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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 시대의 문화를 가늠해 주는 척도이다. 그 시대 지성의 폭과 깊이가 내용에서 여실히 드러날 뿐만 아니라, 책의 형식으로도 그 시대의 문화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한 권의 책은 원고, 편집, 사식, 대지, 촬영, 제판, 소부, 인쇄 등을 거쳐 만들어진다. 책을 펴내는 이런 과정은 우리 시대의 출판문화에서나 가능하다.

 

글씨를 사진 찍듯 찍어서 인화하는 사식작업은 20세기의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전에는 인쇄소의 식자공이 일일이 글자를 찾아 심어야만 했지만, 컴퓨터 기술이 발달된 지금은 컴퓨터로 식자를 하게 됨에 따라 출판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어 요즈음에는 인화지 대신 필름으로 출력하는 전자출판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성경도 책인 만큼 그 시대의 출판문화에 맞추어 만들어진다. 1977년에 출판된 공동번역 신구약 합본 성서의 경우에는 사식 작업을 거쳐 인화지를 뽑아 인쇄판을 만든 다음 인쇄과정을 밟았다. 반면에 현재까지 시편, 잠언, 욥기 등 세 권이 출판된 구약성서 새 번역은 전자출판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듯 성서는 매 시대의 문화 발전에 걸맞는 꼴을 갖춘다.

그러면 성경이 맨처음 생겨났을 당시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전자출판체제가 안 잡혀 있는 것은 물론 사식기술도 없었던 그 때에는 성서를 어떻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급했을까? 


(1) 혁신을 일으킨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 

아주 오랜 옛날은 차치하고 5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의 출판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1450년 구텐베르크가 납활자 주조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필사본 형태로만 성경이 존재하였다. 구텐베르크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1234년에 금속활자를 만들어 고금상정예문을 인쇄하였지만, 성서인쇄는 구텐베르크가 1452-3년에 인쇄한 “36행 성서”와 “42행 성경”이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 사이에 성경이 널리 보급되어 종교개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실로 요즈음과 같이 집집마다 한 권씩 성경을 갖게 된 것은 구텐베르크가 인쇄기술을 개발함으로 말미암아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싼 값으로 성경을 보급할 수 있게 된 후의 일이다. 그 전에는 한 자 한 자를 필사해서 만들었던 관계로 책의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 성경을 갖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성경을 가지고 있다 함은 곧 그 집안의 사회적 지위가 대단함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다. 성경 몇 구절을 베껴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일이었다. 

이렇듯 인쇄기술 개발 이전에는 개개인이 성서를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으므로 교회 안에 공용성경이 비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성경말씀에 장절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원하는 대목을 찾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성경에 장이 표기된 것은 1226년에 영국 캔터베리의 주교 스테판 랑톤(Stephen Langton)에 의해서이다. 장에 이어서 절이 만들어진 것은 더 후대의 일이다. 1551년 인쇄업자였던 로베르 스테파뉘 에티엔느(Robert Stepanus Estienne)가 인쇄의 편의를 위해 여행 중에 붙인 것이다. 구분된 장절은 대부분 문맥에 맞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장절에 따라 성서를 찾아 읽을 필요성을 느끼는 이는 식자층의 일부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일반 신자들은 책값이 비싼 데다가 문맹이라 그 날의 전례예식에서 봉독되는 성서 말씀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미사전례 때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고 애썼고, 그 말씀을 일주일 동안의 영적인 양식으로 삼아 늘 묵상하며 살았다.

지금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의 혜택을 넘치도록 누리고 있다. 말씀의 전례 때에만 성서를 들을 수 있었던 중세기의 신앙인들에 비해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매일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할 수 있는 우리들이 성서에 대해 쏟는 애정은 그들에 비해서 어떠한가.


(2) 성경은 처음에 어떻게 쓰여졌을까? 

성경은 “한처음에 하늘과 땅을 지어내시던”(창세 1,1)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세상이 창조되던 그 날부터 기록되지는 않았다. 기록문화가 형성되려면 최소한 글자와 필기용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특히 글자 없는 기록문화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면 성경은 언제 기록문화와 맞닥뜨리게 되었을까? 또 인류는 언제 글자를 만들어 사용했을까?

인류사를 돌아볼 때 글자는 어느 지역에서나 대략 그림글자, 뜻글자, 소리글자 순으로 발달해 왔다. 글자가 없던 시기에는 매듭이나 막대 및 조가비띠 등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하였지만, 이는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상기시키는 보조수단에 불과하였다. 여기서 집이나 사슴, 개나 창 등을 간단한 그림으로 그려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그림글자가 생겨났다. 기원전 3500년 우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키쉬에서 그림글자가 첫 선을 보인다.

그러나 그림글자로도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힘들어 기호마다 가리키는 내용이 별도로 있는 뜻글자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가 많이 써 온 한자(漢字)도 이런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해의 모양을 그대로 그린 상형문자의 꼴에서 점차로 추상화되어 날일(日)자가 되지 않았는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유역에서 생겨난 셈어의 변천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글자의 발전상 결정적인 전기는 소리글자의 등장이다. 소리글자는 음절문자와 음소문자로 나뉘는데, 그 중에서도 자음과 모음을 결합시켜서 글자를 만드는 음소문자는 글자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소리글자로는 우리가 쓰는 한글 외에 알파벳을 들 수 있다. 영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인도유럽어의 원형인 알파벳이 기원전 2000년 페니키아에서 사용되었다. 그 분명한 예로는 파피루스의 수출로 잘 알려진 비블로스에서 발견된 아히람의 석관에 새겨진 비문을 들 수 있다.

페니키아의 알파벳은 이후 띠로인과 시돈인에 의해서 두 갈래로 발전해 나간다. 시돈인들의 알파벳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까지 유대인들이 썼던 알파벳으로, 현재에도 사마리아 지역에서 쓰이고 있다. 띠로인들의 알파벳은 트라얀 전쟁 이후 그리스-로마 일대로 뻗어 나가 인도유럽어 문자체제의 바탕이 되었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띠로가 멸망당한 후에는 시리아에서 발전한 아람어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통용되었다. 아람어의 영향을 받아 아랍어와 네모난 꼴을 지닌 히브리어가 변형되어 나왔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문법체계는 가나안어에 가깝다(도표 참조). 

지금까지 히브리어에 이르는 글자의 변천과정을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다. 
히브리어는 모압어, 페니키아어, 우가릿어와 함께 가나안어족(語族)에 속하며, 
아람어와는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다. 더 나아가 바빌로니아어와 아시리아어와 공통기원을 갖는다. 

따라서 히브리어는 이들 언어와 공통되는 특질을 갖는다. 
성경은 이와 같은 언어의 발달에 따라 그 꼴을 갖추었다. 따라서 같은 언어로 쓰여졌다 하더라도 어느 시기냐에 따라 어휘와 글자꼴이 다 다르며, 같은 단어라도 그 의미의 폭이 똑같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성서는 집필기간이 1000년 가량 되어 더욱 그러하다. 
구약성경에서 그리스어로 쓰여진 낱권성경은 손에 꼽힐 정도인 반면에 신약성경은 모두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마태오복음서의 원본은 아람어로 쓰여졌다는 견해도 있다). 간간히 아람어로 쓰인 구절도 눈에 띈다.


(3) 성경은 어디에 기록되었나?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성경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인쇄·출판문화의 세례를 받아 꼴을 갖춘 것이다. 그렇다면 인쇄기술을 비롯하여 제지기술도 개발되지 않았던 고대에는 어디에다 성서를 썼을까? 성서는 어디에 기록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오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① 파피루스 

파피루스로 만든 배룰 타고 
파피루스를 채취하여 운반하는 이집트인. 
오늘날의 기술로 만든 파피루스 위에 
그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종이는 기원후 105년에 중국의 채윤(蔡倫)이 처음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고대 세계의 저작물은 대부분 파피루스에 쓰여졌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 지역에서 자라는 갈대의 이름이자 그 갈대로 만든 종이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3.5 - 4.5m 정도까지 자라는 이 갈대로 상자(출애2,3)나 배(이사 18,2)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기원전 4000년 말 이래 필사용으로도 쓰여졌다. 이집트에서 생산된 파피루스는 페니키아의 항구 비블로스(Biblos)를 통해 여러 나라로 수출되었는데, 여기에서 성경(Bible)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파피루스 재료로 쓰이는 갈대는 굵기가 손목만 해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갈대와는 사뭇 다르다. 

그 껍질을 대나무마냥 세로로 얇게 벗겨내서 납작한 곳에 나란히 놓은 뒤 그 위에 또 한 번 겹쳐서 적신 뒤 꽉 눌러서 햇볕에 말리면, 우리가 보통 쓰는 16절지 크기만 한 파피루스가 된다. 
이를 서로 꿰매거나 풀로 계속 붙여 나가면 족자처럼 기다란 두루마리로 확장된다. 
보통 20장 이상을 붙이면 길이 4m에 지름이 45cm가량 되는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만들어진다.

이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메말랐을 때 쉽게 부서지는 성향이 있어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두루마리 끝에 나무봉을 부착시켜 사용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요즈음에도 유대인의 회당에 가면 봉에 말린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파피루스에 기록된 문서는 건조한 기후에서 무한정으로 오래도록 보존되었다. 파피루스를 만드는 장인(匠人)은 아주 존경받았는데, 보통 서기관들이 이 일을 맡아 했다.
파피루스의 열매는 똑바르고 납작해 글씨의 크기를 고르게 하는데 이용되었다. 글은 보통 5 - 7.5cm 폭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다.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족자처럼 위에서 아래로 펼치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 보게끔 만들어졌다. 
가난한 이들은 파피루스의 양면을 다 썼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한쪽 면만 사용하였다. 


② 양피지 

파피루스와 더불어서 가죽이 기원전 17세기서부터 기록매체로 함께 쓰이기는 했지만 애용되지는 않았다. 양피지가 기록매체로 본격 등장한 시기는 양피지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한 후대의 일이다. 이에 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 터키의 서부 해안에 위치해 있는 페르가뭄의 유메네스 왕(기원전 197-169년)이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만한 방대한 도서관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집트의 에피파네스 왕(기원전 203-181년)이 이 소식을 듣고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지시켰다. 그러자 페르가뭄의 왕은 파피루스를 대신할 기록매체를 찾다가 양피지를 개발하게 되는 것이다.

양피지를 만드는 방법은 동물의 가죽을 석회수에 적셔서 문지르고 잡아 당기면서 말린 다음, 분필이나 경석으로 문지르면 된다. 양피지는 양면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파피루스처럼 부서지지 않아 다루기가 쉬웠다. 또 오래 보존되었다. 반면에 무겁고 반짝거리는 단점이 있어 파피루스를 완전히 대신하지는 못했다. 양피지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파피루스는 기원후 4세기까지 필사용으로 애용되었다.
양피지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파피루스처럼 두루마리로 만들어 보존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점차로 양피지를 겹겹이 놓고 한 쪽을 묶는 코덱스(codex: 책) 형태로 제본되었다. 
양피지는 기원후 8세기 중엽 아라비아인들이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드를 점령한 후 거기서 배운 종이제조법을 유럽에 보급시킬 때까지 널리 쓰였다. 양피지는 주름이 잡히거나 닳아 없어져 버리는 단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피루스보다는 좋았다. 그래서 예수 이후의 탈무드에는 율법서를 필사할 때 양피지를 사용하라는 규정이 적혀 있기도 했있기도 했다. 율법서를 적은 양피지가 닳을 경우에는 그 안에 거룩하신 이름이 담겨 있기 때문에 파기하지 말고 회당 안이나 회당 가까이에 있는 상자(게니자)에 보관하라는 규정이 나오기도 하였다. 


(4) 누가 성경을 필사했는가? 

서기관들이 쓰는 필기구는 때로 금속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주로 갈대로 만들었다. 
갈대의 한쪽 끝을 뾰쪽하게 깍은 다음 이로 질근질근 깨물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을음에 접착제를 배합한 다음 물을 섞어 만든 검은 잉크와 함께 산화철 황산염과 오배자와 물을 섞어서 만든 붉은 잉크를 사용하였다.

고대에 있어서 쓰는 일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다. 기원후 9세기 초에야 알파벳 소문자가 등장했으므로 대문자로만 써야 하는 데다가, 파피루스 종이의 경우 표면이 거칠어서 속도를 거의 낼 수 없어 약자를 많이 사용했다(예: Christos → XC, theos → θC). 
경력있는 서기관들의 경우 보통 1초에 3자를 쓰므로, 1분 동안에 72단어를 소화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파피루스 1장에는 약 140단어를 담을 수 있었으므로 필사하는데 드는 시간은 약 2시간이었다. 

짧은 서간에 해당하는 필레몬서를 필사하려면, 여기에 수록된 단어가 335개이므로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하물며 7100단어가 쓰인 로마서의 경우는 어떠하랴. 파피루스 종이만도 50장이 들어가므로 필사하는데 100시간이 족히 들었으리라. 하루 3-4시간씩만 작업한다 해도 한 달이 꼬박 걸린다. 낱권성서 한 권마다에 그런 열성과 노력이 담겨 있는데, 우리는 어떤 열성으로 성경을 펼쳐보고 있는지 … 

- 월간 성서와 함께 93년 6월호(207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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