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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의 생애와 영성
조회수 | 1,964
작성일 | 10.09.02
성 바오로의 생애

성 바오로 사도는 소아시아의 시리아 타르수스에서 출생했다.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열심한 유대인으로 살아가며 율법을 충실히 지키던 바리사이 아버지는 아들 사울에게도 종교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애썼다.

사울은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당시 타르수스에서 번성하던 그리스주의의 교육을 받고 그리스 철학과 역사, 문학, 언어 등에 능통했다. 이러한 그의 풍부한 교양은 후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울의 재능은 단순히 지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천막을 만들고, 주단을 짜는 등의 기술에도 매우 능통했다. 사울은 이 일만으로도 넉넉히 독립적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예루살렘에 보내어 신학과 히브리어를 연구하게 했다. 하지만 이때 바오로는 예수와 세례자 요한을 만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그리고 세례자 요한도 활동을 시작하기 전,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인 타르수스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바오로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그 신자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때 바오로는 타고난 불과 같은 열정과 이스라엘 전통안에서 그가 열심히 배웠던 유대교 율법에 대한 존경심에서 맹렬히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일 때를 비롯해 그리스도교 박해 때마다 늘 참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바오로가 어떤 사람인가.

즉시 그들을 체포하려고 군사를 이끌고 다마스쿠스로 향했다.

그런데 목적지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히 비추었다.

놀라 말에서 떨어진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바오로는 공포와 경악으로 떨면서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후 바오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부하들의 인도를 받아가며 다마스쿠스로 들어가 3일 동안 어떤음식도 취하지 않고 오로지 통회의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님께서 신비로운 영상 가운데 나타나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일어나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고 하셨다.하나니아스가 주님의 분부대로 사울을 방문해 안수를 하니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는 동시에 바오로는 시력을 회복하고 일어났다.

바오로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다마스쿠스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사도 9,19-20)

신자가 된 바오로는 전에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당시 드러낸 열의를 이제는 전교에 쏟기 시작한다. 그 박학한 지식을 무기로 삼아 눈부신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가톨릭신문 : 2009-11-08 [제267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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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가 복음 선포를 처음 시작한 곳은 다마스쿠스였다. 하지만 유대교인들이 그를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으므로 그는 박해를 피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루살렘 그리고 다마스쿠스와 타르수스 등을 거쳐 광야로 가서 10여년간 피난 수련생활을 통해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사도직을 준비했다. 그 동안의 의식주는 손수 천막을 만들어 해결했다.

이후 그는 한 나라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영혼 구원의 길을 가르치는 사도로서 일어섰다. 그는 가는 곳마다 신자들의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그만큼 도처에서 교회를 탄압하는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하느님께 합치했고 용감했던 그는 아무리 큰 고난이 닥쳐와도 하느님을 위해 온몸으로 인내했다.

특히 그의 노력은 이방인에게 집중됐다. 이방인들의 사도였던 만큼 그는 늘 길 위에 있었다. 특히 3차에 걸친 전도여행에 대한 열정은 유명하다. 3년 동안 진행된 최초의 여행을 통해 그는 안티오키아(오늘날 터키) 곳곳에 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처음은 이스라엘에서 가까운 나라이면서,

로마의 박해를 피해 피난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 크리스챤들이 머물고 있는 터키 지역을 선교한 후 그곳을 발판으로 점차 그리스 로마 그리고 유럽의 서쪽 끝에 있는 스페인 포르투갈까지 전교하겠다는 단계적 전교법을 이용했다. 그래서 제2, 제3의 전도 여행이 이어진다.

제2차 전도여행도 역시 약 3년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번에는 전에 교회를 세웠던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를 잠시 방문한 후 즉시 그는 그리스 지역의 필리피 테살로니카 아테네 코린토 지방 등으로 발을 옮겨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다. 제3차 전도여행은 5년이 걸렸다. 그 중 3년은 에페소에 머물렀다.

바오로는 전부터 로마를 방문하고 거기서 전교를 하다가 다시 멀리 스페인과 포르투갈까지도 가려고 결심하고 있었으나 그 실현에 앞서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유대교도들에게 체포되어 2년간을 카이사리아의 감옥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으므로 황제에게 상고하고 그로 인해 로마로 호송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바오로는 후에 스페인에 갔다가 다시 동쪽 나라로 간 후 다시 로마로 향했다. 그리고 네로 황제의 박해 중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아 서기 67년에 참수 당했다 한다. 성 바오로는 생존 시에 직접 세운 교회나 제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14통이나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신약성경으로 인정받아 지금도 예수의 가르침을 증명하는 귀중한 문헌으로 되었다.

기록상으로만 볼 때 바오로의 활동은 다른 사도들보다 훨씬 많았다. 그는 수많은 나라에 가서 전교하며 갖은 환난을 당했다. 그는 자기 스스로도 말한 바와 같이 종종 감옥에도 갇히고 죽을 위험을 당하고 냉대와 학대를 받았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40대에서 한 대 모자라는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로마인들에게서도 태형을 세 번 당하고 세 번 파선을 당해 일주일 동안 바다위에서 표류한 일도 있었다.

또한 죽음의 위험, 병고, 기갈, 단식, 추위, 노고, 영적고통 등 일체를 그리스도를 위해 인내했다. 예수야말로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갈라2,20)는 그의 말대로 사랑하는 예수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열렬히 원했다.

그 희망은 성취되어 그는 지금 성스러운 사도, 영광스러운 순교자로서 천국의 영복을 누리고 있다.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최인자 엘리사벳 선교사
가톨릭신문 : 2009-11-15 [제2672호, 10면]
  |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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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의 영성

바오로 사도도 우리처럼 육체와 정신을 지닌 인간이었다. 당연히 청소년기가 있었다. 우리들처럼 부모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바오로의 아버지는 율법을 엄격히 지켰던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틀 안에만 갇혀 지낸 그런 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바오로에게 철학 역사 문학 언어 등 당시 최고의 그리스 학문을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고액과외를 시킨 셈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아들 바오로를 예루살렘으로 유학까지 보낸다.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신학과 히브리어를 배웠다. 바오로가 예루살렘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시점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할 시점이었다.

따라서 바오로는 예수님에 대해 당시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바오로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시기는 대략 3년 후. 바오로는 이때서야 비로소 예수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전교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철저한 바리사이파 유대인으로, 최신 학문과 선진 문물을 접한 지식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의 제자들은 허황된 말로 민중을 기만하는 집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이들을 잡아 옥에 가두는 등 박해활동에 앞장섰다.이렇게 바오로는 약 3년간 박해 활동에 적극 나섰다.

바오로는 차츰 박해에 있어서 과격성을 띠게 된다. 직접 도망간 신앙인들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프리카의 북동부 이집트까지 가려 했는데, 우선은 가까운 다마스쿠스를 1차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오로는 빛을 만나게 된다. 빛을 만났다는 것은 하느님을 만났다는 말이다. 이때 바오로는 변화하게 된다.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삶의 결정적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지금까지 바오로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도 누구 못지않게 많이 했다.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도 엄격함을 이야기하라면 그 누구보다도 엄격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을 완전히 낮추고 복음 선포에 앞장서게 된다.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삶의 전환기를 맞을 때가 있다. 이런 전환들은 만남을 통해 이뤄진다. 좋은 친구, 훌륭한 스승, 아름다운 이웃은 모두 삶을 전환시키는 훌륭한 만남들이다. 바오로도 이제 하느님과 만나게 되면서 삶이 변화하게 된다.

깨달음은 ‘나’를 완전히 낮추게 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하느님이라는 신적 존재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하느님이라는 신적 존재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 것 자체가 깨달음이다. 바오로도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 본격적인 수련생활에 돌입한다. 그 기간이 무려 10년이다.

이 10년 동안 바오로는 완전히 변화하게 된다. 하느님의 빛에 의해 변화된 바오로의 내적 영성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한번 마음먹는다고 바로 완덕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성인품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련이 필요하다. 수도회에 입회했다고 해서 성인성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수련 기간을 거쳐서 진정한 완덕에 이르는 것이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오로는 하느님의 빛을 통해 깨달았다. 과거의 삶이 육신적, 정신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깨달음은 수련을 통해 변화로 이어진다. 그 기간이 10년이었다. 31세에서 41세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31세에 회개하고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주위를 보라. 나이 50, 60이 돼도 권력과 돈만 추구하고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최인자 엘리사벳 선교사
가톨릭신문 : 2009-11-22 [제267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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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의 1차 전도여행은 대부분 오늘날의 터키지방인 소아시아에서 이뤄졌다. 2차 전도여행 때는 1차 전도여행지를 살짝 거친 뒤, 그리스지방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을 하다 보니, 1차 전도여행지에서 자꾸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1차 전도여행을 통해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공소회장을 뽑고, 지역장 및 구역장을 인선하고 떠나왔는데, 그 지역에서 자꾸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같으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잘못을 바로잡으면 되겠지만 당시엔 전화가 없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선택한 것은 편지였다. 제일 먼저 쓴 편지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바오로 사도는 ‘내 편지를 읽고 이제는 신앙생활을 잘 하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또다시 복잡한 문제가 많이 생겼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래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를 쓴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크게 종말론과 노동문제 두 가지로 요약된다.

테살로니카 지역에 이단이 들어와 “멀지 않은 시기에 종말이 온다”고 말하고 다녔다. 신자들은 혼란해 했다. 바오로는 단호히 이러한 이단에 대처한다.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1테살 5,1-11) 사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늘 깨어 기도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 노동문제는 종말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빚어진 문제다. 종말이 2~3개월 안에 찾아온다면 일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당시 테살로니카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 바오로 사도는 교리를 열심히 실천하며 성실하게 일하고, 쉬는 시간까지 하느님께 봉헌하며 하느님 영광을 실현하라고 가르쳤는데 정작 신자들은 이단에 빠져 흥청망청 살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가 화가 날 법도 하다. 마음도 무척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쓴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2테살 3,6-10)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성실한 삶을 살았다. 전도여행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도는 자신의 생계만큼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 해결했다.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였는데도 테살로니카 신자들은 불성실한 생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권고한다.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1-12)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쉬지 않고 끊임 없이 영적인 활동을 계속 하시고 계신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쉼 없이 열심히 영적인 활동을 하시는데 우리가 게으르고 나태하다면 말이 되겠는가.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에게 하느님은 쉼 없이 영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계시는 분으로 다가온다.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최인자 엘리사벳 선교사
가톨릭신문 : 2009-11-29 [제267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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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티아 교회는 바오로 사도가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다. 그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 문제도 큰 문제다. 당장 달려가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전교할 지역이 많아 다시 그곳으로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편지를 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가톨릭 교리를 배우고, 신앙을 익히고, 진리를 깨닫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배우고, 익히고, 깨달을 수 있다. 사제도 많고, 수도자도 많고, 전문적 지식을 가진 평신도 교리교사들도 많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 시대에는 진리를 알고 있던, 진리를 가르칠 수 있었던 사람이 극소수였다. 그러다 보니 귀동냥으로 교리를 배우고, 귀동냥으로 진리를 깨닫는 이들이 많았다. 결국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는 사람이 많았다.

갈라티아 교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혹은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막 전파되기 시작하던 당시로서는 혼란스러웠던 문제였다. 예수님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교회를 분열시키는 가르침을 펴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소위 교회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일부 평신도들이 이런 일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이들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에 혼란을 가져다준다. 어떻게 식별해야 할까. 이러한 혼란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경고를 한다.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갈라 1,6-7)

그리고 명쾌한 해답을 내린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완성시키신 분이다’ ‘예수님은 완성된 진리를 가르치신 분이다’라는 것이다. 해답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갈라 2,16)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율법과 믿음, 의로움에 대해 말한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죽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필리피 신자들에게 전하는 편지는 감옥에서 쓴 것이다. 감옥 안에서 바오로 사도는 죽음 문제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된다. 옥중에 있기 때문에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죽음에 대한 성찰이 깊어지게 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서 직접 죽음을 묵상하면서 쓴 필리피서에 그 해답이 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어떠한 경우에도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필리 1,20-22)

바오로 사도는 죽음 문제를 초월해 있다. 사도에게는 이제 두려움이 없다. 살든지 죽든지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이해되고 있다. 바오로 사도의 삶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최인자 엘리사벳 선교사
가톨릭신문 : 2009-12-06 [제267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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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 교회는 말썽꾸러기 교회였다. 항구 도시였던 코린토는 향락의 도시였고, 미신을 믿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코린토 교회에서는 교리 문제 등 여러 가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에 장문의 편지를 쓴 이유다.

그럼 코린토 교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우선 당파 싸움 문제다. 코린토 신자들은 자신이 각자 추종하는 사도와 설교자들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에 서간을 쓴 이유도 바로 이 교회내 파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많은 ‘분열’을 목격한다. 이런 분열은 대부분 ‘조금 신앙생활 해 봤다’는 사람들에 의해 조장된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자신을 중심으로 놓고 교회와 신앙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개신교 교회에서 볼 수 있듯이 가톨릭 교회는 이미 수천 수만의 종파로 분열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내 말이 옳다’‘내 묵상이 절대 진리다’라고 말하지 말고, ‘공동체의 말’‘공동체의 묵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한다.

분열 문제 못지않은 문제가 신자들간의 소송문제였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1코린 6,1-5)

이번에는 파벌간, 당파간 싸움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다툼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모이면 개인 간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도 인간이 모인 공동체인 탓에 ‘싸움’이 없을리 없다.

실제로 본당 공동체는 많은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악의적인 의도에서든 그렇지 않든 다른 신자에게 피해를 주는 신자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코린토 신자들은 교우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 법정에 가서 호소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경우가 많다. 교우들 간에 돈 문제가 생기면 법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교우인데도 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법원에 고소장을 낸다.

고소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면 이렇게까지 하겠느냐’며 항변할 수 있다. 실제로 법에 호소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법정에 고소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1 코린 6,7)

받아들이기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다. 억울하고 하소연할 곳은 법정밖에 없는데, 당하면서 살라는 말인가?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지 말라는 말인가? 속시원한 해결책은 없을까.

본당 공동체의 다양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단초는 소공동체에 있다고 믿는다. 소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영적인 힘이 생기고 지혜가 생긴다. 이 세상의 각종 반목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느님이고, 그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영적인 에너지가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이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 원동력이 공동체 기도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가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소공동체 만남. 소공동체 기도. 소공동체 대화. 소공동체 안에서의 상호돌봄”이다. ‘법’과 ‘사랑’중에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법은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 법은 하한선이고 사랑은 상한선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교회안의 지혜로운 이를 찾아가자.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하며 해결하도록 노력하자. 신앙인들만이라도 이제 지혜롭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 모범이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최인자 엘리사벳 선교사
가톨릭신문 : 2009-12-13 [제267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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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바오로 사도 신학의 결정판으로 불린다. 로마서는 동시에 바오로 사도가 쓴 편지 중 가장 마지막에 쓴 글이기도 하다. 친서 중 가장 마지막에 작성된 만큼 바오로 사도가 모든 정열을 쏟아부어 자신의 영성과 신학을 정립해 작성한 서간이다. 그래서 로마서를 보면 바오로 사도의 영성이 보인다.

‘하느님은 의로운 분이다.’

이것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전체에 흐르고 있는 큰 주제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의로움이 하느님 안에만 머물러 있을 때는 의미가 없다. 인간의 의로움과 연관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럼 이 의로움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1장 17절을 보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22)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만 되면 사람은 의롭게 된다.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왜 의롭지 못한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욕심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살기 때문에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의로운 하느님은 우리 인간도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복음(그리스도)이 우리에게 왔다. 복음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서 하느님처럼 우리도 의롭게 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의는 과연 무엇을 담고 있을까. 처벌이나 심판이 아니라 자비와 용서다. 하느님은 무한히 우리를 용서하신다. 하느님의 용서는 인간적 차원(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용서의 한계)를 넘어선 하느님 차원의 용서다. 무한대의 차원, 초월적 차원의 용서다.

이처럼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니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면 우리도 의롭게 된다. 우리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면 자비로울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이 우리를 의화(義化)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의화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바오로 사도의 영성이다.

믿으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의로운 관계가 된다. 그래서 구원이 이뤄진다. 인간은 원래 불의하다. 하지만 예수님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게 되면 이 불의한 것이 의롭게 변화된다.

바오로 사도가 한 유대인과 대면하고 있다. 그 유대인은 율법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느님을 자랑하고, 하느님 뜻을 알고, 율법을 배워서 분별할 줄 알고, 눈 먼 사람에게 길잡이가 되고,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에게는 빛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그는 율법에서 모든 지식과 진리의 근본을 터득하여 무식한 사람에게 지도자가 되고 철없는 자에게는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율법으로서 모든 것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고, 율법을 통해서 완덕으로 도달할 수 있고,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바오로 사도가 일침을 놓는다.

“그렇다면 남은 가르치면서 왜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왜 그대는 도둑질을 합니까?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그대는 간음을 합니까? 우상을 혐오한다고 하면서 왜 그대는 신전 물건을 훔칩니까? 율법을 자랑하면서 왜 그대는 율법을 어겨 하느님을 모욕합니까?”(로마 2,21-23)

오늘날 우리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아집과 독선, 교만, 정형화된 사고, 영적 게으름을 늘 경계해야 한다.

중심은 그리스도다. 율법, 겉치레가 중심이 아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화해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로마 6,8 참조)

구원은 대충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 당신의 은총을 계속 주기 때문에, 더 나아가 인간을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 계속해서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인간은 언젠가는 의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최인자 엘리사벳 선교사
가톨릭신문 : 2009-12-20 [제267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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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보자. 필레몬이라는 공소회장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필레몬에게는 오네시모스라는 이름의 노예가 있었는데, 이 노예가 달아났다. 탈출에 성공한 노예는 고민에 직면한다.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노예의 몸에는 노예임을 알리는 문신 같은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런 몸으로 길거리를 다니다간 체포돼 사형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노예는 고민했다. “어디로 갈까….” 노예는 자신의 주인(필레몬)집에 머물며 감동적인 설교를 하던 바오로 사도를 기억해 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바오로 사도나 한번 찾아가 보자. 바오로 사도처럼 인자한 분이라면 자신을 받아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후 노예는 바오로 사도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소문을 듣는다.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노예는 체포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를 찾아간다. 죽음에 임박한 바오로는 감옥에서 이 노예에게 예비자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베푼다. 그리고 노예를 다시 필레몬에게 보낸다. 그러면서 이 편지를 작성한다. 다급하게 써서 주다보니 분량이 1장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은 성경 중에서 제일 짧은 서간이다. 내용을 보자.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필레 1,10-12)

노예를 돌려 보내는 것은 내 심장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노예 오네시모스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는 “그가 그대에게 손실을 입혔거나 빚을 진 것이 있거든 내 앞으로 계산하십시오. 나 바오로가 이 말을 직접 씁니다. 내가 갚겠습니다”(필레 1,18-19) 라고 말할 정도다.

노예는 이 편지를 들고 주인(필레몬)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이후 노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필레몬의 환대를 받으며 행복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읽을 때 마다 ‘소유’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바오로 사도는 필레몬에게 “그가(노예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필레 1,15) 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잃은 것은 잃은 것이 아니고, 얻은 것은 얻은 것이 아니다.

바오로 사도는 요즘 말로 이야기 하면 감옥을 들락날락했던 분이다. 50세에 에페소 감옥, 53세에 가이사리아 감옥, 56~58세에 로마 감옥 등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영적 육체적으로 강인하지 않았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힘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하느님께 받은 영적인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바오로 사도는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필레몬서를 비롯한 많은 서간을 통해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얼마나 영적으로 강인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영적인 내면형성이 잘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바오로 사도는 어린 시절에는 정신적 차원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유학시절 학자들과의 교류에서는 지식적인 차원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 바오로 사도는 정신적 차원의 발판, 지식적 차원의 발판을 토대로 영적인 단계로 나아간다. 바오로 사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합치였다. 또한 수련 생활을 통한 지혜,수련생활 안에서 매순간 깨닫는 경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필레몬서와 같은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주님의 생애는 그렇게도 철부지같은 인간을 위한 철저한 나눔의 생애로 부서졌지만, 우리는 어찌 이리 소유를 위해서만 숨이 찬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가져 온 것이 없고 아무것도 가져갈 것 없는 순례자인 우리가 이기와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잠시 빌려 받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최인자 엘리사벳 선교사
가톨릭신문 : 2009-12-27 [제267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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