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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피아 (HAGIA SOFIA, AYA SOFIA) 성당
조회수 | 3,264
작성일 | 05.04.12
성 소피아 사원은 오랜 세월동안 가장 큰 교회 건물이었고, 지금도 런던의 St. Paul's, 로마의 St.Peter's, 밀란의 Duomo 다음으로 큰 교회 건물이다.



오스만투루크의 위대한 미마르(건축가) Sinan은 그의 자서전에서 그 일생을 두고 이 성 소피아를 능가하는 것이 목표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성소피아의 원래 이름은 Hagia Sofia, 터키말로는 Aya Sofia이다. 모두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오늘날의 성 소피아는 같은 자리에 지어진 세 번째 건물이다. 첫번째는 AD 390년에 지어진 지붕이 목조로 된 바실리카(Basilica)양식의 건물이었다. 이 원래의 교회는 Megae Ecclesia(Great Church)라 불렸는데, 404년에 불타 없어졌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532년에 히포드롬에서 일어난 Nika의 반란에 의해 파괴된 두 번째 교회를 지었는데, 역시 바실리카 양식이었다.



유스티니안 황제는 같은 해에 성 소피아의 재건축을 시작했다. 아나톨리아의 두명의 천재적인 건축가는 트랄레스(지금의 아이든)의 수학자 안테미우스와 밀레투스(성경의 밀레도)의 기하학자 이시도루스이다.



이들은 황제의 명령에 따라 로마제국의 구석구석으로부터 재료를 조달해 왔다. 이 건축에 동원된 장인은 100여명, 노동자는 만 명이 넘는다. 이 교회는 5년 10개월 만인 537년 완공이 된다.

처음 성 소피아가 완성됐을 때의 높이는 55m였다. 지은지 얼마 안되어 교회 중앙의 돔이 지진에 의해 커다란 소음을 내며 무너지게 된다. 이때 건축가 이시도루스의 조카이며 같은 이름을 가졌던 이시도루스는 돔의 높이를 조금 더 높여서 55.60m가 된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높이를 유지하게 된다.



비잔틴 역사를 통해 성 소피아는 황제 대관식과 같은, 또는 여러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등의 중요한 장소로 쓰였다. 아울러 성 소피아는 범죄자들의 피난처 역할도 했다. 다른 중요한 사건으로는 Iconoclast라 불리는 성화 파괴 운동과 또한 같은 기독교 국가의 침입을 받는 1204년에 일어난 제4차 십자군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성 소피아는 십자군들의 약탈의 대상이 된다. 그후 1453년 오스만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파티(정복자)술탄 메흐멧에 의해 모스크로 바뀌게 된다.





성 소피아의 돔의 직경은 31-32m가 되는데, 원래 이 교회를 지을 때는 돔은 정원형이었으나 많은 지진의 영향으로 약간의 타원형이 됐으나, 육안으로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오래동안 올려다 보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훗날 교회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진 외부로부터의 외벽 보강작업은 이 훌륭한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다는 지적이다. 건축적으로 성 소피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중앙의 커다란 돔과 그것과 연결된 두개의 반돔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건물이 지어지기 이전에 대부분의 건물 양식은 소위 바실리카 양식이라 불리는 건축 양식이었다. 이 바실리카 양식은 기둥이 많은 관계로 예배를 보는데 불편했다. 그러나 돔 양식건물의 특징인 중앙의 넓은 공간은 예배보기는 안성맞춤이었다. 교회의 면적은 총 7570m²이다. 터키인들이 이스탄불을 얻기 까지 정교회 (오스독스: 정통이란뜻) 교회로 916년 사용 되어지다가, 이스탄불 정복 후에 회교사원 (모스크)으로 바꾸어진다. 그후 벽화들과 모자이크들은 회색 회칠이 더해 지게 된다. 참고로 이슬람교는 일체의 우상 숭배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원에서는 어떠한 그림도 조각상도 찾아 볼 수 없다. 다행인 것은 터키인들이 모자이크를 두께 5cm이상의 횟가루도 덮어버렸기 때문에 1934년에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루크 (터키의 초대 대통령)에 의해 박물관으로 바뀌고 나서, 복원공사로 현재도 파손이 되긴 했으나,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금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 회교 사원으로 바뀌고 나서 미랍 (모스크 안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하는 문처럼 생긴 구조물)과 민벨(성직자가 설교하는 장소). 그리고 바깥부분에 4개의 미나렛(첨탑)이 순서대로 추가가 됐다. 그후로 터키인들 에게도 유명한 예배장소가 되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여러 왕들이 이곳의 투루베(무덤)에 묻힌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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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로 들어가기 전에 입구의 바로 왼쪽에는 두 번째 성 소피아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독일의 슈나이더 박사에 의해 발굴이 됐다. 입구를 통해서 바깥복도를 지나 안복도에 들어서면 중앙에 황제의 문이라 불리는 커다란 문(전설에 의하면 원래의 오리지날 문은 노아의 방주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과 그 문 좌우로 8개, 총 9개의 문을 만나게 될 것이다. 황제의 문 위의 모자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황제의 문을 통해 성 소피아 내부에 들어서면 거대한 돔이 보일 것이다. 옛날 유스티니안 황제는 성 소피아의 건축을 마치고 헌당예배를 올리던 도중 흥분을 참지 못하고 교회 안으로 뛰어 들어와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예루살렘을 가리키며 "오!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를 능가하였도다" 라는 말을 했다 고한다. 그런 자신에 찬, 아니 자만에 찬 말을 한 이유를 성 소피아의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이 성 소피아가 왜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에 들어 가는지, 지금도 세계 4대 교회 건물에 들어가게 되는지에 대한 의문점은 말끔히 가시게 될거다. 교회의 벽들은 대리석을 대칭모양으로 잘라서 장식했고, 입구 좌우에 있는 두개의 커다란 항아리는 바로 버가모( 베르가마, 페르가몬)으로 부터 가져온 것인데 아마도 기름 등잔이다. 항아리에 밑에는 수도꼭지가 달려있다. 참고로 이 홈페이지의 베르가마 부분을 꼭 읽기 바란다. 교회 내부의 많은 기둥은 로마제국의 구석구석에서 가져왔는데 세계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 불리는 에페스( 에베소,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아데미) 신전으로 부터 가져왔고, 심지어는 이집트로부터도 가져왔다고 한다.

교회의 제단이 놓이는 곳(apse)에 가면(입구의 정 반대편에 있다.) 미랍과 민베,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천정을 쳐다보면 성모 마리아와 그 품에 앉고 있는 아기예수와 오른쪽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보일 것이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미카엘 천사장의 모자이크가 있었는데 지금은 조그만 부분만 남아 있다. 이것들은 모두 금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이다.

또 미랍을 보면 정 중앙에 놓여 있지 않고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건물이 회교사원으로가 아니라 교회로 지어졌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 미랍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향한다. 모든 회교사원은 메카 방향을 향해서 정 중앙에 미랍이 자리 잡도록 설계되어있다. 그리고 이곳 apse(교회의 제단이 놓이는 약간 움푹 들어가 있는 부분)의 왼쪽에 정자 같은 건축물이 있는데 이것은 파디샤(술탄: 왕)가 예배를 보는 장소로 술탄 압둘 메지트(돌마바체 궁전을 짓게 한 술탄)가 지었다. 이렇게 높게 지은 이유는 아마도 제국의 말기로 갈수록 왕권이 약해지고, 그에 따른 암살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면 조그만 방이 보이는데 이방의 벽은 모두 타일로 장식이 되어있다. 터키말로 타일을 치니라고 하는데 중국을 또한 친이라고 부른다. 타일기술이 중국으로부터 전해 졌다는 것을 내포하는게 아닐까? (이 말은 이즈닉의 타일을 만드는 도공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이 파란색 타일은 이즈닉(니케아: 제 1차 종교회의가 벌어진 장소)타일이다. 이 방은 코란을 읽던 장소다. 지금도 책 받침대를 볼 수 있다.

다시 복도로 나가기 전의 제일 왼쪽 문 앞에 항상 관광객들이 모여 손가락을 작은 구멍에 넣고 손바닥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돌려보며 소원을 빌어보자. 그리고 나서 바로 앞의 문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2층을 보기를 바란다. 웹 지기는 오랜 가이드 경험으로 2층을 올라가기 전에 관광객들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 그것은 ? 2층이 꽤 높은데 그곳까지 계단이 몇 개나 될까요 ? ) 라는 질문이다. 계단이 몇 개가 되는지 세면서 올라가보면 (계단의 수가 몇 개 인지 궁금하신 분은 메일을 주세요 ! ) 2층 갤러리에 도착하게 된다.

또 오른쪽으로 1층을 내려다보며 돌아가면 문이 하나 나오는데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 가는 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 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모자이크를 볼 수 있는데 중앙에 예수님, 왼쪽에 성모 마리아, 오른 쪽에는 세례요한을 볼 수 있다. 이 모자이크의 아래 부분은 많이 파손되어 있는데 성 소피아가 지금처럼 잘 보전되기 이전에 이것을 떼어가서 목거리를 만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 모자이크의 반대편에는 제4차 십자군 전쟁때 같은 기독교 국가인 이곳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라틴 십자군의 사령관 단돌로의 무덤이 있다. 2층 갤러리의 끝부분에도 2개의 모자이크가 있다. 이제 성 소피아 정문을 나서다가 보면 큰 거울로 잘 보존이 된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고개를 돌려 모자이크를 보면 중앙에 성모마리아와 예수님, 왼쪽에는 성 소피아를 들고 있는 유스티니안 황제, 오른쪽은 콘스탄티노플 들고 있는 콘스탄틴 황제를 보실 수 있다. 이로써 세계 7대 불가사이 건축물 중의 하나인 성 소피아를 보았다. 이 성 소피아를 사진에 담아두는 것을 있지 말기를.....

ICONOCLASM(AD 726-843): ICOCLASM은 그리스도와 기독교 교회의 성인들의 ICON을 숭배하는 것을 금하는 종교적인 독트린을 의미하는데 그리스어로 우상 파괴를 의미한다. AD 726년 황제 레오 3세는 칼케돈 (카드쿄이) 종교회의에서 모든 아이콘을 금지하는데, 여황제 테오도라가 AD 843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이것을 해제할 때 까지 계속되는데, 정교회에서는 이 날을 승리의 날로 오늘날까지 기념하고 있다. 이 ICONOCLASM은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룹도 있는가 하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주장이 많이 있다.
  | 04.13
도밍고 [비회원]
신부님의 좋은자료 간석4동성당으로 옮기겠습니다.
삭제 |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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