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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
조회수 | 1,924
작성일 | 11.02.12
죄인의 회개를 상징하는 빛의 증거자
모친 성녀 모니카 노력에도 타락의 삶 살아
수도생활의 고귀함에 감동, 신앙의 길 걸어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들을 구하러 왔기 때문이다.”(마태18,11)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9,13)

성경 말씀은 죄인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선례도 많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들이 죄와 타락의 구렁에서 빠져나와 회개했고, 그 큰 은총 속에서 머물렀다. 그중에는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들도 있다. 죄인의 회개를 대표하는 분이, 하느님의 큰 은총의 빛을 증거하는 대표적인 분이 바로 성 아우구스티누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의 풍성한 은총의 힘으로 죄악을 성덕으로, 어둠을 광명으로, 놀라울 만한 대전환을 이뤘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결심 여하에 따라 멸망에서 소생되어 광명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11월 13일, 북 아프리카의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트리치오는 이교도인이었다. 성질이 매우 급하고, 명예와 재산 등 현세적 사물에만 흥미를 느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는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늘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헌신과 눈물 등 어머니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하지만 사람은 선보다 악에 기울어지기 쉬운 존재자이다. 어머니의 엄격한 권고도 소용이 없었다. 학업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자만에 빠졌고, 곧 타락의 길을 걸었다. 16세에 한 여인과 함께 생활하며 아데오다토라는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명예와 세속적 욕심에 사로잡힌 그는 마치 죄를 향해 질주하는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 같았다. 게다가 373년경에는 마니교라는 이단에까지 빠진다.

그러던 중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 가장 친한 친구가 불의의 죽음을 당하자, 죽음문제에 대한 번민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후 이곳 저곳을 떠돌게 되는데, 결국 밀라노에 가게 된다.

당시 밀라노의 주교는 암브로시우스 성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유명한 웅변가라는 소문을 듣고 그의 강론을 자주 들으러 갔다. 처음에는 단지 호기심에 불과했으나 차츰 암브로시우스에게 매료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아직 단순한 호감의 범주를 넘어서진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386년 가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리비아에 사는 은수자들, 특히 성 안토니오의 삶에 대해 듣는다. 그리고 수도생활의 고귀함에 대해 감동을 받게 된다. 당시 아우구스티누스는 결혼과 명예, 돈에 대해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던 때였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해 살려는 소망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번민에 사로잡혀 정원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들어서 읽어보라! 들어서 읽어보라!”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방으로 돌아와 무심코 성경을 펴 들었다. 그리고 읽어 내려갔다. 그곳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13,13-14)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대해(大海)와 같은 하느님의 은총이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당장 개종하고 가톨릭 신앙인이 된다. 가장 기뻐한 것은 33년간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 모니카였다.

387년 부활 축일 전야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들 아데오다토와 친구 알리피오와 더불어 암브로시우스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평화와 기쁨이 그의 마음속에 깃들었다.

평생 소원이던 아들의 회개를 지켜본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열병으로 선종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 또 아들 아데오다토도 잃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모든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보속하는 마음으로, 남은 삶을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4-25
450 21.6%
청빈한 삶 살며 학문적으로 빛나는 업적 남겨
과거의 죄 반성하며 열성을 다해 신앙 생활 매진
저서 「고백록」 수많은 죄인들 회개의 길로 인도

‘확’달라졌다. 이제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늘 기도했고, 오직 하늘만 바라보고 살았다. 갈망하고 살았다.

성덕은 숨겨도 드러나는 법이다. 신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성직자로 추대한다. 이에 당시 히포의 주교 발레리오는 그 간청에 못이겨 아우구스티누스를 사제직에 올리고, 후에는 부주교로 임명했다.

서기 396년 발레리오 주교가 서거하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자와 성직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후임 주교로 임명됐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책을 34년간 수행한다. 지난 세월의 죄와 잘못을 보상하기 위한 듯 아우구스티누스는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또 일했다. 우선 동료 사제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이 때 정해진 규칙은 훗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규율이 된다. 그는 청빈을 사랑했으며, 학문 연구에 온 열정을 불태웠다. 또 신자들을 대할 때는 아버지와 같은 온정으로 인도했다.

무엇보다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빛나는 업적은 그가 세운 신학체계와 영성 신학, 철학과 관련한 수많은 저서로 드러난다. 실제로 그의 학문과 사상의 깊이는 초대 교회의 어느 학자보다도 단연 돋보였다. 그노시스, 도나투스, 마니, 펠라지오 등과 같은 이단과 싸워 교회를 보호했다. 위정자에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서한을 보내 교리를 가르치고 진정한 성덕의 길로 인도했다. 그는 또 개인 생활비까지 절약해 가며, 과부나 고아들을 구제했다.

그 자신이 육(肉)과 영(靈)의 심각한 투쟁 후 주님의 은총으로 결국 영의 승리를 얻게 된 사실을 기록한 「고백록」은 수많은 죄인들에게 하나의 빛이었다. 「고백록」은 수많은 죄인들을 절망의 구렁에서 건졌으며 회개의 길로 인도했다. 하느님은 그렇게 그를 쓰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429년 반달독이 로마에 침략 약탈한 후,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주교로 있던 북아프리카 지방으로 밀려들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바치며, 속죄의 시편 7장을 외운 후 그렇게 하늘로 올랐다. 430년 8월 28일, 76세의 나이였다.

하느님께서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허락하셨을까. 하느님께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을까.

천천히 그의 삶을 처음부터 되짚어 보자.

아우구스티누스를 이야기할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영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는 이교인이었다. 욕심, 특히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어머니는 연민과 자비로움을 몸에 안고 사는 분이었지만 아버지는 완전히 달랐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버지를 빼어 닮는다. 욕심많았던 그는 방탕한 삶을 살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쁜 짓만 일삼았다. 엉터리 삶을 살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심지어 16살때는 사생아까지 낳는다. 정식 혼인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볼때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여인만 만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혹시 자녀가 속썩인다면 그리 큰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불쑥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웬만한 것은 그냥 넘어가도 된다.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대 성인도 한때 방탕한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그런 아들을 어머니 모니카는 늘 걱정 속에서 바라봤다. 그리고 늘 기도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방탕한 삶을 사는 가운데서도 마니교라는 이단에 깊이 빠졌다. 이 기간동안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름대로 기도도 열심히 하고 학문에도 매진했다. 하지만 진리는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바른 공부 속에서 찾아온다. 그렇게 9년이 지났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오히려 갈등과 번민과 번뇌에 쌓이게 된다. 방탕한 생활도 그에게 더 이상 재미를 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29~32세 경으로 추정된다. 절친했던 친구가 죽었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훌훌 털고 떠나고 싶어 한다. 이러한 고민이 아우구스티누스를 로마로 향하게 한다.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5-02
  | 02.12
450 21.6%
회개 통해 완벽한 신앙의 모범 되신 성인
세례받고 완전히 달라져… 사제·주교 서품까지
신학·수도생활 관련 집필로 하느님 영광 드러내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이제 은총의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는 사막에서 고행하는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그는 생각한다.
“아! 나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나만큼 머리가 똑똑하지도 않은 사람들도 모든 노력을 다해 천국의 의미를 묵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육욕의 노예가 되어있지 않은가. 이 무슨 꼴인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권력이 높아도,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서 학식을 쌓은들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의 삶은 동물만도 못하지 않는가.”

문제는 아직도 그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을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 진정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한 걸음 내딛기’에는 은총이 필요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은총을 받아들일 마음과 귀, 눈이 있어야 한다. 이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그 눈과 귀, 입이 열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386년의 일이었다. 번민에 사로잡혀 정원을 산책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어서 읽어보아라!”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심코 성경을 펴 들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13,13-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지만 때때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33세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까지 모든 죄를 회개하고, 부활 대축일 전야에 암브로시오 주교를 통해 세례성사를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천국에서 수많은 천사들이 기뻐 환호한 순간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삶의 표양은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신자들이 너도나도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직의 길을 걸어갈 것을 원했다. 과거의 잘못은 문제가 안됐다. 지금 현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신앙의 모범이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제품을 받았고, 주교직까지 받게 된다. 물론 33년간의 방탕한 생활이 한순간의 회개로 모두 바로잡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선 내면을 갈고 닦는 수련의 땀이 필요하다. 잘못된 과거의 삶 속에는 더러운 이끼가 가득하다. 무의식의 저층에 짙게 깔려있는 이러한 때를 닦아내야 한다. 이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영성의 3단계 안에서 보면 정화, 조명, 일치의 단계중 첫번째 단계인 정화라 할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정화의 삶은 실로 피눈물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면형성에서 더 나아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상호형성을 위해서도 노력한다. 그는 교구 사제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영적 성장의 길을 걸었다. 더 나아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 형성의 차원에서 저술 작업에도 매진했다. 그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과거에 잘못 살아왔던 삶안에서 보물을 끄집어 내며, 하느님의 은총을 증거했다. 고백록을 비롯해 수많은 철학과 신학서적을 집필했다. 그가 평생을 쌓아올린 지적인 능력이 신앙안에서 빛이 나는 순간이다. 그의 신학과 수도생활에 대한 집필은 훗날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십계명’의 분류도 그에 의한 것이다. 그는 회개와 깨달음에 이어 지덕(知德), 지덕(智德), 절제의 덕, 초탈의 덕 등 자신의 내면형성에 주력했고, 또 상호형성을 위해 매진했으며 결국에는 세계형성이라는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는 결국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회개는 어려운 일이다. 머리나 마음으로는 할 수 있지만, 영혼을 움직이는 회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희망을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서 본다. 어렵지 않다. 하느님은 늘 은총을 풍부하게 내려 주신다. 우리는 그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영적인 안테나만 높이 세우고 있으면 된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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