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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암브로시우스
조회수 | 1,373
작성일 | 11.02.12
평신도에서 주교가 된 당대의 대 신학자
법관의 길 걸으며 인기와 존경 한몸에 받아
신자들의 끊임 없는 요청에 주교 직분 수락

초대교회 교부들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낸 성인을 꼽으라면 성 암브로시우스(St. Ambrosius. 축일 12.7)를 들 수 있다.

340년 독일의 트리엘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났다. 두 형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직으로 진출했고, 암브로시우스는 가톨릭 신자인 재판소장(프로부스) 밑에서 일을 배워 법관의 길을 걸었다.

암브로시우스는 죄인을 대할 때, 엄한 재판관으로서가 아니라 자애로 충만한 모습으로, 정의에 입각한 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곧 큰 인기를 얻고 존경을 한 몸에 받게됐다. 결국에는 총독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때, 암브로시우스에게 있어서 중대한 삶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374년 밀라노의 주교 아우첸시우스가 서거하자 그 후임 선출이 매우 혼란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당시에는 아리우스 이단이 성행했는데, 그 교단의 교직자들이 가톨릭 주교의 임명을 방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밀라노는 곧 폭동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암브로시우스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격분한 군중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직접 시위 현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군중들을 설득했다. 이때 한 아이가 외쳤다.

“암브로시우스님이 주교가 되어야 한다! 암브로시우스님이 주교가 되어야 한다!”

소리를 들은 군중들은 마치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은 듯, 이구동성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암브로시우스 주교님! 암브로시우스 주교님!”

당황한 암브로시우스는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무리한 요구는 그만두라며 군중을 진정시켰다. 왜냐하면 당시 그는 세례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직자가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중들은 멈출 줄 몰랐다. 거듭 주교 취임을 요구하며, 점점 더 소란을 피웠다. 이에 암브로시우스는 친구 집으로 피신해 군중들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군중들은 숨어있던 암브로시우스를 직접 찾아내 다시 주교직에 오를 것을 요청했다. 암브로시우스가 얼마나 군중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세는 기울어졌다. 결국 인근 지역의 주교들과 밀라노 교구의 사제들도 암브로시우스에게 주교직을 권유하기에 이른다.

이에 성인은 어쩔 수 없이 주교직을 수락했다.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암브로시우스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당연히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해선 자세히 알고 있었다. 평신도로서 신심도 남달랐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교리를 받은 그는 세례와 신품성사를 잇달아 받고, 374년 12월 7일 밀라노 주교직에 올랐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암브로시우스다. 그는 주교직에 오르자마자, 모든 열정을 다해 직무에 임했다. 특히 기도, 교리연구, 자선사업에 전념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침묵을 지키며 끊임없이 단식을 실천했으며, 기도로 날을 보냈다. 특히 순교자들을 공경했으며, 신학에 대한 열정으로 학문에 힘썼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까지도 가톨릭 신학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대 신학자가 되었다.

암브로시우스는 또한 신자들에게 교리에 대한 이해를 북돋우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주일에는 반드시 강론을 했다. 가는 곳마다 그의 가르침을 듣기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선 실천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선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주었다. 당연히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몰려왔다.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넓은 마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죄인에게는 깊은 애정과 친절로 대했으며, 주어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교도들의 회개를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했다. 성녀 모니카가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눈물로 청하자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안심하시오. 그런 눈물을 가진 어머니의 아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예언은 적중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후 암브로시우스와의 대화를 통해 회개하고 훗날 위대한 가톨릭교회의 성인이 됐다. 하지만 영광은 고통을 전제로 한다. 암브로시우스 성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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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살아
로마 황제의 폭정에 굴하지 않고 회개 이끌어
최후의 순간까지 하느님 나라 고대하고 갈망

서기 390년, 테살로니카에서 큰 일이 벌어졌다. 이 지역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황제 및 황후의 초상을 흙탕물 속에 집어넣는 등 모욕한 것이다. 로마 황제는 격분했다. 그리고 곧 엄명을 내려 유죄, 무죄 분별없이 해당 지역 사람을 모두 처형했다.

이 소식을 접한 암브로시오는 크게 놀랐다. 황제의 극악한 행동을 바로잡아야 했다. 언제 또다시 백성들을 박해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성인은 황제에게 서한을 썼다. 통회와 보속과 고행을 권유했고, 통회하지 않을 경우 당분간 성당에 나올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황제는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감히 황제에게 일개 주교가 대들다니…. 주교와 황제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드디어 사고가 터진다. 황제는 예수부활대축일에 미사를 위해 성당으로 향했다. 그때 주교는 성당 입구를 가로막고 섰다. 그리고 말했다.

“폐하께서는 아직까지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중대함을 깨닫지 못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청컨대 이 길로 다시 궁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폐하는 성당에 올 수 없습니다. 회개하신 후 오십시오. 그리고 죄를 다시는 짓지 말아 주십시오.”

황제는 아직 암브로시우스 성인에게 굴복할 마음이 없었다. 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해 성탄대축일이 다가오자 마음이 흔들린다. 신자인 만큼 대축일 미사에 참례해야 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성탄대축일에 다시 성당에 갔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성당 앞을 가로막고 섰다. 성인은 황제의 진정한 회개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황제께서는 어찌해 하느님의 뜻을 배반하시려 하십니까.”

그제서야 황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회개한다고 말했다. 이에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황제의 통회의 마음을 읽고 성당 안으로 모시고, 성사를 집행했다. 이로써 로마에선 한층 하느님의 법이 살아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느님의 법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 동안 헌신하던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도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죽음을 앞두고 한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말은 유명하다.

“오! 세상을 떠날 날이 어찌 이리 많이 남았는지! 아! 주여 어서 빨리 오소서. 지체치 마시고 저를 거절치 마옵소서.”

성인은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고대하고 갈망했던 것이다. 성인은 그렇게 하느님 나라를 소망하다, 성 금요일에 마지막으로 성체를 모시고 조용히 숨을 거뒀다. 평생 동안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던 성인에게 주어진 은총이었다. 397년 4월 3일, 57세의 나이였다.

암브로시우스 성인의 삶을 보면, 중대한 전환점이 몇 곳 있다. 사법계에서, 행정가로, 다시 사도직의 길로 들어선 것이 그것이다. 성인은 재판소장, 즉 법조계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의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한 것이 28~32세 때까지로 추정된다. 지금의 변호사와 비슷한 일을 했다. 이후 그는 지역 총독으로 선출돼 정치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다 지역의 주교가 선종하자, 그 자리를 물려 받는다.

정치인 암브로시우스가 갑자기 주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세례도 받지 않았고, 사제도 아니었다. 성인이 주교직을 거부하고 친구의 집에 숨어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군중들은 그를 찾아내 주교직에 강제로 추대한다. 평소 성인의 덕망이 참으로 출중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덕행도 결국은 하느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것이다. 결국 성인은 374년 34세가 되던 해에 세례성사를 받고 주교품까지 일사천리로 받는다. 암브로시우스 성인의 위대함은 이때부터 더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단순히 모범적인 정치인이자 행정가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영적 차원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낸다.

암브로시우스 성인 스스로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주교직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느님은 암브로시우스를 선택하셨고, 암브로시우스는 그 선택에 응답했다. 암브로시우스는 이제 그 응답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4-11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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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공경하며 소외된 백성 위해 헌신
하느님 섭리 따라 살며 합치의 신비 깨닫고
확고함과 완벽한 신앙으로 교회의 품위 지켜

암브로시우스는 주교직에 오른 후, 본격적인 내면형성에 전념한다. 내면 형성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우리 안에 심어 놓으신, 당신의 뜻대로 형성될 수 있도록 마련하신 섭리를 깨닫고 수련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다양하다. 성경 공부와 순교자들에 대한 공부도 여기에 속한다. 기도생활, 묵상생활은 물론이다.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이제 이 모든 일에 전념하며 스스로의 형성을 위해 노력한다. 특히 순교자들에 대한 신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순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내면형성은 내면 형성 그 자체로 그쳐선 안 된다. 암브로시우스 성인에게서 보이는 것처럼, 인간관계의 상호형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내면형성이 나와 이웃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서로에게 형성을 시켜주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완벽한 내면형성은 완벽한 상호형성으로 저절로 이어진다. 상호형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내면 형성 또한 안됐다고 할 수 있다.

암브로시우스 성인은 이제 감옥에 갇힌 죄인 등 소외된 백성들을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 시점에 만난 분이 바로 모니카와 그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다. 당시 이단에 빠졌지만 뛰어난 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를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신앙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회개하고 하느님의 종이 된다.

교만했던 아우구스티누스를 회개시킨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암브로시우스 성인은 거룩한 사람이었다. 거룩함만이 교만을 물리칠 수 있다. 암브로시우스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순교자들에게 푹 빠진 그가 죽음을 두려워 하겠는가. 그에게는 오직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그래서 황제까지도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가장 행복한 것은 교회 안에서 하느님 안에서 살 때다. 거리에 보니 행복 예식장이 있다. 행복예식장에서 결혼한다고 해서 행복해 지는가. 아니다. 쓰러져 가는 성당이라도, 성당에서 결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결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정한 행복은 교회의 성사 안에 있다. 황제는 성사의 행복을 원했고, 결국 암브로시우스 앞에서 회개하고 행복의 성사를 받게 된다.

암브로시우스가 이처럼 거룩함의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성인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분이었다.

물론 이러한 성인의 삶에는 늘 하느님의 섭리가 함께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식을 많이 쌓게 해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했고, 특히 주교가 될 때 어린아이를 통해 당신 뜻을 드러내 보이셨다. 그렇게 하느님은 성인을 주교로 이끌었고, 더 나아가 당신과의 합치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다. 기도와 교리공부, 성경공부 등을 바탕으로 수련을 통한 내면 형성의 신비를 체험하게 하셨다. 합치의 성향은 본질적으로 연민의 성향을 기르는 계기가 된다. 하느님과 합치하면 이웃을 향한 연민의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결국 하느님은 암브로시우스 성인의 마음에 연민의 마음을 불러일으키시어 소외된 이웃과 버림받은 이웃을 돌보는 상호형성의 길로 이끌었다. 연민은 또 더 나아가 정의로 연결된다. 이웃을 향한 연민은 이웃이 고통받는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의 확고함이 바로 황제와의 마찰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마찰은 2000년 교회 역사 속에서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설명하는 첫 사례로 기록됐다.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물러서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교회의 품위를 확고함과 완벽한 신앙으로 지켜낸 것이다.

우리가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훌륭하다고 보는 것은 이래서다. 내면형성과 상호형성, 세계 형성의 완벽한 성취와 조화는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혜의 덕, 분별의 덕, 합치의 덕, 연민의 덕, 사회정의 실현 등이 암브로시우스 성인이 이룬 위대한 모범이다. 물론 모든 것은 섭리다. 인간 스스로 노력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신적신비의 사랑으로 주어지는 은총과 섭리를 우리 각자가 어떻게 개발하고 가꾸어 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가톨릭신문 2010-04-18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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