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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셀모 주교 학자[St. Anselmus, Archiep. et D]
조회수 | 2,459
작성일 | 09.04.22
축일:4월21일

성 안셀모 주교 학자는 1033년 겨울 이탈리아 북부 아오스타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1059년에는 노르망디의 베크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067년에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된 안셀모는 제자인 동료 수도자들을 위해서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고, 윤리와 종교 교육에 힘씀으로써 베크 수도원 학교를 명문 학교로 발전시켰다.

1078년에 수도원 원장이 된 그는 박학다식과 성덕에 대한 소문을 듣고 수많은 청년들이 베크 수도원으로 몰려들자 그들을 한 곳에서 교육할 수 없어 프랑스와 영국 여러 곳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대주교로 임명된 안셀모는 영국 국왕의 교회 직무에 대한 간섭에 반발하고 교황의 권위를 위해 투쟁하며 성직자들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왕은 물론 다른 많은 주교들로부터도 배척을 받았다.

1093년까지 베크를 떠나지 않던 그는 국왕 윌리엄 2세와 격렬한 논쟁을 하였고

1097년 영국을 떠나 로마로 망명했다. 그는 영국 국왕을 상대로 하여 교회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 당시 이미 위대한 신학자이며 ‘스콜라 학파의 아버지’란 칭호를 얻고 있었다.

그는 1109년 4월 21일 캔터베리에서 운명하였고 1720년에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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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셀모 주교의 [프로스로기온]에서(Cap. 14.16.26: Opera omnia, edit. Schmitt, Secovii, 1938, 1,111-113.121-122)

당신을 즐기도록 당신을 알고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내 영혼아, 네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느냐? 너는 하느님을 찾고 있었는데, 하느님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높으시고 그분보다 더 좋은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너는 그분이 생명 자체이시고 빛이시며 지혜이시고 선이시며 영원한 행복이시고 복된 영원이시며 어디에나 언제나 계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다.

나를 형성하시고 또 변모시키신 내 주 하느님이시여, 갈망하는 내 영혼에게 당신은 내 영혼이 본 것과 다른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이 영혼이 갈망하는 것을 환히 보게 해주소서. 내 영혼은 보는 것 이상으로 보고파 애달아 하지만 그가 본 것 외에는 어둠밖에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아니, 그는 어둠도 보지 못합니다. 당신 안에는 어둠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은 자신의 어둠 때문에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여, 당신이 거하시는 빛은 진정코 다다를 수 없는 빛입니다. 그 빛을 꿰뚫어 거기에 계신 당신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빛은 나에게 너무도 강렬하여 나는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하오나, 나의 연약한 시력이 태양 자체를 직접 바라보지 못하면서 태양의 빛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보는 것처럼 나도 무엇을 보든지 당신의 그 빛으로 말미암아 보는 것입니다.

나의 지성은 그 빛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 빛 자체는 너무 눈부시어 내 지성은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내 영혼은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내 영혼의 눈은 그 빛의 광휘로써 눈부시고 그 충만성으로 압도되며 그 광대함으로 인해 당황하고 그 넓이로 말미암아 어리둥절해집니다.

오, 높으시고 다다를 수 없는 빛이시여! 오, 완전하고도 복된 진리이시여! 나는 당신과 이렇게도 가까이 있는데 당신은 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계신지요! 나는 당신의 시야 안에 들어 있는데 당신은 내 시야에서 얼마나 멀리 계신지요! 당신은 온전히 처처에 계시오나 나는 당신을 보지 못합니다. 당신 안에서 나는 움직이고 당신 안에 나는 머무르면서도, 나는 당신께 가까이 이를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내 안에 계시고 내 주위에 계시어도 나는 당신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 하느님이시여, 비오니, 내가 당신을 즐기도록 당신을 알고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그리고 이 현세에서 마음껏 즐길 수 없다면 그 즐거움이 충만에 이를 때까지 내가 매일매일 진보하게 하소서. 이 현세 생활 중에 당신에 대한 지식이 내 안에서 자라나 하늘 나라에서 완성되게 하소서. 당신에 대한 사랑이 이승에서 내 안에 자라나 저승에서 실제로 소유함으로써 완전히 되도록 해주소서.

주여, 당신은 우리가 성자를 통하여 당신께 청하도록 명하시고, 아니, 오히려 권고해 주시면서 우리 기쁨이 완전하게 되도록 우리가 청하는 바를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여 비오니, 당신께서 우리의 놀라우신 조언자를 통하여 권고해 주시는 대로 내가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을 당신의 성실하심을 통하여 받게 해주시고 내 기쁨이 완전하게 되도록 해주소서. 성실한 하느님이시여, 간절히 비오니, 내 기쁨이 완전하게 되도록 당신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받게 해주소서.

그때까지 나의 정신이 그것을 묵상하고 내 혀가 그것을 말하며 내 마음이 그것을 사랑하고 내 입이 그것을 전하게 해주소서. 내가 마침내 주님의 기쁨으로 들어갈 때까지 내 영혼이 그것을 애틋이 찾고, 내 육신이 그것을 열렬히 구하며, 내 존재 모두가 그것을 갈망하게 해주소서. 삼위 일체이신 주 하느님,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 아멘.

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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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셀모 주교의 「프로스로기온」에서(Cap. 1: Opera omnia, Edit. Schmitt, Seccovii, 1938, 1,97-100)

하느님을 뵙고자 하는 욕망

하찮은 사람아, 자, 네 바쁜 일을 잠깐 떠나고 네 생각의 소란에서 잠시 너를 감추어라.
이제 무거운 걱정들을 멀리하고 네 수고로운 번잡을 뒤로 미루어라.
하느님께 잠시 몰두하여 그분 안에서 쉬어라.
네 영혼의 내실에 들어가 하느님과 또 하느님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배제시키고, 문을 걸어 잠근 채 그분을 찾아라.
내 마음아, 이제 열성을 다하여 하느님께 이렇게 아뢰어라.
"주여, 내 당신 얼굴을 찾사오며 당신 얼굴을 뵙고 싶나이다."

주 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이 어디에서 어떻게 당신을 찾고,
또 어디에서 어떻게 당신을 찾아낼 수 있는지 가르쳐 주소서.
주여, 당신이 여기에 안 계신다면 부재하시는 당신을 내가 어디서 찾겠습니까?
그러나 당신이 어디서나 계신다면 왜 내가 현존하시는 당신을 뵙지 못합니까?
당신은 진정코 다다를 수 없는 빛 가운데 거처하십니다.
그런데 다다를 수 없는 이 빛은 어디에 있고 또 내가 어떻게 그 빛에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 안에서 당신을 뵐 수 있도록 누가 그 안으로 나를 이끌고 또 인도하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표시로, 어떤 모습 아래 내가 당신을 찾겠습니까?
주 내 하느님이시여, 내 당신을 뵌 적이 없사옵고 당신 얼굴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주여, 당신의 것이지만 당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배지의 나는 무엇을 하리이까?
당신께 대한 사랑에 애타고 있지만 당신 얼굴에서 멀리 내던져진 당신의 이 종은 무엇을 하리이까?
나는 당신을 간절히 뵙고자 하지만 당신의 얼굴은 내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나는 당신께 가까이 다가가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으나 당신의 거처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찾아내려 하지만 당신이 거처하시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열렬히 당신을 찾으려 하지만 당신의 얼굴을 알지 못합니다.

주여, 당신은 내 하느님 내 주님이시고, 나는 당신을 뵌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창조하시고 재창조하셨으며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당신이 나에게 주신 것이지만 아직 나는 당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뵙도록 나는 지음받았으나 나는 지음받은 그 목적을 아직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 주여, 언제까지, 우리를 언제까지 잊어버리시고, 언제까지 우리에게서 당신 얼굴을 외면하시리이까?
언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언제 우리 말을 들으시리이까?
언제 우리 눈에 빛을 비추시고 언제 당신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리이까?
언제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오시리이까?

주여, 우리를 바라보소서. 우리 말을 들으시고 우리에게 빛을 주시며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우리 일이 잘 되도록 우리에게 되돌아오소서. 당신없이 잘 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께 향하려 하는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없이 우리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주여, 당신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어 찾는 이에게 당신을 보여 주소서.
당신이 가르쳐 주지 않으신다면 당신을 찾을 수 없고
당신이 당신 자신을 보여 주지 않으신다면 내가 당신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내 당신을 갈망할 때 찾고, 찾을 때 갈망하며, 사랑할 때 찾아내고, 찾아낼 때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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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셀모 주교의 기도에서(Oratio 52: PL 158,955-956)

동정녀여, 당신이 받으신 축복으로 모든 피조물이 축복받았습니다

마리아여, 하늘과 별, 땅과 강들, 낮과 밤, 그리고 사람의 유익을 위해 창조되어
사람의 권하에 속하는 모든 것들은 죄로 인해 잃었던 첫 영광을 당신으로 말미암아 되찾아 표현할 수 없는
새 은총을 얻게 되었으므로 서로들 기뻐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첫 목적은 하느님께 찬미 드리는 사람을 섬기고 그에게 유익이 되어 주는 일이었지만,
그들이 본래 지닌 이 목적의 품위를 잃어버렸을 때 죽은 채로 있었습니다.
만물은 안팎으로 파괴되고 우상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남용으로 말미암아 이그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상을 섬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만물은 하느님께 찬미 드리는 사람들의 권하에 들어가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 되었으므로
되살아난 듯 기뻐하고 있습니다.

새롭고도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을 입어 만물은 기뻐 용약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을 지어내신 하느님께서 하늘로부터 보이지 않게 다스리시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들 가운데 보이게 현존하시어 자신들을 사용하심으로써 거룩함을 나누어 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듯이 큰 은혜들은 복되신 마리아의 복된 태중에서 태어나신 복된 열매로부터 나왔습니다.
마리아여, 당신 은총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명부에 있던 이들은 해방되어 기뻐하고
지상에 있는 이들은 새로워져 기뻐합니다.
당신의 영광스러운 동정성의 열매이신 영광스런 아드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주는 그분의 죽음이 있기 전에 죽었던 모든 의인들은 그들의 포로 생활이 끝났기에 기뻐하고,
천사들은 반쯤 허물어진 자기들의 도성이 다시 세워지는 것을 보고 용약합니다.

넘치는 은총으로 충만하신 여인이여,
모든 피조물이 당신 충만함의 흘러 넘침을 입어 새싹이 트듯 되살아납니다.
복되고도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여,
당신이 받으신 축복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로부터 축복을 받고
창조주께서는 그들로부터 찬미를 받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품안에서 태어나시고 자신과 같으시며
자신처럼 사랑하시던 외아드님을 마리아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본성상 하느님과 마리아의 유일하고 공통적인 아들이 되도록 마리아에게서 한 아들을 지으셨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같은 외아드님이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하느님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으셨습니다.
만물을 지어내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되시고 이렇게 하여
당신이 지어내신 모든 것을 재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만물을 지어내실 수 있었던 분은 실추한 피조물을
마리아의 도움 없이 재창조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창조된 만물의 아버지이시고 마리아는 재창조된 만물의 어머니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주형성의 아버지이시고 마리아는 우주 재형성의 어머니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만물이 창조된 분을 낳으셨고
마리아는 그를 통해서 만물이 구원된 분을 낳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치 못하는 분을 낳으셨고
마리아는 그 없이는 아무것도 제대로 존재치 못하는 분을 낳으셨습니다.

마리아여, 주님께서 참으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만물이 주님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큰 은혜를 입도록 하셨습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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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셀모 (’Opera Omnis’ 편지 112)

안셀모는 ’하느님이 헬멧으로 쓰시는 남자’란 뜻이다.
젊은 시절에 종교에 무관심하던 안셀모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성의 도움을 빌어 신앙의 진리를 분석하고 밝히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았다.

안셀모는 15세에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12년 후에 종교에 무관심하고 방종하며 여러 해 동안 세속 생활에 젖어 있던 그는
결국 수사가 되고 싶었던 소원을 이루었다.
그는 노르망디에 있는 베크 수도원에 들어간 다음 3년 뒤에는 부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5년 뒤에는 만장 일치로 대원장이 되었다.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사상가로 알려진 안셀모는 인내심이 많았으며
교양과 타인을 가르치는 기술 또한 뛰어났다.
그의 영도력하에 베크 수도원은 철학과 신학 연구에 있어 큰 영향을 발휘한 수도원 학교가 되었다.
한편 안셀모는 공동체의 요청에 따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에 비교할 만한 그 자신의 신학 저술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안셀모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쿠르 데우스 호모’(Cur Deus Homo: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는가?)이다.
1093년, 안셀모가 60세가 되었을 때 그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캔테베리의 대주교가 되었다.
처음에 영국의 왕 윌리엄 로베르는 그의 대주교 임명을 반대하다가 나중에 승인하였지만,
교회 개혁을 위한 안셀모의 노력에는 협력하기를 계속 거부하였다.
결국 안셀모는 1100년 로베르가 죽을 때까지 자청하여 귀양살이를 하다가 로베르의 형제이며 후계자인
헨리 1세의 부름을 받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의 주교들을 서품하는 왕의 권한에 대하여 헨리 왕과 강경하게 대립하던 안셀모는
또다시 로마에서 3년 간의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의 관심과 염려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쳤으며, 교회 안에서 노예 매매를 반대한 첫 인물이 되었다.
안셀모는 국회로부터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결의안 하나를 얻어 냈다.

안셀모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추종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만 했다.
그는 특히 정치 지배자들과의 갈등과 대립의 십자가를 졌다.
개인적으로는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으로서 평화를 사랑했지만
정의가 문제로 제기될 때에는 박해와 투쟁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아무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다른 소망을 하늘에서 가질 수 없다.
한 사람의 바람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의 바람과 각 사람의 바람은 또한 하느님의 바람이 될 것이다."

성 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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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시와 이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파의 변증법에서 이용하는 이성주의를 신학에 성공적으로 도입시킨 첫번째 인물이었다.

그는 완전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개념에서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한 일체성(Monologium)의 저자이다.

이 사상은 후대의 둔스 스코투스, 데카르트 그리고 헤겔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안셀모의 <왜 신인이냐?>는 중세의 강생에 관한 신학 논문 중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대작이다.

그의 저서 중에는 <성삼의 신앙에 대하여>, <동정의 개념>, <진리>, 그리고 편지와 기도 및 묵상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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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의 대학자이며 큰 인물이라고 칭찬 받은 성 안셀모는
1034년 이탈리아의 비에몬든 주 아오스타 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행사를 좋아하며 수도원에 들어가서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청년기에 이르자 어느덧 그런 훌륭한 결심을 버리고 경솔하게도 방탕한 생활로 흐르게 되었다.
아버지도 가끔 권면했으나 아무 효험이 없었으므로 벼러고 벼르던 끝에 엄벌을 주려고 하니 안셀모는 집을 뛰쳐나와 프랑스에 가서 3년이란 기간을 정처 없는 방탕생활로 보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양심도 마침내 각성할 때가 돌아왔다.
그는 과거의 실수를 후회하고, 그 보속으로 그 후부터는 성심껏 학문의 연구를 시작해 목적 달성을 위해 당시 박학하고도 유명한 랑프랑크 신부가 수도원장으로 있던 노르만디 주 베크의 수도원을 방문했다.
랑프랑크는 통회의 정이 비상한 청년 안셀모의 입회를 허락했는데, 곧 그 정신적 재능의 뛰어남을 인정하고 학문 뿐 아니라 영적 방면에도 적절한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이리하여 안셀모는 오랜 시련과 많은 역경을 겪고 난 후 겨우 1060년 베네딕토회의 수도복을 입게 되었다.
때는 그가 26세 되는 해였다.

그 뒤부터의 안셀모는 전보다 배로 열심히 분발해 곧 모든 수사들의 거울로 공경을 받게 되어 3년후에는 일찍이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연소한 몸이었으나 비상한 총명과 수단으로써 전 수도원을 다스리며 훌륭한 성적을 올렸고, 아울러 동료에게는 극히 관대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그리고 주간에는 많은 학생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고, 야간에는 거의 기도와 묵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또한 그는 거의 매일처럼 단식재를 지내고 십자가를 쳐다보고서는 늘 자신의 죄를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고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힘을 다해 피했다.

그의 박학과 성덕에 대한 소문이 점차로 세상에 퍼지자 수많은 학생의 무리가 그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
1093년에는 영국 왕 윌리암으로부터 그를 영국 제1의 대성전 켄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한다는 통지가 내려 국민들도 환영하며 그를 맞이했으나 안셀모는 노쇠해 그 임무를 맡을 수 없다고 이를 사퇴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를 무리하게 병석에 있는 왕의 자리에까지 모시고 가서 그의 손에서 주교 임명의 표지인 주교 목장(牧杖)을 받게끔 했다.
그러므로 안셀모도 왕이 몰수한 교회의 재산을 반환해 줄것과 정당한 교황 우르바노 2세를 인정한다는 서약을 듣고 나서 마침내 주교 취임을 수락했다.

그러나 이 주교직은 그에게 얼마나 많은 심적 고통을 주었는지 모른다.
왕은 병이 낫자마자 전의 약속을 잊은 듯이 매사에 교회를 압박하고 간섭했다.
안셀모는 이러한 왕의 비위를 거슬리게 되어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두 번이나 영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의 예지와 아버지와 같은 사랑은 결국 교회와 왕의 사이에 평화가 깃들게 하는데 성공했다.
대주교는 여러 가지의 심로와 노력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으나 마침내 승리를 거두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 후 곧 중병에 걸려 최후의 한 달 동안은 음식조차 취하지 못하고 1109년 성주간 수요일 마침내 한많은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달려갔다.
그 뒤 켄터베리 주교좌 성당에 있는 그의 묘에서는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고 독실하던 도리데니오 수도원장은 안셀모를"그의 신앙은 극히 깊었고 예지는 뛰어나고 그의 행위는 거룩하고 마음은 경건했으며, 그의 웅변은 유창했고 생활은 타인의 모범으로서 충분했다.
그는 전력을 기울여 사업을 행하고 끊임없이 성서를 묵상하고 모든 덕에 있어서 출중했다."하고 말했으니,이는 당연한 칭찬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720년 교회의 박사로 선언되었다.
단테는 신곡의 천국편((Canto ⅩⅡ)에서 태양권 안에 있는 빛과 힘의 영들 가운데 안셀모를 언급할 정도였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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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모

라틴어 Anselmus

Anselmus(1033∼1109). 성인. 북부이탈리아 태생의 그리스도교 사상가. 그는 어머니를 여읜 뒤, 프랑스 각지를 편력하다가 당시의 석학인 랑프랑(Lanfranc, 1005~1089)이 부원장 겸 교사로 있는 베크 수도원에 들어가 철학 · 신학을 공부하고, 1060년 수도사, 1063년 부원장을 거쳐, 1078년에 원장이 되어, 철학적 신학적인 활동이 풍성한 가운데 많은 저작의 완성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093년 잉글랜드 왕 윌리엄 2세에게 발탁되어 원하는 바도 아니었던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받고 나서 부터는 정치에 휘말려 갖가지 사건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로마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개혁이념을 받들어 교회의 자유와 권리증진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이 때문에 윌리엄 2세로부터 1097년 추방되었다.

1100년 왕의 사망으로 뒤를 이은 헨리 1세의 초빙을 받고 다시 캔터베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평신도에 의한 성직자의 임직 즉 서임권(敍任權) 문제에 대해 왕과의 의견 대립으로 다시 추방을 당해 로마에 망명, 1106년 왕의 양보로 협정이 성립되어 또 캔터베리로 돌아와 교회와 국가 사이에 ‘정교조약’(政敎條約, concordat)의 체결을 보았다.

그 이후 왕의 신임이 두터운 가운데 그는 영국에 되돌아온 지 4년 만에 타계하였다.

안셀모의 철학상의 입장은 아우구스티노의 "믿기 위해서 알고자 함이 아니고, 알기 위하여 믿는다"는 매우 주의주의적(主意主義的)인 명제로써 신앙이 앎의 전제라 하여, 신앙의 우위를 주장하면서도, 신앙자가 이성에 의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즉 ‘마음 속에서 터득하는 것’(intus legere)을 강조하였다.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진리 또는 실재(實在)를 다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하여 조용히 바라보는 사변(思辨)에 근거를 두고서, 정리신학(定理神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상세히 단독으로 취급하여, 뒷날 이 방면의 노작의 출현을 자극시켰다는 점에서 그가 신학발전에 끼친 영향은 대단히 컸다.

"신앙은 지성을 바란다"(Fides quaerens intellectum)는 것은, '화해를 바라는 신앙'의 입장이며, 신앙의 사실이나 원리를 논리에 의해 해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으며, 그의 관념과 이론에서 나온 수많은 해석 · 공식 · 분류 · 정의 · 개념구별 등의 용어가 비록 그의 창시는 아닐지라도, 오늘날까지 신학상의 관용어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의 주요저서를 보면, 성서의 의거하지 않고 이성만으로 신을 논한 ≪모놀로기온≫(Monologion, 1076),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되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신의 정의에서 출발하여, 그러한 신의 비존재(非存在)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명한 본체론적(本體論的)인 증명이 전개되는 ≪프로슬로기온≫(Proslogion, 1077), 이밖에 ≪진리론≫(眞理論, De veritate, 1080~1085), ≪왜 신은 인간이 되었는가≫(Cur Deus Homo, 1098),≪악마의 타락에 관하여≫(De casu diaboli),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성삼위일체의 신앙에 대하여≫(De fide trinitatis), ≪말씀의 강생에 관하여≫(De incarnatione), ≪성모 잉태에 관하여≫(De conceptu virginali et peccato originali), ≪예지(豫知), 예정(豫定) 및 신의 은총과 자유의지와의 일치에 대하여≫(De concordia praescientiae et praedestinationis nec non gratiae Dei cum libero arbitrio) 등을 들 수 있다.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은 제자인 라옹의 안셀모(Anselmus de Laon, 1050~1117)를 중심으로 하는 일단을 비롯하여 상 빅토르학파, 13세기의 프란치스코회학파 등이며, 이 밖에도 아벨라르(Pierre Abelard, 1077~1142)같은 사람이 부분적으로 그의 흐름을 수용하였다.

[참고문헌]

Aguirre, S. Anselmi theologia v.3, Salamanca 1679~1685 / J. Fischer, Die Erkenntnislehre

Anselmus von C., 1911 / F. Baeumker, Die Lehre Anselmus von C. uber den Willen und seine

Wahlfreiheit, 1912 / J. Slipyi, De principio spirationis in S.S. Trinitate, Lemberg 1926 / K. Fina, Anselm

von Havelberg: Untersuchungen zur Kirchen- und Geistesgeschichte des 12. Jahrhunderts, AnalPraem

32, 1956 / L.F. Barmann, Reform Ideology in the Dialogi of Anselm of Haverberg, ChHist 30, 1961.

가톨릭대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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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켄터베리의 주교였던 성 안셀모는 신학자로도 유명하지만 그가 이룬 가장 뛰어난 업적 중 하나는 1102년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의회에서 노예 매매 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인간을 가축처럼 사고 파는 행위의 부당함에 대해 아무도 의문시하지 않았을 때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결연히 일어난 첫 번째 투사였다.

자유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단순히 노예 상태에서 풀려 나는 자유뿐 아니라 두려움과 억압, 의심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태어날 때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은 신성한 권리다.

그러므로 자유가 억압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투쟁함으로써 스스로 그 권리를 얻어 내야 한다.

오늘 당신의 자유를 위해 투사가 되라.

앞으로는 그 어떤 부정적인 습관이나 그 어떤 부정적인 견해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확고한 자세를 확립하라.

그리고 걱정과 의심의 족쇄, 절망의 쇠사슬을 벗어 버리기로 작정하라.

마지막으로 성인들의 도움을 구하라.

특히 성 안셀모에게 죄에 얽매인 것들을 깨뜨려 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한다면 진리와 영원한 하늘나라의 자유로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나쁜 습관이나 부정적인 사고의 노예가 되지 않는가?

나는 그 어떤 것,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자유인이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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