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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모니카
조회수 | 1,649
작성일 | 11.02.12
가난한 이 동정하신 ‘경건한 자모의 거울’
신심 두터운 가정에서 자라나 선량한 성품 지녀
기도의 힘으로 남편·시어머니 신앙으로 이끌어

자녀가 부모 속을 썩이는가.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가. 부모 뜻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귀가 막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가.

만약 자녀 때문에 맘 고생 심한 부모가 있다면 함께 모니카 성녀(Sta. Monica. 축일 8.27)를 바라보자.

요안나 샹탈이라는 과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품행이 방정치 않은 아들 때문에 걱정이었다. 그래서 아들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음성이 들려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제8편을 읽어라!” 책을 읽어보니 모니카 성녀의 이야기가 있었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를 위해 모니카 성녀는 수년 동안 끊임없이 기도했고, 결국 아들의 회개를 이끌어 냈다는 기록이었다.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후 열심히 수덕에 힘써 대성인이 된다. 요안나는 이에 탄복하고 노력을 하며 성녀 모니카를 본받았다고 한다. 물론 요안나의 아들 또한 회개를 하고 올바른 길을 걸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모니카 성녀를 교회는 경건한 자모의 거울이라고 부른다. 성녀 모니카는 332년 아프리카 북쪽 타카스테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양친은 신심이 두터운 명문 출신이었으나 집안은 매우 가난했다. 어린 모니카는 선량한 성격을 지닌 착하고 온순한 아이였다. 특히 기도를 위해 성당에 가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마음이 남달랐고, 특히 병중에 있는 빈민에게는 따뜻한 동정의 손을 펴 가끔 자신이 먹을 것까지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때도 있었다. 또한 그녀는 용감스런 순교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누가 보아도 동정으로 일평생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야말로 모니카에게 적합한 성소였다. 그러나 부모는 그녀를 결혼시키려고 결정했고, 그녀는 온순히 부모의 뜻에 따랐다. 상대자는 가톨릭신자가 아닌 이교인이었다. 이름은 파트리치오다.

남편은 가난한데다 나이도 많았고, 난폭하고 걷잡을 수 없는 성격의 한량이었다. 처음에는 젊은 아내를 사랑했던 것 같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변해 냉정한 태도를 취했다. 사랑 없는 결혼생활, 그것만으로도 모니카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어머니도 매우 까다로운 성격으로 매사에 모니카를 괴롭혔다. 아직 나이어린 모니카로서는 이 모든 것이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니카는 자신의 신앙과 기도의 힘으로 남편과 어머니를 회개시키고, 신앙의 길로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언제나 온순하고 친절하게 상대방을 대했다. 절대로 다른 사람의 흉을 보거나, 헐뜯어 말하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괴로워도 얼굴에 짜증내는 기색이 없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가장 먼저 시어머니가 변화됐다. 시어머니는 그녀의 한결같고 순결한 태도에 감복해 가톨릭신앙을 받아들였다. 남편 파트라치오도 모니카의 고결한 삶에 감명을 받았고, 차츰 신앙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더니 결국 세례를 받고 신심 깊은 신자가 됐다. 당연히 난폭한 성격도 고쳤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의 태도도 변화됐다.

이후 모니카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갔다. 이제 모니카는 세 자녀를 낳았다. 둘째 아들 나비지오와 셋째 딸 페르페투아는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늘 성실하고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장남 아누구스티누스는 달랐다. 장남은 불효자였다. 그는 나쁜 행실로 오랫동안 어머니 모니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장남의 악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성질은 어린 시절부터 나타났는데, 학창시절부터 이미 향락에 빠져 살았다. 공부는 잘했지만, 윤리적으로는 타락한 삶을 살았다. 게다가 가톨릭신앙이 아닌 이단 마니교에 심취했다.

어머니 모니카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점은 그녀에게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했다. 그녀는 이대로 나간다면 아들의 앞길에는 멸망과 절망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 파트라치오가 죽었다. 모니카는 가사를 비롯해 집안의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해내야 했다.

정영식 신부 ·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 최인자 · 엘리사벳 · 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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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위해 평생 외길 걸으셨던 성녀
인내와 기도로 아들 아우구스티누스 회개 시켜
고행 자처하며 가난 중에 자비 베푸는 삶 살아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행동은 점점 더 어머니의 뜻과는 멀어져갔다. 오직 재물과 향락의 늪에 빠져 살았다. 지식을 쌓은 공부도, 오직 세속에 대한 관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니카 성녀는 아들의 품행이 아무리 나쁘다 하더라도 절대로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성녀는 그럴수록 오히려 부드러움으로 아들을 대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아들의 회개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했다. 단순한 청원기도가 아니었다. 성녀는 아들의 죄를 대신 보속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아들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고행을 자처했다. 가난함 중에서도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았으며, 항상 이웃 사랑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모니카 성녀는 주교님을 방문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런 성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주교가 입을 열었다.

“안심하십시오. 그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둔 아들은 결코 멸망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성녀는 주교의 말을 천상으로부터 듣는 대답으로 생각했다. 그래 더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으며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인내심을 갖고 기도하기로 했다. 이후 성녀는 아들이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갔다. 아들이 머물던 카르타고에도 갔고, 이탈리아의 밀라노에까지 갔다. 모니카 성녀는 이렇게 아들의 회개를 위해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성녀 모니카의 정성은 곧 열매를 맺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잠시 밀라노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마니교도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반박할 거리를 찾기 위해 성당에 들러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의 강의를 들었는데, 이때 큰 감동을 받게 된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는 알지 못하는 힘에 이끌려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직접 방문하기에 이른다. 논쟁에 있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의 명쾌한 논리에 결국 두 손을 들게 된다. 그리고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말한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됐다. 분명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감동은 받았지만,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려는 소망이 불길처럼 치솟았지만, 한편으로는 명예, 재산, 결혼 등 세속적 문제 때문에 내적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어느날 정원을 산책할 때였다. 하늘에서 “집어서 읽어라”(Tolle, lege)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을 무심코 펼쳤다. 그곳이 바로 로마서 13장 13절이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로마 13,13)

이때가 서기 386년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해 8월 교수직을 당장 그만둔다. 그리고 그의 친구 성 알리피우스(Alypius)와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교리를 받고, 387년 4월 13일 부활성야에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 주례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이집트의 은수자들의 전기를 읽게 되고 그 고행의 생활에 매우 감동되어 “이 사람들이 한 것을 어찌 난들 못할 것이냐!”하고 부르짖었다. 그 후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 일종의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한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의 위대한 학자이자 주교, 더 나아가 성인이 된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바라고 갈망하던 것이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성녀는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그 행복한 마음을 안고 마침내 성녀는 아프리카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른다. 그런데 그녀의 역할은 거기까지 였을까. 귀향길에서 중병에 걸린다. 아들 아우구스티누스가 급히 달려왔다. 그렇게 그녀는 아들의 품 속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387년 5월 4일, 그녀의 나이 56세였다.

모니카 성녀를 묵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상념은 투명함과 순수함이다. 규율을 엄격히 지키는 엄정함이 아니라 맑고 깨끗하고 밝은 순수한 영혼이 떠올려진다. 아들을 위해 평생 동안 눈물의 기도를 바쳤던 성녀, 진리를 몸으로 체험하고 그 진리를 위해 평생동안 한눈팔지 않고 외길을 걸었던 성녀. 그 열정과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3-21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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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본보기로 사신 성녀
주님이 준비하신 영적 내면형성에 순명하며
확고한 신앙과 부드러움으로 삶의 모범 보여

모니카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제 발로 성당을 걸어서 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분명 어머니가 성당에 데리고 다녔을 것이다. 성당 다니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 다른 많은 것들이 파생되게 된다. 모니카 성녀가 그랬던 것처럼 어려운 이웃도 도와주게 된다. 어린아이들은 환경만 잘 조성해 주면, 저절로 선한 마음을 일으킨다. 하느님과 쉽게 합치되고 이웃과 융화되며, 연민의 마음을 일으킨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그렇게 형성되도록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리 형성되어 있는 우리의 내면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는가 하는 문제다.

모니카 성녀의 삶을 자세히 살펴 보자. 성녀는 성인(成人)이 되어 결혼을 한다. 그런데 남편이 문제다. 남편은 아내와 힘을 모아 좋은 가정을 꾸리고, 그래서 하느님의 섭리를 완성해 나가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난폭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만만치 않았다. 하는 일마다 어깃장을 놓고, 잔소리다.

남편도 밖으로만 겉돌고, 시어머니는 늘 달달 볶고…. 보통사람들 같았으면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성녀는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잘 형성시켜온 내면적 성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힘이 있다. 작은 바람에 휘청거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를 형성시키시는 신적 신비, 삼위일체 하느님께 영적 갈망을 드리게 된다. 이렇게 계속 기도하다보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함이 생된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그 확고함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음성이 어떻게 확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니카 성녀는 이런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내가 남편과 시어머니를 모니카 너에게 맡긴다. 내가 너에게 남편과 시어머니를 보낸 것이다. 너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변화시킬 수 있다.”

모니카 성녀는 끊임없이 기도를 바쳤다. 삶의 모범도 보였다. 이렇게 되면 가정의 팽팽한 긴장이 풀어지고 경직성이 깨진다. 부드러움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남편과 시어머니가 회개하고 신앙으로 돌아왔다. 평화는 남을 탓하고 공격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움을 간직한채 받아들일 때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고난은 그치지 않는다. 이 시점에 아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후 10년 넘게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시달리다가 이제 좀 편안하게 사나 싶었는데 이제는 아들이 말썽이다.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참담했다. 아들은 부모님 뜻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았다. 막 살았다. 마니교라는 이단과 여자에 푹 빠져 살았다. 성녀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늘 아들 옆을 지키며 아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바오로 사도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의 빛이 아들에게 내렸고, 결국 아들은 회개했다. 게다가 교회의 위대한 성인(聖人) 반열에 오른다. 여기에는 어머니의 희생과 기도, 열망이 큰 역할을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때가 모니카 성녀 54세 때다. 모니카 성녀는 이렇게 아들의 회개를 보고 1년 후 편안한 마음으로 선종한다.

모니카 성녀의 삶을 보면 인간적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결혼 후 남편과 시어머니 때문에 고생했고, 그 고생이 그칠 즈음 아들 때문에 또 맘고생을 해야 했다. 그 기간이 34년이었다. 그 기간을 이겨낸 것은 확고한 신앙과 부드러움이었다. 마음안에 심어 있는 확고함과 부드러움의 성향은 하느님의 뜻을 이뤄내는 도구다.

반형성적 삶을 살아가던 남편과 시어머니는 모니카 성녀를 통해 형성적 삶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또 모니카 성녀가 있었기에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위대한 성인이 나올 수 있었다. 물론 모니카 성녀의 내면 형성을 준비시키고 완성시켜 주신 분은 하느님이시다. 늘 내면에 영적 힘을 강하게 해 주셨고, 모니카 성녀는 이를 경외와 순명과 의지로 받아들이셨다.

모니카 어머니를 위해서 박수라도 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모니카 성녀처럼 살 수 있다. 하느님은 이미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모니카 성녀처럼 살 수 있도록 형성시켜 놓으셨다. 우리가 마음안에 심어 있는 좋은 성향들을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살지 않아서 못할 뿐이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3-28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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