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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빌라도 앞에서의 재판
조회수 | 2,111
작성일 | 07.06.11
예언자 그리스도에 대한 재판이 끝나고 이제 왕이신 그리스도의 재판이 시작된다. 종교 재판관들은 주님께서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너무도 신적이라고 판단했지만, 이제 세속 재판관들은 주님을 너무도 인간적이라고 단죄할 것이다. 고등법원이 지방법원에서 올라온 사건을 심리할 때 똑같은 죄목이 올라온다. 로마 인들이 자기 나라를 정복했기 때문에 종교 재판관들은 생사여탈권이 없었다. 따라서 주님께서 빌라도의 최고법정에 끌려가실 때 당연히 똑같은 죄목, 즉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고발되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형을 인정하고 선고하는데는 빌라도의 날인이 필요하였다. 최고의회가 사형선고를 내리기 위해 취할 수 있었던 두 가지 방법은 우선 빌라도가 종교재판의 판결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정복자들의 국가법정에서 다시 재판을 하는 것이었다. 아주 약삭빠르게도 최고의회는 두 번째 방법을 채택했다. 최고의회는 만일 자기들이 빌라도에게 그리스도는 신을 모독하는 죄를 지었다고 말하면 그가 비웃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최고의회는 그들의 신이 있고, 빌라도에게는 그가 섬기는 신이 있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순전히 종교적인 죄목이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하지 않고 최고의회법정으로 이 사건을 되돌려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빌라도와 그에 대한 유대인들의 증오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유대아를 정복한 이후 여섯 번째 총독인 빌라도는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에서 십년간 총독직을 맡았다. 그의 임의적이며 포악한 행동 때문에 유대인들의 봉기가 자주 일어났으며 그때마다 빌라도는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예루살렘 시민들은 빌라도가 로마황제의 대표자며 자기 종족이 아니기 때문만 아니라 한번은 밤중에 황제의 초상화를 예루살렘에 들여와 성전에 걸 게 했기 때문에 그를 멸시하였다. 빌라도는 이 일에 반대한다면 유대인들을 칼로 학살하겠다고 을러댔지만,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결사적으로 반대하였으며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호소하였다. 결국에 황제 초상화는 제거되었다. 유대인들의 청원서를 티베리우스에게 갖다 준자가 바로 헤로데 안띠파스였다. 아마도 이 때문에 빌라도와 헤로데 사이에 마찰이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빌라도가 미움을 받던 또 하나의 이유는 공금을 횡령하여 수로를 건설하는데 썼기 때문이다. 이 수로가 건설되는 동안 소요가 일어났을 때 갈릴래아 출신의 일부 유대인들이 살해되었으며, 이러한 폭동이 있었을 때 폭동의 주동자요, 또 강도로 바라빠가 잡혔을 것이다. 빌라도는 로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주의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로마는 한 때 유대인들에 대한 빌라도의 조처를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녘에 최고의회의 모든 의원들은 - 사제와 원로들과 율법교사들을 포함해서 - 그리스도를 빌라도에게 데리고 가 사형선고를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사제들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하자 분개하였으며, 원로들은 그리스도가 기존 전통주의에 반대하며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화를 내었으며, 율법교사들은 그리스도가 말의 자구에 반대하시고 그 말의 의미를 밝혀주실 성령을 약속하였기 때문에 그를 증오하였다.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할 계획을 완성한 후에,

그를 결박하여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넘겨 주었다. (마태오 27, 2)

주님은 여러차례 결박을 당하셨다. 처음 체포되셨을 때 그러셨고 안나와 가야파의 법정에 끌려가셨을 때도 결박을 당하셨다. 빌라도가 볼 수 있도록 족쇄를 채운 것은 그리스도가 엄청난 죄를 범한 것같은 인상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빌라도에게 데려간 것은 그리스도 수난의 전환점의 하나가 된다. 왜냐하면 이로써 주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이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터인데 그들은 사람의 아들을 희롱하고 모욕하고 침뱉고 채찍질하고 마침내 죽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루가 18, 32-33)

최고의회는 메시아로부터 오는 구원의 약속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빌라도에게 데리고 갔다. 이제는 이방인들이 최고의회가 예언자를 거부한 것처럼 왕을 거부할 것인지 그들이 원하는대로 결정을 내려야하게 되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던 거대한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왜냐하면 둘 다 그리스도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에페소 2, 14)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어느 한 민족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져야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 율법이 명령하는 모든 것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은 말문이 막히게 되고 온 세상은 하느님의 심판에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3, 19)

피값으로 받은 유다의 돈을 사용하기를 주저하던 최고의회는 이방인의 집 - 여기서는 빌라도의 집 - 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였다. 빌라도에게 신적인 죄수를 끌고갔을 때 최고의회 의원들의 민감한 양심이 걱정하던 한 가지는 불결이었다. 빌라도는 이방인이었으므로 그의 경내에 들어가면 불결하게 되어 과월절을 지낼 수 없게 된다. 그들은 과월절 어린양의 무죄한 피를 흘리기를 바랐다. 주님께서는 한번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마치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깨끗하면서 속마음은 죽은 사람의 뼈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례받지 않은 마음으로 살면서도 할례받지 않은 사람으로 인해 오염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에 이미 심판이 내려있다. 그밖에도 몇 가지 주저하는 이유가 있었다. 즉 누룩을 모두 없애지 않은 집에 들어가면 그들은 과월절에 참여할 수 없었다.
  
최고의회의 위원들이 경내에(총독관저) 도착했을 때 빌라도는 그들을 강제로 들어오게 하면 부정을 탄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 법을 존중하는 로마의 전통을 따라 빌라도는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한 판결을 내릴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최고의회 위원들에게 물었다.

결국 빌라도가 밖으로 나와 그들에게 "너희는 이 사람을 무슨 죄로 고발하느냐?" 하고 물었다. (요한 18, 29)

빌라도의 선의를 사로잡기 위해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내린 판결을 믿어달라고 간청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절대 무죄한 자를 해치지 않는다고 빌라도에게 장담하였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이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여기까지 끌고 왔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요한 18, 30)

하느님을 모독한 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멸시하던 이방인 정복자 앞에서 그러한 죄목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반적인 용어인 "악인" 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사실 그들은 여기서 자기도 모르면서 올바른 용어를 쓴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진" 악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로마 치하에서의 그들의 신분은 자신의 권한을 보호해 줄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 사건을 다루고 싶지가 않아서 그들의 법에 따라 그리스도를 재판하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에게 사형에 처할 권한이 없다고 대답했는데, 사실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은 로마만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파스카 어린 양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명절에 그들은 아무도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빌라도가 이 사건을 심리하게 하고자 주님께 대한 세 가지 죄목을 제기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이 백성들에게 소란을 일으키도록 선동하며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못 바치게 하고 자칭 그리스도요 왕이라고 하기에 붙잡아 왔습니다." 하고 고발하기 시작하였다. (루가 23, 2)

아직 신을 모독한 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여기서 죄목은 반란죄로 둔갑한다. 그리스도는 비애국자요, 지나치게 세속적이며, 지나치게 정치적이요, 카이사르와 로마의 적대자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는 로마의 지시와는 다른 방향으로 백성들을 몰고 가는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죄목으로는 그리스도는 백성들을 충동하여 왕이나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한다. 세 번째,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빌라도와 맞먹는 왕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권의 남용이다. 로마 인들은 이러한 정치적 봉기에 대해 경계를 해야한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는 빌라도와 로마를 멸시하면서도 로마에 대해 "백성들이 충성을 다한다" 고도 말했다.
  
이런 말들은 모두 거짓이었다. 만일 그리스도가 반란의 주모자였거나 그의 이름과 관련된 봉기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빌라도가 그에 대해 못들었을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의심많은 헤로데도 그런 사실이라면 벌써 알았을 것인데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불평이 없었다. 그리스도가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지 않는다는 죄목에 대해서도 말해보면, 바로 얼마 전에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함정에 빠뜨릴려고 했을 때 그리스도는 백성들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치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세 번째 죄목은 그리스도 스스로가 유대인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카이사르에게 도전한 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도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그런 왕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 그는 혼자 산으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그들이 얼마나 자기와 카이사르를 미워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죄목이 약간 걱정되었다. 자기 앞에 서있는 이 죄수가 왕이란 말인가? 빌라도는 주님을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재판석에 앉자 빌라도는 이렇게 물었다.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 놓고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요한 18, 33)

죄목은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것뿐이었다. 만일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로마에 대항하는 왕으로 세웠다면 그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이방인이 있을 거라는 것을 빌라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그가 유대인의 욍이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답변하시면서 주님께서는 빌라도의 양심을 꿰뚫어보았다. 주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당신 적들의 허위 고발 때문에 의심이 나서 그렇게 말하느냐고 물으셨다. 빌라도는 직접적인 답변을 기대했었다. 주님께서는 정치적 왕권과 종교적 왕권을 분명히 구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빌라도가 이 사건에 있어서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있던 정치적 왕권을 주님께서는 배척하셨으며, 당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종교적 왕권은 인정하셨다. 회의하는 빌라도에게 주님께서는 당신 왕권은 무력으로 획득한 지상왕국의 왕권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 안에 세워질 영적 왕국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주셔야만 했다. 주님께서는 정신적인 신하만 있을 뿐 정치적 신하는 없을 것이며, 마음을 지배하시되 무력으로 지배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요한 18, 36)

로마 권력에 도전한다는데 대한 빌라도의 걱정은 당분간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에제키엘의 아들인 갈릴래아 유다가 아니다. 갈릴래아 유다는 몇 십년 전 세금을 내지 말라고 백성들을 부추기면서 로마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이었다. 전날 밤 베드로가 칼을 쓰자고 우겼을 때 주님께서는 무기를 휘두르는 것을 책망하시고 부상당한 사람을 고쳐주었다는 말을 빌라도는 들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군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겠지만, 하늘나라는 위로부터 권력이 오기 때문에 무력이 필요없다고 주님께서는 주장하셨다. 그리스도 왕족은 이세상에 있되 이 세상 것이 아니다.
  
포승에 결박당한 채 너무도 무력하게 자기 앞에 서 있는 조용하면서도 기품있는 이 사람의 태도와 첫 번째 재판에서 매를 맞아 상처 투성이 된 얼굴, 자기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고 칼을 쓰지 않는 하인들을 데리고 있으며 싸우지 않고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이 사람의 주장등 이 모든 것으로 어리둥절해진 빌라도는 질문을 바꾸었다. 처음으로 빌라도는 "당신이 유대아의 왕이요?" 라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아무튼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요한 18, 37)

종교재판은 예언자 그리스도, 메시아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해 다루었다. 세속 재판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다루었다. 이상할 정도로 이방인들은 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주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동방박사들은 왕이 어디서 태어났느냐고 물었다.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미케아의 예언을 성취한 것은 카이사르의 황제 칙령이었다.
  
그리스도가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빌라도는 의하해하며 그리스도가 주장하는 왕권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캐물었다. 이미 자신의 왕다운 신분을 인정한 주님께서는 빌라도가 어느 정도 멸시하며 이끌어 낸 추론을 인정하며 이렇게 답변하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 18, 37)

당신의 생애동안 이 세상에 오신 당신 자신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태어나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것과 세상에 온 것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간으로 태어나셨다고 말씀하신 후 바로 당신이 세상에 오셨다고 재주장하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태어나셨다고 하심으로써 인자로서 당신이 시간 속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것을 인정하시며,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신성을 주장하셨다. 더 나아가 하늘에서 오신 주님께서는 증거하기 위해 오셨으니 그것은 진리를 위해 죽으신다는 뜻이었다. 그분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도덕적 조건을 규정하셨으며, 진리의 발견은 지적인 추구만이 아니라 각자의 도덕적 행위에도 달려 있다고 단언하셨다. 바로 이런 뜻에서 주님께서는 당신 양떼는 당신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빌라도는 도덕적 행동이 진리의 발견과 관계가 있다고 분명히 이해했기 때문에 실용주의와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조소하는 투로 이렇게 질문했다.

빌라도는 예수께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요한 18, 38)

그리고 나서 그는 진리에 등을 돌렸다. 아니 진리에 등을 돌렸다기보다는 진리 자체이신 주님께 등을 돌린 것이다. 한번쯤 관대한 마음으로 진리와 오류를 봐주면 편협심과 박해를 낳게 된다는 것을 앞으로 알 게 될 것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비웃는 질문에 이어 "정의란 무엇인가?"하는 두 번째 조소 섞인 질문이 뒤따른다. 관대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옳고 그름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뜻이면 그것은 결국 옳은 것에 대한 증오를 낳는다. 오류에 대해 너무도 관대한 나머지 절대진리를 부인하는 사람은 진리를 십자가에 못박을 사람이다. "너에게 명한다" 고 주님께 도전한 자는 종교재판관이었지만, 세속 재판관은 "진리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대사제복을 입은 사람은 하느님의 힘을 빌어 하느님께 속한 것들을 거부했으며, 로마옷을 걸친 사람은 의혹과 의심을 드러낼 뿐이었다.
  
진리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의 진리는 그와 동일한 모든 것을 융합한다는 법칙을 선포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똑같은 생각을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요한 3, 20-21)

따라서 빌라도에게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바로 진리 자체가 자기 앞에 서계신 것을 알 것이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것이다.
  
빌라도는 진리란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이며 각자가 진리가 무엇인가를 결정한다고 믿는 자였다. 객관적인 진리의 추구를 쓸모없는 이론화로 생각하는 것은 빌라도와 같은 실용적인 사람이 범하는 잘못이다. 회의는 지적인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이성이라기보다는 행동과 처신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때는 도덕적인 자세이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구하고자 한 것은 몽상가와 그들의 미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반(半)호의와 절대적 진리에 대한 불신이 결합되어 있는 일종의 자유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빌라도는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실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그분께 "진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구하고자 여러 차례의 시도 중에서 그 첫 시도를 하였다. 빌라도가 실시한 여러 차례의 시도는, 주님의 무죄를 공표하고, 죄수들 가운데서 선택하게 하고, 채찍질하는 등이었다. 빌라도는 어떻게 사람이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진리 자체이신 분이 어떻게 오류를 범한 자들을 위해 죽으실 수 있는지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육화한 말씀에 등을 돌린 후 빌라도는 자기 옆에 서있는 이 죄수가 무죄라는 자신의 확신을 밖에 있는 백성들에게 전하였다.

빌라도는 예수께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요한 18, 38)

그리스도에게 잘못이 없다면 빌라도는 당연히 그를 놓아주어야 했다. 이 죄수가 무죄라는 로마 총독의 선언을 듣자마자 최고의회는 그가 반란 선동자요, 혁명가라고 더욱 격렬하게 고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람은 갈릴래아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 땅을 돌며 백성들을 가르치면서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고 우겨댔다. (루가 23, 5)

빌라도의 최고 관심사는 국가의 안녕이었다. 따라서 최고의회의 최대 관심사는 그리스도가 그러한 국가의 안녕을 깨뜨리는 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빌라도는 "갈릴래아"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리스도의 재판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보았다. 최고의회가 하느님의 모독죄에서 반란죄로 죄목을 바꾸자, 빌라도는 재판권을 갈릴래아 권력자에게 넘겨 주었다.
  
헤로데는 과월절을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비록 빌라도는 헤로데와 원수지간이었으나 그리스도를 무죄로 석방하거나 형을 선고하는 책임을 어떻게든 헤로데에게 넘겨주고자 하였다.

헤로데 앞에서의 재판

이 헤로데는 베들레헴에서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 아이를 죽이게 한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였다. 헤로데 가족은 이두메아인으로서 에돔의 아버지인 에사우의 후손이었다. 이 에사우의 후손들은 야곱의 후손들과 계속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헤로데 아그리빠의 삼촌이었다. 헤로데 아그리빠는 후에 사도 야고보를 죽였으며 베드로가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빠져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도 죽였을 것이다. 헤로데는 관능적이며 세속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요한 세례자가 자기와 아내와 이혼하고 동생의 부인과 살고 있다고 비난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 헤로데는 그리스도의 선구자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요한 세례자가 부활하여 자기 영혼을 괴롭힌다고 미신적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양심은 괴로웠다. 주님께서 헤로데에게 끌려 가셨을 때

헤로데는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오래 전부터 예수의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 보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행하는 기적을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다. (루가 23, 8)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시지 않은 구세주께서 자신이 풀려나기 위해 기적을 행하실리는 만무하다. 관중들이 마술사를 바라보는 식으로 자기 앞에 서 계신 이 죄수를 바라보는 경솔한 헤로데는 가슴설레는 마술을 약간이나마 기대하고 있었다. 사두가이파 사람으로서 헤로데는 내세를 믿지 않았다. 완전히 음욕에 빠져있던 헤로데는 종교와 마술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헤로데는 종교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자로서 종교에 대해 공부하고 독서하고 때로는 종교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계속 악행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많은 질문을 했다. 율법학자들과 고위 사제들이 헤로데와 합세하여 주님을 부추겼지만 주님은 헤로데에게 말하기를 거부하셨다. 만일 주님께서 말씀하셨더라면 도덕적으로 경박한 이 사람의 죄를 더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십자가와 타협하여 세상의 모든 왕국을 받아들이라는 유혹이 다시 한 번 구세주께 제시되고 있다. 주님은 빌라도를 이기실 수 있었으며 한 마디로 헤로데도 이기실 수 있었지만 주님은 말하기를 거부하셨다. 주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성실하지 못할 자들에게 설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 서서 너희를 물어 뜯을지도 모른다." (마태오 7, 6)

신앙은 아무에게나 주어서는 안되고 "진리에 속한 자들"에게만 주어야 한다. 헤로데는 주님을 보고 기뻐했지만 그 기쁨은 회개하는 숭고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는 도둑과 막달레나와 유다에게는 말씀을 하셨지만 이 갈릴래아 왕에게는 한 마디도 하려고 하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헤로데의 양심은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종교에 대해 뻔뻔스러웠다. 그는 믿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기적을 원했다. 이 사람의 영혼은 호기심으로 너무도 눈이 멀어 있으며 세례자에 대한 호기심도 그러하였다. 그리고 또 한번의 호기심은 그의 죄를 더 깊이해줄 것이다. 헤로데가 주님께 구원을 얻기 위해 자기영혼을 봉헌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려운 곳을 긁어 달라고 한 것 뿐이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이 세속적인 인물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헤로데에게 취하신 태도를 잠언이 잘 나타내고 있다.

그제야 너희들은 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또, 나를 애써 찾겠지만 만나지 못할 것이다. (잠언 1, 28)

주님의 침묵으로 너무도 화가 난 헤로데는 자존심이 짓밟힌김에 조소와 모욕을 퍼부었다.

헤로데는 자기 경비병들과 함께 예수를 조롱하며 모욕을 준 다음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 보냈다. (루가 23, 11)

요한 세례자의 머리를 헤로디아스의 딸에게 주라고 명했던 목소리가 이제는 죄수의 어깨에 모욕의 표시인 흰 옷을 걸쳐주라고 명한다. 주님께 걸쳐 준 옷은 왕이라는 그의 주장을 비웃는 흰옷이었을 것이다. 로마에서는 관직을 지망하는 모든 후보자들은 toga candida(흰옷)을 입었는데 여기서 "candidate"(후보자)라는 말이 나왔다. 따라서 헤로데의 의도는 가짜 왕은 멸시를 받아도 싸다는 것이었지만, 흰 옷은 또한 자기도 모르게 무죄를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사소한 미움을 갖고 있던 자들이 보다 큰 미움 때문에 사소한 미움을 묻어 버리는 것은 세속적인 태도다. 나치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신을 미워하기 때문에 손을 잡았듯이 빌라도와 헤로데도 그러했다.

헤로데와 빌라도가 전에는 서로 반목하고 지냈지만 바로 그 날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루가 23, 12)

서로 원수지간이었던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는 그리스도를 십자가형에 처할 때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당신 친구들을 하나로 일치시켜 준 것은 분명하지만, 십자가는 당신 적들도 하나로 묶어주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신에 대한 미움에 직면할 때 항상 보다 사소한 미움을 버린다. 자기 피로 범벅이 되어 있으며 당신 백성의 미움을 받고 있는 이 죄수가 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헤로데는 재미있는 이 일을 보고 빌라도를 믿을 수 있었다. 빌라도와 헤로데가 이 일에 대해 서로 웃게 될 때 - 웃음거리가 하느님이긴 하지만 - 그들은 더 이상 원수지간이 아닐 것이다. 웃음이 약하다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때는 그 웃음을 주신 하느님을 거슬러 웃을 때다. 헤로데가 주님께 선고를 내리도록 빌라도에게 돌려 보냈을 때 당신이 죽으실 곳은 갈릴래아가 아니라 예루살렘이라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기억했는지 모른다. 승천과 성령강림이 있은 후, 베드로와 요한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설교한 죄목으로 재판관 앞에 끌려갔을 때 그들과 함께 있던 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 교회의 기도를 올렸던 그 기도 속에는 빌라도와 헤로데가 함께 언급되어 있으며, 마찬가지로 유대인과 이방인들도 함께 언급되었다. 왜냐하면 주님을 단죄하는데 참여한 온 세계가 당신 구원에 참여했으며 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헤로데와 본티오 빌라도는 이 도성에서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작당하여 주께서 기름부어 그리스도로 삼으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렀습니다. 이리하여 주님의 권능과 뜻으로 미리 정해 두신 일들을 살피시고 주님의 이 종들로 하여금 조금도 굴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사도행전 4, 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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