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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성 니콜라오 주교
조회수 | 1,304
작성일 | 11.02.12
굶주린 이들 위해 평생을 헌신한 성인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선행 실천하려 사제 결심
생전에 수많은 기적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이 도와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성인을 꼽으라면 단연 미라의 성 니콜라오 주교(축일 12월 6일)를 들 수 있다. 일명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가져오는 수염 많고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독일을 비롯한 전통적 가톨릭 국가에서는 그 축일인 12월 6일에 친지 중 한 명이 성 니콜라오로 분장해 착한 아이에게는 상을 주고 나쁜 아이에게는 훈계를 하는 전통이 있다.

성인은 270년 소아시아의 파타레에서 부유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양친을 일찍 여의어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는데, 그 재산을 모두 자선 사업에 사용할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과 관련해 수많은 일화가 전해져 오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세 명의 딸을 둔 어느 아버지가 있었는데, 집안이 가난해 한 명도 출가 시킬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니콜라오는 그 딸들을 돕고자 했다. 하지만 겸손한 성격의 그는 요란하게 소문을 내며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몰래 선행을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밤에 아무도 모르게 그 집으로 가서 한 명의 딸이 출가하기에 넉넉한 돈을 담 너머로 던져 놓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밤에도 둘째 딸이 출가하는데 필요한 돈을 던져 놓고 돌아왔다. 하지만 선행도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세 딸의 아버지는 은인이 누구인지 궁금해 셋째 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렸다. 셋째 딸의 결혼 지참금을 던져주기 위해 그 날 밤 방문했던 니콜라오는 결국 아버지에게 들키게 된다. 당황한 니콜라오는 이 일을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미담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착한 니콜라오는 더 많은 선행을 실천하기 위해 사제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결국 사제가 됐다. 그런데 사제가 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다. 미라의 대주교가 서거하자 그를 이을 적당한 인물이 없었다. 후임자를 찾기 위해 주교들이 열심히 기도하자 어느 날 밤,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아침 제일 먼저 성당에 들어오는 니콜라오라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의 눈에 가장 적당한 인물이다.”

실제로 다음 날 아침 니콜라오가 성당에 조배하러 가장 먼저 들어왔다. 주교들이 이름을 묻고 니콜라오임이 확인되자 니콜라오를 곧바로 주교로 축성했다. 니콜라오는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으나 하느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주교들의 말에 기쁘게 승낙하고 책임을 맡았다.

성인은 이후 체포되어 투옥되는 등 박해도 많이 받고 고초도 많이 겪었지만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이후 종교 자유의 시대가 오자 신자들의 쇄신과 이교도들의 개종을 위해 전력했다.

성인은 이와 함께 박애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성인이 몸담고 있던 교구에선 수많은 이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성인은 빈민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동시에 수많은 기적을 통해 교구민들을 구제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식량을 가득 실은 수척의 배가 폭풍에 밀려 해안에 표착했다. 그때 미라 시민은 기아에 허덕이는 때였다. 성인은 각 배의 선장에게 식량을 기증해 줄 것을 간청했다. 주교의 간청에 못 이겨 선장들은 식량을 분배해 주었다. 그런대 출항 후 배에 있는 식량을 점검해 보니 식량이 전혀 줄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성인은 또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고 사형을 받게 된 억울한 청년들을 구해주었으며 모함으로 처형될 위기에 처한 고관도 하느님의 힘을 빌려 기적적으로 구출하기도 했다. 특히 위험에 처한 선원들의 생명을 기적적으로 구해준 일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니콜라오 성인은 선원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리기도 하다.

그는 341년에 세상을 떠났다. 살아있을 때에 많은 기적을 통해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준 성인은 사후에도 전구를 통해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 1087년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의 바리로 이송됐다. 그 후 묘를 방문하는 사람을 통해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성인의 묘소를 찾아 순례하고 있다.

정명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주임,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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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합치로 진정한 관계의 완성 이뤄
박해 고난 속에도 신자들 향한 사랑 키우며
이방인들 위한 목자로 이도교 개종에 힘써

우리는 이웃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간다. 하느님은 이미 내 안에 ‘형성의 진리’를 심어 주셨고, 이 세상을 ‘형성의 장’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을 닮아 형성되도록 창조되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향하도록 형성되었고, 그 형성의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영성생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관계’다. 부모, 친구, 가정, 사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궁극적 진리를 향해 형성되어 간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관계 안에서 진리를 터득한다. 사실 관계가 우리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어지는 관계도 그렇고,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관계도 그렇다.

니콜라오 성인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부유한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때문에 성인은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랬던 그는 가난한 이웃을 만나게 된다. 성인은 가난한 이웃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고, 그 관계를 잘 형성시켜 나간 것이다.

물려받은 유산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성인은 그 많은 재산을 오직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관계를 애덕으로 승화한 것이다.

그런 그가 사제가 되고 주교가 됐다. 이후 맺게 되는 관계는 로마와의 관계다. 그런데 이 관계가 쉽지 않았다. 33세경에 주교가 된 성인은 34세부터 박해를 받아 10여 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인간적 유혹을 받았을 수 있다. 박해를 하는 로마와 타협해 배교를 하고 인간적으로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은 로마와의 불편한 관계를 ‘선택’한다. 하느님과의 합치를 이루며 신앙인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로마와의 불편한 관계를 통해, 진정한 관계의 완성을 이룬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관계의 완성이란 하느님과의 합치를 의미한다.

과거 민주화 운동 시절 당시, 원주교구의 고 지학순 주교님께서도 감옥에 갇힌 일이 있다. 지 주교님께서는 공동 감옥에 수감 되셨는데, 방에 있는 화장실을 손수 청소하는 등 모범을 보이셨다고 한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이처럼 삶의 모범으로 드러나게 된다. 니콜라오 성인의 감옥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성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늘 하느님과 합치하며 신자들에 대한 사랑의 열망을 키워 나갔다.

이후 종교 자유의 시대가 왔을 때 석방된 성인은 곧바로 이방인을 위한 목자로 활동한다. 특히 이교도들의 개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당시 교회는 많은 이단들로 인해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 이단이 골치였다. 아리우스파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고, 예수님이 단순히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라고 설교했다. 아리우스 이단과 관련해 니체아공의회가 열렸는데, 니콜라오 성인이 이 공의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거짓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신자들이 바른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즈음 니콜라오 성인은 많은 세속적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세 명의 청년들이 누명을 쓰고 자칫하면 사형을 당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몇 명의 고관들도 누명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을 처지였다. 이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필요했다.

오늘날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앙문제와는 별도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종종 고민을 하게 된다. 진리를 위해 앞장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속적 문제보다는 내적 신앙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적 신앙생활과 사회에 대해 진리의 목소리를 외치는 것은 별개로 놓고 볼 문제가 아니다. 이 두가지는 마차를 함께 끌고 가는 두 바퀴다. 내적 신앙생활의 완성은 진리의 선포로 이어지고, 진리의 선포는 내적 신앙생활의 자연스런 결과다. 완덕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선(善)은 저절로 넘치는 법이다’(Bonum sui diffusivum est, 라틴어 격언)

그렇다면, 니콜라오 성인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을 위험에 처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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