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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곰직이 교우촌
조회수 | 1,288
작성일 | 04.07.18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곰직이골(곰집) 오전리(梧田里)는
본래 순홍군 수직면 지역으로
봉황산(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와 영주군 부석면 북지리 경계에 있으며
부석사(浮石寺)의 주산(높이 818m) 밑이 된다.

봉황은 오동나무를 좋아하며 주실을 먹고 산다하여
오전(悟田)이라 하며
1914년 군 면 폐합 때 덕산리를 병합하여 봉화군 물야면에 편입되었다.
곰직이골은 오전(梧田) 동북쪽에 있으며
봉화읍에서 오전 약수탕 가는 길목 1㎞ 못 미쳐 왼쪽 깊숙한 골짜기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곳에는 옛날에 곰이 새끼를 쳤다고 하며
또한 풍수지리설에 곰의 혈이 있다 하여 곰직이골이라 하며
풍수들이 명당을 찾기 위해 다녔던 골짜기이다.

봉화군과 영주시와 강원도 영월군 경계지역에 있는 선달산(1,236m) 입구와
오전 약수터에서 박달령(봉화군의 물야면과
춘양면 및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과 경계지역에 있는 산(1,060m)으로
올라가는 깊은 골짜기가 바로 곰직이골이다.

이 골짜기에는 옛날 임진왜란 때의 피난지로 몇 곳에 옛날 집터가 있고
또한 권병길(64세)이 살고 있는 집과 과수원 옆에
옛 옹기 가마터가 새로 발견되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부근이 바로 옛날 신자촌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처음으로 신자들이 살았던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 박해를 피해 처음 예천에 피신왔던
순교자 황사영이 강원도와 접경지역인 이곳에 숨었다가
제천의 배론 옹기점으로 가서 유명한 황사영 백서를 썼다.

그후 이곳은 신자들의 피난처가 된 듯하며
또한 1827년 정해박해 전 해는
충청도 홍주고을 출신인 이재행(종일, 안드레아)이
본 고장에서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으므로,
집안과 재물과 이웃을 버리고 산골에 은거하였다.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으로 여러 곳으로 피난을 다니다가
마침내 이곳 곰직이골 신자촌에 안착했다.
또한 황해도 사람으로 경기도 양지 마을에 살았던
이성욱(필립보)과 이성천(베드로) 형제는
1839년 기해박해를 만나 봉화로 피난 왔다가
다시 충청도 배론에 가서 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충주에서 순교했다.

그후 홍유한 선생의 묘소가 있고 우곡으로 가는 길목이자
불영 계곡으로 가는 큰 도로가 있는 부근인
봉화군 북면(현재 봉성면의 동양리, 금봉리, 창평리) 등지에
신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병인박해때 이 요셉이 1867년 충주 포교에서 잡혀 충주에서 순교했다.

그리고 봉화 북면 사람으로 풍기에 살던 김세문(세자 요한)도
충주 포교에서 잡혀서 충주에서 순교하였다.

이와 같이 곰직이를 중심으로 한
부근의 봉화지방에는 박해시대 때 신자들이 살다가 다른 곳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나 박해가 끝나고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이 골짜기에 살던 신자들이 교통이 편리한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갔고,
1950년 6?25전쟁 전후 공산당들의 괴롭힘으로
정부에서 곰직이골에 살던 주민들을 안전지대로 피난을 시켰다.

현재 곰직이골에는 조부 때부터
이곳에서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돌아온 권병길 한 집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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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이재행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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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드레아는 1775년 충청도 홍주 고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품이 꿋꿋하고 바르고 관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보고 존경하였다.
20세가 넘어서 천주교에 입교하였는데
본 고향에서는 자유롭게 성교(聖敎)를 봉행하는 데
어려움을 깨닫고 재물을 버리고 산골에 은거하였다.

1827년 박해가 일어나자 포졸들이 그가 살고 있는
순흥 고을 곰직이(현재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 들이닥쳐 그를 체포했다.
그때 그는 포졸들을 기꺼이 맞아들였고 안동진영으로 끌려가
관장 앞에 출두하여 여러 날 동안 계속 형벌을 받았으나
하느님의 특별한 가호와 사랑으로 끝까지 주님을 증거 하였다.

그는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었을 때
감사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세 차례나 당했으나 배교하지 않았다.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다른 5명의 신자들과 함께 옥에 갇혀
13년 간 옥살이를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다가
1839년 5월 26일 남문 밖 관덕정에서 순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64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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