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성인의 삶

한국103위

복자축일

이동축일

특별축일

오늘의 성인

♣ 현재위치 : 홈 > 가톨릭 성인 > 성인의 삶

성인의 삶 코너 ( 가톨릭 성인들의 삶에 관한 자료...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94 60.4%
오리제네스 [라틴어 Origenes]
조회수 | 2,214
작성일 | 09.04.22
축일 : 4월 22일

Origenes(185?∼254?). 알렉산드리아의 성서학자이며 주석가. 교부.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으며 202년의 박해 때 부친을 여의었다. 주교 데메트리우스(Demetrius)와의 충돌로 피신한 교사 글레멘스(Clemens)대신에 알렉산드리아 교리신학파의 지도자로 지명되었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영위하였다.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혀 마태오 복음서 19장 12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신을 불구로 만들었다. 또한 이교철학자와의 호교적 논쟁에 대처하기 위해 신플라톤주의와 이교문학을 공부하였다. 215년에 이어 230년 팔레스티나의 재방문 때 그 곳 주교들에 의해 서품받은 문제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되어 231년 체사레아(Caesarea)에 정착, 그 곳에 유명한 학파를 형성하였다. 250년 데치우스(Decius)의 박해로 고문받았으며 끝내 사망하였다.

성서주석서로는 ≪핵사플라≫(Hexapla)가 유명하며 그 밖에 그의 성서주석은 구약의 거의 전부와 4복음서들을 망라하고 있다. 신학서는 ≪원리에 대하여≫(De Principiis)가 주목되며 금욕적 저서 ≪순교에의 권고≫와 ≪기도에 대하여≫가 고대에 널리 읽혔다. 마르치온설을 반대한 그의 교리는 완전히 초월적인 일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였으나 철학적 사색은 가끔 매우 대담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의 정통성은 가톨릭 교회로부터 다소 의심되고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494 60.4%
오리게네스 사제의 순교 권고사에서 (Nn. 41-42: PG 11,618-619)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같이 당하고 있으니 그의 위로도 같이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옮겨 감으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옳겨 갔다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지 않고 아직 죽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죽음의 어둠에서 나와 소위 말하는 살아 있는 돌로 지은 생명의 빛이 비추는 건물에 들어간 이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셨으니" 우리도 그분을 위해 우리 생명을 바칩시다. 그런데 우리가 생명을 바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또 우리의 순교를 보고 감화를 받게 될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가 자랑할 시간이 왔습니다. 성서는 말해 줄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에 대해 자랑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가져 오고 인내는 사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가지고 오며 끈기는 희망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입시다. 우리가 많은 위로를 받기 원한다면 많은 고난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애통하는 이들도 위로를 받겠지만 아마도 같은 정도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다 똑같은 정도의 위로를 받는다고 하면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이들은 참여하는 고난의 정도에 따라 위로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확신에 찬사도의 다음 말씀에서 이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은층의 시기에 나는 너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봉사때문에 경비병에 둘러싸여 패배자처럼 하지 않고 승리자처럼 엄숙히 사형대로 끌려 나가는 날보다 더 은총이 넘치는 때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으뜸들과 권세들을 완전히 눌러 이기고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를 거둡니다. 그들은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그분이 고통을 통하여 얻은 것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세상을 하직하는 날말고 구원의 날이 또 있단 말입니까?

"나는 간청합니다. 우리가 하는 전도사업이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은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온갖 인내심으로무슨 일이나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하십시오."

다음의 말씀을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십시오.

"이제 내 바랄 것이, 주여, 무엇이오니이까? 내 소망, 그것은 당신께 있나이다."
  | 04.22
494 60.4%
오리게네스 사제의 강론에서 (Homilia 9,1-2: PG 12,871-872)

우리는 하느님의 제단과 집을 짓는 살아 있는 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 있는 돌입니다.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세의 돌 중에서 가장 강하고 단단한 돌을 기초로 깔고 전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그 위에 집을 짓듯이 산 돌 중에서도 일정한 돌을 골라서 이 신령한 집의 기초로 삼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초로 놓여진 사람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사도들과 예언자들입니다.

사도 바울로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누가 만일 이 집을 짓는 데에 마땅한 돌이 되려고 스스로 준비하여 기초에 가까운 돌로 놓여지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이 집의 기초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로의 말씀대로 "이미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놓여 있으니 아무도 다른 기초는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렇듯 고귀한 기초 위에 거룩하고 신성한 건물을 짓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이 성전 건물에는 제단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살아 있는 돌인 여러분 중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밤낮으로 하느님께 청원을 드리고, 간구의 희생을 바치는 사람이 예수께서 제단을 만드실 합당한 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제단의 돌은 얼마나 귀중해야 할 것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입법자 모세가 말한 대로 "제단은 쇠가 섞이지 않은 완전한 돌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같이 완전한 돌은 과연 누구입니까? 사도들이야말로 완전하고 흠 없이 거룩한 돌이며 그들의 일치와 화목으로 모두 함께 한 제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며, 입을 열어 "주여, 당신은 모든 이의 마음을 아시나이다."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음이 되어 말과 마음을 합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예수께서 성부께 제사를 바치시도록 한 제단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한마음이 되어 같은 생각을 하며 다투는 일도 없고 헛된 영광을 찾는 일도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말을 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도 아마 제단을 만들기 위한 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04.22
494 60.4%
오리게네스 사제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Tomus 10,20: PG 14,370-37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의 성전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자기 육신이나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여기서는 유다인들을 뜻합니다.) 즉 아버지의 집을 자신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네들을 성전에서 쫓아낸 데 대해 화가 치밀어 하나의 표적을 청합니다. 그 표적을 통해서, 자기네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하시는 일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구세주께서는 성전에 대해 말씀하시는 듯하지만 실은 당신 몸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하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고 대답하십니다.

그런데 성전과 예수님의 몸 두 가지 다 교회의 상징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산돌로 세워져 거룩한 사제로서 신령한 집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를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로 모시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참된 성전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의 돌들의 일치와 조화는 "내려가 다 흩어졌나이다." 라는 시편 21편의 말씀에 따라 끊겨 나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박해와 혼란을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성전의 일치를 깨뜨리는 자들이 일으키는 전쟁으로 인해 이 일치는 끊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복구되고 몸은 사흘째 되는 날, 즉 환난의 날이 지나고 그 다음날인 완성의 날 후에 일어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집을 세우는 이 뼈들이 주님의 위대한 날에 그분의 죽음으로부터의 승리로 인해 다시 살아날 때, 새 하늘과 새 땅의 셋째 날이 참으로 동틀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수난을 뒤쫓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온 몸의 부활 신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묻힌 다음 다시 일어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성도들의 온 몸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먼저 십자가에 못박혀 이제 생명이 끊긴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로처럼 우리 각 사람도 그로 인해 우리가 세상에 대해 죽고 세상은 우리에 대해 죽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세상에 대해 죽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또한 묻혔습니다.

"실상 우리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다." 고 바울로는 말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우리도 하나의 보증을 얻었다는 뜻으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다." 고 말합니다.
  | 04.22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7   성 프란치스코, 빛이신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신 분  [2] 315
16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 성 베네딕토(St. Benedictus, 480~547))  [3] 2866
15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2] 2185
14   성 아우구스티누스  [2] 2389
13   성 암브로시우스  [2] 1451
12   성녀 모니카  [2] 1648
11   미라의 성 니콜라오 주교  [1] 1304
10   성 폴리카르포 주교  [1] 1640
9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1] 1493
8   성 루카 복음사가  [1] 1730
7   성 바오로의 생애와 영성  [7] 1964
6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을 시작하며  [3] 1622
5   성 안셀모 주교 학자[St. Anselmus, Archiep. et D]  [8] 2458
4   복녀 마리아 가브리엘라 사게두[Beata Maria Gabriella Sagheddu]  2343
  오리제네스 [라틴어 Origenes]  [3] 2214
2   시복 시성 절차에 대해 알고 싶어요  [2] 2697
1   성인(聖人)의 삶  [3] 4254
1
 

 

성인의 삶 코너 ( 가톨릭 성인들의 삶에 관한 자료...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1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