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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조회수 | 1,390
작성일 | 10.09.02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의 수위권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요한 21,18)

이는 베드로 사도의 순교에 관한 예언이었다. 과연 훗날 성 베드로 사도는 로마에서 순교를 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 후계자들인 교황들도 초기 약 30여 명이 순교를 통해 신앙을 증거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중 특히 유명한 분이 제4대 교황인 클레멘스 1세(st. Clemen 1 papa, M. 축일 11.23)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교황 클레멘스 1세는 베드로 사도에 의해 직접 주교로 축성되었다 한다. 결국 클레멘스 1세는 베드로 사도, 바오로 사도와 같은 시대 인물로 사도들에게 직접 진리를 배웠으며 하느님께 대한 열애의 정신을 고취 받았다. 실제로 교황 클레멘스 1세의 이름은 바오로 서간에도 나타난다.

“나의 진실한 동지여, 이 여자들을 도와주도록 그대에게도 당부합니다. 이들은 ‘클레멘스’를 비롯하여 나의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싸운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이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필리 4,3)

이를 볼 때 클레멘스 교황은 젊었을 때부터 바오로 사도를 도와서 전교에 진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성 리노 및 성 클레토(아나클레토) 두 교황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것만 봐도 교회에 대한 그의 공로가 상당히 컸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특히 학식이나 신앙도 당시 신앙인 중 가장 탁월했을 것이다.

클레멘스가 교황이 된 때는 아직 박해가 끝나기 전이었다. 백발의 노구를 이끌고 박해의 두려움에 떠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카타콤바에 숨어 미사를 지내고 어린양들의 신앙을 보존키 위한 노고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또한 순교자가 날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형장에 나아가 그들에게 최후의 축복을 주었다.

그랬던 그에게 걱정이 하나 있었다. 코린토 교회 신자 간에 불화가 생기고 알력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교회에는 외부의 박해보다 내부의 반목이 더 무서운 일이다. 이를 간파한 교황 클레멘스1세는 노쇠하여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어 정성어린 서한을 써 그들에게 보냈다. 이 서한이 소위 클레멘스의 서한이다.

코린토 교회 교우들은 20여 년 전에도 비슷한 불화소동을 일으켰으나 바오로 사도의 애절한 서간에 의해 겨우 진정된바 있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반목과 불화가 일어난 것이다. 클레멘스 1세 교황은 자비로운 아버지와 같은 두터운 애정으로 그들의 잘못을 밝히며, 코린토 교회의 창설자 바오로 사도의 낯을 보아서라도 조속히 반목을 일소하고 평화롭게 일치단결할 것을 설득했다. 결국 코린토 교회 신자들은 클레멘스 1세 교황의 설득에 의해 화해하게 되었다.

이 서간은 로마의 주교가 교회 초대로부터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전 세계 온 교회를 통치하는 권리를 보유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귀중한 살아있는 역사적 자료다.

그 필치는 깊은 신앙과 애정이 넘치며 구약, 신약의 지식이 풍부한 점으로는 사도 성 바오로를 방불케 한다. 더 나아가 간결하고 겸손한 인사, 그리고 가히 침범치 못할 박력을 갖고 있는 점으로는 사도 성 베드로를 생각하게 한다.

이 서간은 초기 교회 때부터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4세기 말엽까지 바오로 사도의 서간과 더불어 미사 때 낭독되었다. 이는 요즘말로 하면 그의 편지가 성경의 권위를 인정 받았다는 의미다.

로마의 박해는 계속되었다. 100년경, 교황 클레멘스 1세는 다른 수많은 순교자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순교의 전말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도 남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하지만 성 바오로 사도가 그를 두고 말한 대로 그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적혀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최인자 엘리사벳 선교사
가톨릭신문 : 2010-01-17 [제268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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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는 가장 먼저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한다. 하지만 초기 교회 당시만 해도 동사무소가 없었다. 당연히 성 클레멘스 1세 교황도 출생 신고 자료가 없다. 기록이 없으니 정확히 언제 출생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성서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서기 3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돌아가신 것은 대략 101년 경, 71세 때였다.

바오로 사도와 비교할 때 교황은 약 25년 아래 나이로 추정된다. 바오로 사도와 클레멘스 교황이 처음 만났을 때는 나이가 각각 40세, 15세가량 됐다. 13세, 14세 정도의 나이에 마카오 유학길에 오른 소년 김대건, 최양업을 떠올릴 수 있다. 클레멘스 교황은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바오로 사도를 따라 전도여행을 하며 복음의 핵심을 전수 받는다.

클레멘스 교황은 또 베드로 사도와도 만남이 깊었다. 아마도 바오로 사도의 소개로 만났을 것이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입장에서 볼 때 클레멘스 교황은 분명히 한 세대 아래의 혈기 넘치는 젊은이였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 리더를 양성할 필요가 있었는데, 클레멘스는 1순위 후보자였다. 현장 경험, 복음 선포에 대한 열정, 사도 및 교회에 대한 충성심 등 모든 면에서 그랬다.

결국 교회의 반석, 베드로는 클레멘스를 축성한다. 축성된 클레멘스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코린토 교회에 말썽이 생긴 것이다. 20년 전 코린토 교회는 바오로 사도의 간곡한 편지를 통해 간신히 분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또다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주교로서 세계 각지를 다니며 사목해야 할 클레멘스는 코린토 교회에 직접 연민의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문제를 해결한다. 이후 왕성한 전교활동은 벌이던 클레멘스 주교는 서기 100년 직전에 교황직에 오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했다.

클레멘스 교황의 일생을 보다보면 하느님의 큰 섭리를 느낄 수 있다. 15세가 채 되지 않았던 청소년 시기 때 이미 바오로와 베드로 사도를 통해 진리를 만나게 하셨다. 거꾸로 말하면 청소년 클레멘스는 하느님 은총을 적극 받아들이고 깨닫고 순명하며 따랐다. 한 명의 청소년 신앙인을 양성하는 것은 클레멘스 교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회의 미래를 세우는 일이다.

만약 클레멘스 교황께서 청소년기에 바오로와 베드로 사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만났다 하더라도 그 만남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발견해 내지 못했다면 역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를 만남을 통해 준비시키셨고, 클레멘스 교황은 그 만남을 받아들이고 승화시켰다. 결국 그는 마지막 순간에, 순교를 당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굽힘없이 목자 역할을 당당하게 수행하며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냈다.

그는 연민의 마음 가득했던 교황이었다. 분열과 반목으로 시끄럽던 코린토 교회에 연민의 마음을 가득 담아 편지를 썼다. 이러한 연민은 로마의 혹독한 박해로 고통받는 신자들에게로 확장된다. 또 이 연민은 사회적 차원에서, 넓은 차원에서 자비로 나타난다.

사실 클레멘스 교황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오늘날 사제들은 아무리 어렵다 해도 누구나 편안한 집(사제관)이 있다.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이면 난방기구가 있다. 하지만 클레멘스 교황은 집이 없었다. 소위 문전걸식을 하며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신앙인들을 돌보았다. 미사도 숨어서 봉헌해야 했다. 감옥에 갇혀있는 신자들을 찾아가 위로했으며, 순교자들을 위해서는 멀리서 크게 손을 들어 강복해 주었다. 그러다 결국에는 스스로도 순교자 반열에 들었다.

교황 클레멘스 1세는 자신의 삶 안에서 주어지는 은총과 섭리를 형식적, 무감각적, 습관적, 일상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과 ‘영’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다. 하느님이 원하시고 계획하신 선형성을 완수하는 삶을 살았던 클레멘스 교황께 감사드린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조용히 무릎 꿇고 클레멘스 교황을 생각하며 묵상한다.

“일상 삶 안에서 매일 매일 순교하는 거룩한 삶을 살고자 결심 합니다.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수원교구 정영식 신부
최인자 엘리사벳 선교사
가톨릭신문 : 2010-01-24 [제268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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