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맺은 결실은 전부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들입니다. 물론 내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도움과 하느님의 도우심이 더 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한가위 명절에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신 우리 가족들과 조상님들께도 감사를 드리면서 위령미사를 봉헌합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가 태어나고 이만큼 살 수 있게 된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조상님과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부자를 보면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언제나 저런 말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복음에 나온 부자에게서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감사드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곡식과 재물이 많았던 부자의 창고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쌓아두고 있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겠지만 그럴 시간까지는 없었나 봅니다. 만약에 부자가 자신의 삶에 만족했었다면 하느님께서 목숨을 거두시기까지 자신의 재물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에 만족한 사람이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압니다. 그래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색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부자가 자신의 재물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었다면 하느님께서 조금 더 이 세상에 있도록 허락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세상은 점점 발전하지만, 아직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생활에서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가위 명절만이라도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윗날만 같아라.’라는 마음으로 하느님과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시는 풍성한 명절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 인천교구 박진양 베드로 신부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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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는데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 지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실패한 것일까요?

저는 교구청에만 두 번 들어갔습니다. 한 번은 전산홍보실장으로, 또 한 번은 성소국장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지요. 두 번째로 교구청에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조금 원망의 마음도 있었습니다. 본당 주임신부로 정말로 재미있게 지내고 생활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사무 업무를 보는 교구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지내는 본당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두 번의 교구청 생활을 마치고 안식년을 보내면서 생각해보면 교구에 두 번이나 들어가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업무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특히 성소국에서 신학생들을 만나면서 후배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함께 많은 신부들이 모여 살다보니 모르던 신부를 알 수 있었고, 교구청 신부들과 함께 하는 사목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른 길 역시 좋은 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항상 내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길만이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최악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길, 정말이지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오늘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다른 말로는 추석이라고 하지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단지 달을 구경하는 날일까요? 그보다는 햇곡식으로 음식을 마련하고 조상님들을 기억하면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받은 은혜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있게끔 해준 조상님과 자기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시는 주님께 원망을 드리는 사람도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바로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길만 좋은 길이라는 착각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하고 원하는 길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한가위 명절에 주님께서는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라는 복음 말씀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길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그 길을 기쁘게 또 감사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처럼 가장 좋은 오늘 내 마음을 바로잡아 주님과 조상님들께 감사드릴 수 있을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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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있었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집 근처에서 우연히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보드를 타고서 언덕을 내려오는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보드 위에서 껑충 뛰는 모습까지 보면서 저 역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용돈으로는 비싼 보드를 살 수 없어서 아쉬움만 간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드만 있다면 저 역시 멋지게 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요.

이러한 저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손재주가 좋은 제 바로 위의 형님께서 나무에 바퀴를 달아서 스케이트보드 비슷하게 만든 것입니다. 집에 보드가 생겼으니 멋지게 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형님이 직접 만든 보드 위에 올라서는 순간에 별 생각이 다 나는 것입니다.

‘과연 잘 탈 수 있을까?’, ‘혹시 넘어지지는 않을까?’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이 보드 위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올라타면 넘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차마 탈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만 있다면’ 등의 환경 탓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할 수 없는 것은 자기 스스로 간직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용기를 내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에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 명예, 지위, 환경 등의 탓을 외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러나 그러한 환경 탓을 하기 전에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내 의지가 먼저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 중의 하나인 한가위입니다. 수확의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불평불만의 마음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됩니다. 마치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필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지금의 상황을 헤쳐 나가는 스스로의 용기인데 말입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더 큰 곳간을 지을 정도로 재화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편안히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할 것 같았지만, 죽음이 찾아오자 모두 헛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어리석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 세상에 보화를 쌓는 사람이 아닌,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 아닌,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포기하고 좌절하면서 남 탓만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 있게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7년 10월 4일
  |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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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수확의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지금 자신이 있게끔 해 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간이기 때문에 이런 말이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풍요로움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추수할 것이 많아 기쁜 날이고, 그 기쁨을 가족과 조상님과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나누는 것을 뛰어넘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에게 원두커피 한 봉지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방에 들어와 커피 봉투를 열자 진한 커피 냄새가 너무 좋았습니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셔야겠다 싶어서 원두커피를 분쇄기로 갈고 물을 끓여서 커피를 내렸습니다. 진한 향기를 내는 커피가 제 앞에 놓였습니다. 기분이 좋았고 행복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다가 그만 실수로 손으로 커피잔을 쓰러뜨렸고 책 위에 커피를 쏟은 것입니다. 얼른 책 위의 커피를 종이로 닦았지만 누런 커피 자국이 선명합니다. 짜증이 밀려듭니다. 조금 전까지 커피 한 잔에 큰 기쁨을 얻었지만, 잠시 뒤 커피 한 잔에 짜증과 화가 밀려드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모두 그렇지 않을까요? 내게 행복을 주는 것처럼 생각되는 그것이 잠시 뒤에는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의 것은 영원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생명은 어떻겠습니까? 이 세상 안에서 영원히 생명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는 미래를 내다보지 않습니다. 눈을 들어 하느님을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마음을 위해 하늘의 보물을 얻는 것은 조금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땅에서 소출을 거두듯이 자기 목숨의 길이를 스스로 정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현재의 것들에 만족하여 “먹을 것이 많으니 먹고 마시며 즐기자.”라는 마음에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더 중요한 길, 지금 현재를 뛰어넘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승의 삶은 짧고, 누구나 예고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준비 없이 최후를 맞아서는 안 됩니다. 성 암브로시오의 말씀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은 본디 우리 것이 아닙니다. 덕행만이 죽은 자의 동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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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19년 9월 13일
  |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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