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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빛이신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신 분
조회수 | 18
작성일 | 20.07.25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1. 또 다른 그리스도 - 프란치스코 성인과 클라라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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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곧 성덕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난하게 되신”(2코린 8,9) 그리스도를 따르며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동화시키는 것이다. 이 가난을 통해 행복의 자비를 입고 평화를 누린 이가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이다.

이번 호부터 가난보다 부귀에, 헌신보다 명예에, 희생보다 개인주의에 빠져 있는 현대인에게 삶의 경종을 울려줄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의 제자들의 삶을 알아본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호명환 신부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을 제목으로 현대 세계와 교회의 복음적 징표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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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 클라라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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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프란치스코(1181/1182~1226) 성인과 클라라(1194~1253) 성녀, 두 성인의 고향인 아시시에 대해 짧은 나눔을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단테는 자신의 명작 「신곡」에서 아시시를 ‘동방’으로 표현하고 있고, 프란치스코 성인을 ‘떠오르는 태양’으로 묘사하고 있다. 단테가 묘사하고 있는 이 중세 세계관은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지닌 유럽 역사 안에서의 중요성을 매우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중요성을 지니게 된 것은 그들이 가졌던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라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사실 ‘태양’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데, 단테가 프란치스코를 태양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프란치스코가 자신이 인격적으로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다는 점을 암시해주는 내용이다.

일전에 어떤 미국인 사제가 주일학교에서 초등학생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체험했던 내용을 나눈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신부님이 어느 날 아이들에게 ‘성인(聖人)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10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빛을 통과시켜주는 사람입니다.”

참 대단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영성가는 “‘누가 성인인가’에 있어서의 관건은 그 사람의 도덕적 됨됨이가 아니라 하느님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투명성”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선과 사랑과 자비, 즉 하느님 존재 자체가 드러난다면 그는 성인인 것이다. 단테가 프란치스코를 ‘태양’으로 표현하고 아시시를 ‘동방’이라고 묘사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라고 칭한 클라라 성녀 역시도 프란치스코에게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 지닌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기에 프란치스코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시작한 복음적 삶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를 시작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죄 중에 있었기에 나에게는 나병 환자들을 보는 것이 쓰디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 가운데로 이끄셨고 나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비를 실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서 떠나올 무렵에는 나에게 쓴맛이었던 바로 그것이 도리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에게 몇몇 형제들을 주신 후 내가 해야 할 일을 아무도 나에게 보여 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나에게 거룩한 복음의 양식(樣式)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몇 마디 말로 그리고 단순하게 기록하게 했고 교황님께서 나에게 확인해 주셨습니다.”(1-3절; 14-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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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과 세상 권력에 휩싸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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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는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서 듣고, 보고, 계시받아 세상에 드러내셨다고 말씀하시는 요한 복음의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받아 살아가며 하느님을 세상이 볼 수 있게 해준 사람, 즉 빛이신 분, 태양이신 분을 통과시켜 세상에 드러낸 성인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유언에서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라고 말씀하시지만, 또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도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결국 우리가 당신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시대는 유럽 역사 안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대였다. 이 시대는 중세 성기(high middle ages) 중 거의 중심에 위치하는 시기이며 다양한 집단과 무리 간의 다툼과 분쟁이 있었다. 또 농업과 목축업을 위한 도구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인류의 식량 증가, 이로 인한 새로운 자본주의와 도시들의 탄생과 인류의 대이동 등이 특징을 이룬 시대이다. 전체는 아니지만, 교회 역시도 세상의 권력에 휩싸여 교회가 하느님을 드러내 주기보다는 권력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사건 중 하나가 무려 200여 년간 지속한 십자군 전쟁이다.

프란치스코는 이런 힘의 대결 구도가 하느님을 드러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맨몸으로 제6차 십자군 원정 중인 십자군과 이슬람군 진영에 가서 이 잔인한 싸움을 중지시키고자 하였다. 이런 시대의 모습을 증언해준 이들 중 하나가 바로 비트리의 야고보 주교(1160/70~1240)인데, 그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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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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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을 떠나 페루지아에 도착했다. 거기서 나는 죽어있는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을 발견했는데, 그 시신이 아직 매장되지 않은 채 있었다. 야밤에 도둑들이 와서 그 시신과 함께 매장하려고 시신에 입혀놓은 값비싼 옷을 다 약탈해 가서 그 시신은 실제로 완전히 벌거벗겨진 상태였고, 이미 부패가 시작되었다. 나는 교회로 가서 온전한 믿음의 눈으로 이 세상의 기만적이고 헛된 영광이 얼마나 무상하고 공허한지를 보았다.… 나는 잠시 교황청에 머문 후 내게는 참으로 혐오스러운 큰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은 세상 것들과 통치자 왕국, 재판과 기소 등에 너무도 집착하고 있어서 누구에게도 영적인 말을 거의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와중에서도 위로의 원천 하나를 발견하였다. 재속의 많은 남녀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 살고 있었다. 그들은 ‘미천한 형제들(lesser brothers)’과 ‘미천한 자매들(lesser sisters)’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교황 성하와 추기경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그들은 현세적인 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고, 매일 멸망해 가는 세상의 영혼들을 그 공허에서 빼내 자신들의 삶에 합류하게 하기 위한 열정적인 갈망과 지대한 열의를 지니고 일하였다.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그들은 이미 열매를 풍부히 맺었으며 많은 이들을 회두시켰다.… 그들은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한마음이었다고 묘사되는 초기 교회 생활양식을 따라 살았다. 낮에는 도시와 마을로 나가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활동적인 삶을 살았으며, 밤에는 자기들의 은수처 혹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관상하는 데 전념하였다.”

이런 세상의 흐름 가운데서 프란치스코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이 모든 것에 함께하며 당신의 뜻으로 세상을 이끌어가시는 하느님, 모든 이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고자 하시는 하느님을 보고(관상), 또 그가 본 바를 세상에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오늘날의 상황처럼 세상이 ‘하느님이 어디 있는가!’라고 외치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하느님’을 보고, 자신의 삶으로 세상에 하느님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소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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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12일 발행 [1572호]
작은 형제회 호명환 신부
459 15.6%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2. 바라봄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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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는
성체성사에 대한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 사람이다.

프란치스코가 이렇게 성체성사로 시선을 돌리고자 했던 이유는 그가 성체성사 안의 하느님 현존을 참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를 보기를 원하고 온전히 믿기를 원했지만, 그분은 보이지 않고 그분을 본다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성체성사로 시선을 돌렸던 이유는 이런 고뇌와 힘든 투쟁 가운데였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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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의 화두를 품은 성녀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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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클라라는 프란치스코 성인보다 ‘보는 것’의 화두를 더 강하게 마음에 품고 살았던 성녀가 아닐까 한다. 클라라는 프라하의 아녜스 성녀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대의 구원을 위해 인간들 가운데 가장 비천한 자가 되시어 멸시받고 얻어맞고 온몸에 갖가지 방법으로 매질 당하여 십자가의 참혹한 고뇌 가운데 죽어 가시는 그대의 정배를 닮기를 갈망하면서, 그분을 ‘응시하고’(intuere), 그분을 깊이 ‘생각하고’(considera), 그분을 ‘관상하십시오’(contemplare).”

클라라가 사용하고 있는 이 세 개의 단어들은 사실 모두가 ‘보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클라라는 우리가 그분을 참으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우리도 내적, 외적으로 그분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봄’과 관련하여 클라라의 전기에 엄청난 대목이 나온다. 악마가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나타나서 그녀의 얼굴을 때리고 턱에 상처를 입힌다. 그런 다음 그녀의 눈을 쳐서 피가 나게 한다. 이것은 그녀의 회개 후(수도원에 들어간 후)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우리에게 악마는 무엇이며 삶의 시련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우리의 눈을 덮어서 볼 수 없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교회와 투쟁해야 했고, 그녀의 자매들과 투쟁해야 했다. 아마도 클라라는 이런 삶의 한가운데서 이런 질문들을 했을 것이다. “나는 왜 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인가? 왜 이들은 함께 하지 못하고 자비를 베풀지 못하는가? 왜 이들은 계속해서 분열해야 하는가? 나는 볼 수 없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내 성소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모든 것이 의미 없어 보인다!”

악마의 가장 큰 유혹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클라라가 그토록 보고 마음에 품고자 했던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은 가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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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볼 수 없게 만드는 악마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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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찌 보면 우리는 하느님을 보고자 하는 단순한 노력도 기울이지 못한 채 그저 세상의 부정적인 물결에 떠밀려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참으로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참된 긍정이시자, 긍정과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 얼굴을 찾고자 했던 이들이다.

우리는 실제로 이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을 보는 단순한 믿음이 필요하다. 이것은 현시대 사회의 체험이다. 성체성사에 대한 믿음의 결핍, 교회에 대한 믿음의 부족, 체제와 사제직의 문제들!

“악마는 그녀의 얼굴을 강타했다!” 이것은 또한 그녀가 함께 살았던 여인들 몇몇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일 수도 있고, 그녀가 속해 있었던 사회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 모르긴 해도 수치, 불명예, 험담… 그녀는 상처를 받았는데 복음서는 다른 쪽 뺨을 돌려대 주라고 말한다. 전기는 그녀를 유혹하는 악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이 소명 전부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구체적인 환경에서 복음을 살아가는 것을 그토록 힘겹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우리의 이웃, 교회, 우리 공동체, 그리고 그 약점. 우리는 이런 유혹의 체험을 해왔다. 이것이 고통의 문제이다. 문제는 사라지는가? 늘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발견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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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긍정과 희망 품기 1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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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로어(Richard Rohr, OFM)는 「Divine Dance」, 「The Universal Christ」와 같은 저서들에서 신경과학에서 증명해 낸 것이라 하면서 인간 신경계(神經系)에 우리 감정이 연결되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즉 인간의 감정을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으로 크게 나눈다면 미워하고, 질투하고, 비판하고, 냉소적으로 보는 것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찍찍이’(velcro) 같은 것이어서 우리 신경계통에 즉각적으로 단단히 들러붙는 반면에,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선하게 보는 것 등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테플론’ 같은 것이어서 신경계에 잘 붙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 묘한 것은 우리가 이 긍정적인 감정들을 적어도 15초 이상 우리 생각 속에 붙들어 둘 때는 이 감정들이 신경계통에 더욱 단단하게 들러붙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종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관상’이라고 정의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관상의 정의인가!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하게 살아온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삶의 분위기는 우리가 단 15초라도 선과 긍정과 희망을 품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어찌 보면 이런 15초 정도의 인내심도 우리가 갖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와 더불어 계시며 당신의 강력한 사랑으로 일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에 대한 진정한 신뢰심을 두지 못하는 가운데 신앙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이런 긍정과 선과 희망 속에 머물지 못하는지 모른다. 물론 이런 것이 기도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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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19일 발행 [1573호]
작은 형제회 호명환 신부
  | 07.25
459 15.6%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3. 역사·시대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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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시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간략하게 비트리의 야고보의 증언을 나누었긴 했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그 당시의 역사-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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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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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는 아직도 전형적인 중세 도시로 제시된다. 이곳은 이탈리아의 중부 내륙에 위치한 움브리아 계곡 위에 솟아올라 있는 곳이다. 이곳은 비교적 작은 지역으로서 그 넓이가 8456㎢밖에 되지 않는다. 이곳은 또한 이탈리아 반도의 중앙 아펜닌노 지역에 위치하며 산들과 언덕들 그리고 삼림으로 우거진 것이 특징이다. 이 지역의 약 6%만이 평원일 뿐이다. 아시시는 해발 424m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평원 중 하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곳이지만, 그 위로는 해발 1294m의 수바시오 산이 솟아올라 있다. 이 산은 둥근 지붕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삼림으로 가득 차 있다. 아시시는 오늘날도 많은 인구가 있지는 않지만 12~13세기에는 훨씬 더 작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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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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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의 세계는 양대 권력을 주위로 전개되었다. 한 편에는 신성한 로마의 황제가 있었고, 다른 한 편에는 교황이 있었다. 이 대단한 인물들은 양편에서 버티고 서 있었는데, 프레데릭 바르바로사 황제와 인노첸시오 3세(재위 1198~1216년) 교황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 시대는 거룩함과 속됨의 두 진영에 의해 지배되었던 세상이었지만 이 둘은 서로를 대항해 싸움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일이 종종 있을 만큼 이 두 진영 사이의 구별점은 아주 미묘했다. 정권과 종교는 똑같이 권력을 휘두르곤 하였다. 이 시기는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 원정 시대였는데, 성지는 당시 신앙과 정치적인 야망이 둘 다 활발하게 그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봉건 영주들은 아직도 많은 도시에서 정치적인 배경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아시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그 성곽은 12세기에 거기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로카 마죠레(Rocca Maggiore)라 불리던 봉건 성곽은 오늘날도 그 도시 위에 우뚝 솟아 있다. 귀족층은 아직도 지방 업무들에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12세기 말쯤에 가서는 새로운 계급, 즉 중간 계급이 사회에서 부상하게 되는데, 이 계급은 주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아시시와 같은 작은 도시에서도 귀족들이었던 ‘마요레스(majores)’ 혹은 ‘보니 호미네스(boni homines-선한 사람들)’들과 상인들이었던 ‘미노레스(minores)’ 혹은 ‘호미네스 포풀리(homines populi-대중)’의 구분이 분명하였다. 후자의 사람들인 미노레스들은 경제적인 힘을 이용하여 당시 귀족들에 대항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구시대의 봉건 체제를 뒤엎고 ‘코무네(Commune-자치 행정부)’라고 불리었던 좀 더 민주적 형태의 정부로 바꾸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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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와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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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는 사업상 프랑스를 자주 왕래하던 부유한 상인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Pietro di Bernardone)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실 피에트로는 프로방스 지방 출신인 부인 피카(Pica)가 프란치스코를 낳던 때에도 여행 중이었다. 피에트로는 자신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 아기가 산 루피노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조반니(Giovanni, 요한)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에트로는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아들의 이름을 ‘프란치스코(작은 프랑스 사람)’로 바꾸었다.

산 루피노 대성당이 내려다보이는 아시시 위쪽 어느 귀족 집안에서 약 11년 후인 1193년(혹은 1194년)에 또 다른 여자아이 클라라가 태어난다. 그의 부모는 파바로네 디 오페르두치오(Favarone di Offreduccio)와 오르톨라나(Ortolana)였다. 클라라는 마요레스 계급에 속했고, 프란치스코는 미노레스 계급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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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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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 내에서의 긴장은 대략 1198년경부터 시작되었다. 그 해에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이 선출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대단한 정치가로 인정받고자 했고, 세상적인 일에서조차도 교회의 지상권을 주장하였다. 그해 봄, 황제의 이름으로 로카 성을 관리하던 우르슬리겐(Urslingen)의 콘라드 백작이 인노첸시오 3세 교황에게 스플레토에 있는 공작령을 양도하기 위해 스플레토로 떠났다. 이때, 아시시의 시민들은 그가 없는 틈을 타 로카 성을 점령하고 완전히 파괴할 기회를 포착하였다.

그 당시 프란치스코는 16세쯤 되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아시시가 자유로운 자치 행정부로서 독립을 얻어내고자 했던 이 사건에 참여했을 것이다. 시민과 귀족 사이의 시민전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클라라의 가족은 아시시보다 더 크고 강한 이웃 도시인 페루지아로 피신했다가 아마도 1203년경 아시시로 되돌아왔을 것이다. 바로 그해가 아시시의 마요레스와 미노레스 간의 평화조약이 맺어진 해이다.

1202년 페루지아로 피난을 갔던 아시시의 귀족들은 아시시의 시민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콜레스트라다(Collestrada) 전투에 참전하였는데, 이 전투에서 아시시의 군인들은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프란치스코도 1년간을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운이 좋게도 부자인 아버지의 보석금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감옥생활을 통해 그의 건강은 매우 약해졌고, 1204년에는 거의 1년간을 병상에서 지내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몸의 기운을 얻게 되자, 더 높은 이상을 갖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는 기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기사단에 들 수 있는 나이였다. 사실 그 당시 새롭게 생겨난 길을 따라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오는 음유시인들은 기사도 정신을 노래하곤 하였다.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는 명성과 더불어서 기사도의 낭만은 많은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프란치스코도 예외가 아니었다. 1204년 그는 제4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할 목적으로 남부 이탈리아 풀리에(Puglie)로 출정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는 브린네의 월터의 군대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 모험에 찬 출정은 단명이었다. 그다음 날, 스플레토에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밤이 지나자(전기 작가들은 어떤 환시와 꿈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겠다) 그는 아시시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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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26일 [1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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