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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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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원] 하느님의 선택 : 평범성, 일상성
조회수 | 2,363
작성일 | 09.03.25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시켜 마리아에게 당신의 구원계획을 알리는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온 누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보잘것없는 시골 처녀를 구원사업의 동반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세도 있는 양가집 규수가 아니라, 한갓 시골 처녀에 불과한 마리아를 택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다윗이 계획한 성전이 아니라, 나자렛 촌구석을 택하신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과 보잘것없는 곳이 하느님 구원의 신비가 드러나는 현장이 되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도시 한복판이, 땀 흘리며 일하는 작업장이, 또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우리의 처지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무대가 된 것이다.

한편 마리아는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전해 들었지만 두려움과 놀라움에 사로 잡혔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불미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에서는 죽어 마땅한 죄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였다. 약혼자가 있는 몸으로서,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아이의 잉태를 온전히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한 마리아의 순종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약혼자에게 파혼당하며 심지어는 죽을 위험을 받아들이겠다는 동의요, 결단이었다. 이러한 마리아의 순명은 영원히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하느님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잘것없는 인간의 동의와 수락을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동의 없이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는다. 이는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느님께서 인간을 필요로 하신다는 말씀이다. 소박한 곳에서 당신의 뜻을 실현시키시는 하느님과 나약한 인간의 동의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오늘 복음말씀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위대한 사건이나 거창한 모습으로 오시지 않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조용히 찾아오신다. 즉,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학교생활 속에서 당신의 뜻을 펼치시기 위해 오신다. 하느님께서는 평범한 부엌으로, 일터로, 교실로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분은 오셔서 우리의 처지와 의견을 귀담아 들으신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당신 구원 사업의 동반자가 되어달라고 기다리신다. 그분은 우리 서로가 깊은 대화를 하고, 서로의 의견과 처지를 존중하기를 원하신다.

우리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귀 기울이는 어디에서나 하느님께서는 기쁨과 희망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정운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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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우리는 오늘 부활시기를 보내면서 동시에 주님 탄생 예고를 듣고 있습니다.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기초적인 믿음이요,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부활했다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죽음은 살아왔음을, 그리고 살아왔다는 것은 탄생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탄생 예고를 듣는다는 것은 새로운 준비요, 새로운 시작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과 부활이라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 탄생의 예고를 들은 성모님께서는 탄생 소식과 더불어 주님이 함께하심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들은 우리도 주님께서 가져다주신 부활의 기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며 당신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우리도 “저는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신 당신 안에서 영원한 삶이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조성풍 신부
  |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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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가 펼쳐진 성경이 된다면

예수님의 탄생은 이미 예고된 것, 하느님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탄생과 역할 또한 계획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분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 이곳에서 이루도록 그분께서 내게 주신 일을 성심성의를 다해 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잠시 틈을 보이면 어느새 내 맘속에 욕심과 유혹 등이 비집고 들어와 내 삶의 주인이 된다.

우리 각자한테는 하느님께서 뜻하신 역할이 있다. 그것은 사회생활의 직무거나 가정,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일 수도 있다. 비록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하찮고 비천하다 할지라도 그 일을 나에게 맡기신 분, 나에게 그 자리에 있도록 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각자의 몫에 충실하고 그 일을 통해 주님 말씀을 실천하며, 일자리를 성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부모로, 교회 봉사자로, 가게 주인이나 점원으로, 선생님으로, 회사원으로 어떤 일을 맡고 있더라도, 그 일을 통해 주님의 가르침을 드러내고, 우리 각자가 펼쳐진 성경이 된다면 천국이 따로 있겠는가. 비록 현실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더라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통해 당신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준비하고 뜻하신 바 있으리라는 희망을 잃지 말자.

▶ 구인회 신부
  |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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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서약과 책임

혼인서약은 혼인하는 당사자들이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이런 식으로 서약을 합니다.

“나 신랑 아무개는 신부 아무개를 아내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부요하거나 가난하거나... 아내만을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며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서약합니다.”

물론 신부의 서약도 이와 크게 다름이 없습니다.

이미 혼인서약을 하면서 두 사람은 그들이 함께 걸어가야 할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오더라도 사랑엔 변함이 없을 것임을 미리 서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혼인 서약은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의 의무 안에서 살기를 결심하는 것이지 혼인식과 함께 끝나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도 하느님 앞에서 서약을 합니다. 수도자들은 순명, 정결, 가난 서약을 하고, 수도자가 아닌 성직자들은 가난 서약은 하지 않습니다. 이 서약은 혼인 서약과 마찬가지로 죽기까지 지켜야 할 의무로 남습니다.

부부가 부부로 남기 위해서는 이 서약을 서로 존중하며 지켜야하는 것처럼 성직자나 수도자도 그렇게 남기 위해서는 본인들이 한 서약을 지켜야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서약을 다 잘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는 이혼하기도 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옷을 벗기도 합니다. 이혼하거나 옷을 벗지 않는다고 해서 그 서약들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우리는 서약했던 것들을 어긴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서약들이 지켜가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나타나 주님의 뜻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묻습니다. 오늘 축일을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라 부르는데 사실 ‘예고’라는 말에는 그저 주님 탄생을 미리 알려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 순간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순간입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천사의 말에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온전한 방법으로 세상에 오실 수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천사는 마치 사제가 혼인하는 신부에게 ‘아무개를 남편으로 맞아들이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답이 없다면 모든 게 허사가 됩니다. 이 순간은 인류 역사 안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님의 힘이 성모님을 덮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5절 이하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분은 세상에 오시며, “당신은 나를 위해 한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예! 제가 당신의 뜻을 이루러 갑니다.”

이는 성자께서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성모님의 육체를 아들을 위해 마련하시고 아들에게도 그 육체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아들은 성모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기꺼이 선언합니다.

이렇게 성자의 ‘예!’와 마리아님의 ‘예!’가 결합되면서 두 분이 한 몸이 되신 것입니다. 한 육체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계약입니다.

성모님께서 시메온에게 “당신의 영혼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듣기 이전에도 구원자와 한 몸이 되는 것이 어떠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물론 성자께서도 육체를 취하시기 이전에 육체를 취하는 것이 결국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잘 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내며 아들인 이사악의 아내를 구해오라고 합니다. 그 종은 우물가에서 만난 레베카를 이사악의 아내가 될 것인지를 청하고 결국 승낙을 얻어냅니다.

교부들은 이 내용을 오늘 축일을 지내고 있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방문과 비유하였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이 종을 보내듯이 당신 아들의 신부가 될 사람의 동의를 받도록 천사를 보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오늘은 성자와 마리아와의 혼인서약일입니다.

두 분은 당신들이 하신 혼인의 서약을 한 치의 부족함도 없이 지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혼인의 계약은 이제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 분과 한 몸이 되는 것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시밭과 십자가도 동시에 주어집니다. 우리의 혼인 서약은 세례 때 하였습니다. 세례 때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을 죽기까지 사랑하겠다는 서약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처럼 우리는 그 서약을 잘 지키며 살지는 못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 성모님께서 영혼을 관통하는 고통까지도 감수하며 온전히 그 약속을 지키셨듯이 우리도 성모님을 본받을 결심을 하고 매일 성모님의 모습을 목표로 새롭게 변화되어가야 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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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상식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 불교의 부처 탄생 설화에서도 어머니인 마야 왕비의 옆구리로 태어났고 또 ‘보통 인간처럼 더러운 양수가 전혀 묻지 않았다’고 두 번이나 강조한다. 처녀숭배 또는 인간 육체에 대한 자학이 자못 짙게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강생했음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아 전반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귀천을 따지지 않는 불교에서도 말할 것이 없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말이 있다. 유교 윤리가 엄격하던 조선시대에도 처녀나 과부가 애를 배면 이를 짐짓 ‘사태’(뱀이 오줌 눈 자리에서 오줌을 누다 뱀의 정으로 애를 뱄다)라고 하여 인정하기도 했다. 요즘 유행하는 건강물질 죽염의 창시자, 신의로 불리던 그 사람이 바로 이런 주장을 책으로 써놓았다.

죄를 처벌하는 것보다 두 생명이 더 중하지 않겠는가? 의학이든 종교든 다 사람 살리고자 하는 것 아닌가? 다만 당시 지배적 윤리도덕을 엄격히 지키려는 세력과 정면 충돌하는 것을 피하려면 신비가 필요한 것이다.

처녀가 애를 밸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말로 하자면 상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를 잘 안다는 사람일수록 ‘분단 상황에서는 남한에서 좌파정당이 성장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이들이 있다. 북한에 대한 분노·피해의식 때문에 사회주의를 대중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에서는 절대적 상식이란 것이 없다. 약자를 구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말이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상식이다.

<박준영(아시아 가톨릭 뉴스 한국 지국장)>
  |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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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이 이야기를 경이롭게 들으면서, 이런 의문 하나가 들 것입니다. “왜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몹시 놀라워’ 했을까?”(루카 1,29) 또,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그녀가 하느님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1,34)라고 물었을까요? 어쨌거나 그녀는 죄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는데, 천사의 예고를 듣고서 여기에 순종하는 대답을 하기까지 왜 그렇게 뜸을 들여야 했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은, 마리아도 한낱 인간이었고 그런 위대한 신비를 아무런 도움도 없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겠지요. 그 말은 우리가 하느님께 대답할 때 드리는 말과 참 많이 닮지 않았나요? 우리는 모두 이런 ‘예고’를 받았지요. 누구나가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대답할 때가 아주 많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저 주부일 뿐, 아니면 회계사, 혹은 교사일 뿐인걸요. 나는 하느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 주제에 하느님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요? 바로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모셔온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권능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혼자 힘만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못합니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요한 15,5) 고맙게도 그런 은총의 기적은 우리에게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에 의해, 그리고 세례성사 덕분에 그 일은 우리 안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어디를 가든 이미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하던 일을 딱 멈추고 놀라워할 일이 아닙니까? 살아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우리 안에 모시고 다니다니요!

물론 성모님과 달리 우리는 죄를 짓는 성향이 있습니다. 때로는 주님과의 여정을, 실제로 앞으로 걸어나가기보다는 넘어지면서 더 많이 보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때에도 우리의 나약함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이므로, “원수의 모든 힘”(루카 10,9)에 대항해서 승리할 힘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곁에 머무는 한, 아무것도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저 고난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나자렛에서 시작하신, “어둠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는”(루카 1,79)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오늘 제가 하는 모든 일에서
당신을 선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의 평화와 권능으로
제가 주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게 해 주세요!”

<말씀지기>
  |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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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에게 ‘인사이동’은 언제나 긴장이고, 설렘입니다. 보좌신부로 있을 때는 주교님께서 따로 언질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인사이동의 공문을 받고 알았습니다. 주교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셔서 인사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3번 있습니다. 한번은 1999년 적성성당으로 가게 될 때입니다. 주교님께서는 재정적으로 열악하고, 교우들도 적기 때문에 따로 부르셨던 것 같습니다. 2012년에 용문 청소년 수련장으로 가게 될 때입니다. 안식년을 신청했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교구장님께서 6개월이지만 수련장에서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수련장의 신부님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고, 마땅한 사제가 없었기 때문에 안식년을 신청한 저를 부르셨던 것 같습니다. 2013년 성소국으로 올 때입니다. 짧은 수련장에서의 일을 마치고, 교구의 성소국에서 일을 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사이동을 하게 되면 구상 시인의 시를 마음에 담습니다. 제목은 ‘꽃자리’입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적성은 문화적인 것들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자연 속에서 지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수련장은 안식년의 기쁨은 없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성소국은 본당만큼 아기자기하지는 않지만 사제양성이라는 보람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아무런 고통이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고통 중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고통 중에 세상을 원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런 고통 속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고통 중에서 인내를 배우고, 인내는 겸손을 알게 하고, 겸손함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바다의 별, 우리의 어머니, 천상의 모후, 정의의 어머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생애는 ‘고통의 바다.’였습니다. 어린 아들을 성전에 봉헌했을 때 시메온으로부터 가슴이 찢어지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했습니다. 어린 아들을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미쳤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보았고,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성모님은 그런 고통 중에서 하느님의 뜻을 보았고,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모님은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며 자신의 몸이 구원 사업의 도구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성모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잔치의 즐거움이 계속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게 합니다. 예수님 또한 성모님의 그런 마음을 아시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았지만 혼인잔치를 더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성모님은 혼인잔치에 손님으로만 간 것이 아니라, 그 잔치에 부족함이 없는지를 살피시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그런 마음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마음, 자신의 고통 보다는 사도들을 추스르고 교회를 걱정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 성모님의 마음입니다. 성모님처럼 해야 할 일을 분별하여,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천주의 성모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 2017년 3월 25일
  |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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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이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사람이 되시는 위대한 사실을 오늘 복음은 전해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곧 인간의 차원이 하느님의 차원으로 들어 올려졌다는 것이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마리아의 하느님의 뜻에 대한 응답은 이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룰 수 있게 하였고, 그 마리아의 자세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복음: 루가 1,26-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가 이어지고 있다. 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는데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28절) 이런 인사는 남자가 들은 것이 아니라 오직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인사였다.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새로운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28절)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천사를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하늘의 심판관을 몸에 받아 모시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녀를 당신의 어머니로 만드셨고, 당신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다. 온 세상도 하느님을 품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온전히 그 품에 오시어 사람이 되셨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1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행하시는 거룩한 신비를 드러내 줄 아기에 대하여 말한다.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 되실 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의미한다. 그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분이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절)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이 물음은 동정 잉태라는 신비에 대한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천사는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시어 잉태하리라고 한다. 마리아가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물위를 감돌며 창조를 이루신 분도 성령이시다.(창세 1,2 참조)

마리아에게 내려와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신 성령께서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의 양식인 빵과 포도주에 내리시어,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거룩한 성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믿는 이들의 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마리아의 잉태는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요한 1,13) 성령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래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마리아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하와의 불복종을 되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한 천사였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첫 번째 처녀의 타락이 다른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이 처녀 마리아의 믿음으로 극복되고 있다.

마리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평범한 한 시골 처녀였다.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인간이었다. 그 마리아가 그렇게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고백하고 실천해야 한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2017년 3월 25일
  |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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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   [대구] 길  [6] 2725
470   [안동] 평화의 모후  [7] 2859
469   [마산] 성모님의 침묵속의 믿음  [6] 3011
468   [전주] 마니피캇  [2] 3324
467   [청주] 희망을 주시는 어머니  42
466   [제주] 어머니  34
465   (백) 성모승천 대축일(8월 15일) 독서와 복음  [7] 2682
464   [인천/서울] 욕심  [6] 1962
463   [수도회] 윗자리는  [8] 1836
462   [전주/대구/부산/의정부] 주님을 향한 열정의 사도 야고보  [4] 2300
461   [춘천/수원/청주]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모든 것에서 자유  [3] 1887
460   (홍) 성 야고보 사도 축일 (7월 25일) 독서와 복음  [3] 1568
459   [수도회] 부활의 아침, 설레는 마음  [12] 2628
458   [기타] 부활신앙으로 무장하자.  [3] 2212
457   [전주] “아! 잔인한 4월, 잔인한 부활”  [2] 2243
456   [광주]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2] 2050
455   [마산] '부활 - 돌을 치우자' (요한 20,1 이하 참조)  [5] 2265
[1][2] 3 [4][5][6][7][8][9][10]..[26]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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