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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공동체에 관한 물음과 그에 대한 답변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그 안에는 ‘우리는 이 땅에 언제부터 살게 되었을까?’, ‘이 땅은 원래 누구의 땅인가?’, ‘우리 선조들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 ‘우리 공동체는 언제 생겨났을까?’ 등의 물음이 숨겨져 있다. 또 역사를 거쳐오면서 그 시대의 여건과 사회적인 상황에 맞추어 시도되었던 답변들이 한데 뒤엉켜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공동체에서 생겨나는 갖가지 문제를 부둥켜 안고 씨름했던 이들을 만난다. 그들이 몸부림쳤던 흔적을 어렴풋하게나마 발견하게 된다. 또 그들의 고민과 몸부림이 어느 한 순간에 그치지 않았음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73권이나 되는 성서는 시대가 달라질 때마다, 처한 상황이 바뀔 때마다 공동체의 문제를 부둥켜 안고 씨름했던 그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입증자료가 아니던가.

그들이 제기했던 물음과 답변은 처음부터 기록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보태지고 다듬어지면서 점차 꼴을 갖추어갔다. 그리고 마침내는 기록으로 정착되었지만, 그 과정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따라서 강조점이나 주안점도 그 때마다 다르지만, 그 안에는 공동체의 깊은 사색과 묵상이 담겨 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중에서도 모세오경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첫 만남에 대한 깊은 사색이 율법의 형태로 응집되어 있다. 실로 모세오경에는 이스라엘이 신앙 공동체로 불림받기까지, 불림받아서 신앙 공동체가 되기까지, 신앙 공동체로서 살아가면서 온몸으로 부딪쳐서 깨우쳤던 바가 면면히 담겨 있다.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농익어 있는 모세오경의 형성사 여행을 당신께서 친히 이끌어 주시길…

 

(1) 모세오경의 구분과 이름

모세오경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다섯 권의 성서를 모두어 일컫는 이름이다. 이들 모세오경은 기록되던 초기부터 다섯 권으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았다. 한 질의 율법문서로 전해 내려 오던 것을 통으로 말아쓰다 보니 두루마리의 부피가 너무 커 사용하기도 불편할 뿐더러 보관하기도 애를 먹었다. 그래서 적당한 길이로 나누다 보니 다섯 두루마리가 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다섯으로 구분되었는 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기원전 3세기경에 그리스어로 옮긴 70인역에 다섯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 이전일 것이라고만 여길 뿐이다. 다섯 두루마리로 나누다 보니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이전에는 개개 두루마리를 가리키는 이름이 필요치 않았는데, 이제는 두루마리별로 지칭하는 이름이 따로 있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편의상 ‘다섯 중의 몇 번째’로 일컫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개개 두루마리를 가리키는 이름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히브리 성서는 첫 구절의 중요 단어 내지 첫 단어로 그 책의 이름을 삼는 히브리 전통에 따라 명명했다. 반면에 70인역에서는 책의 중심내용으로 그 책의 이름을 붙였다. 후대의 번역본은 70인역 방식에 따랐다(표 1 참조).

 

  <표1 모세오경의 이름>

 

히브리어 명칭

그리스어 명칭 

브레쉬트(한처음에) 

게네시스(Genesis : 기원, 창세기) 

슈모트(이름들) 

엑소도스(Exodos : 탈출, 출애굽기) 

바이크라(부르시고) 

레위티콘(Leuitikon : 레위족의 법, 레위기) 

브미드바르(Bemi db a r : 광야에서) 

아리트모이(Aritmoi : 인구조사, 민수기) 

드바림(Deba r i m : 말씀) 

데우테로노미온( Deuteronomion : 제2의 율법, 신명기) 

 

(2) 구전으로 내려오다 기록된 이야기 

기록보다는 삶이 먼저다. 기록이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후에 정리한 것일 뿐이다. 실로 우리 민족이 춤과 노래를 즐겼음은 알에서 태어나는 수로 왕을 기다리며 백성들이 구지봉에서 불렀다고 전해지는 구지가(龜只歌), 유리 왕이 떠나간 부인을 그리워하며 불렀다는 황조가(黃鳥歌) 등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고려 때에 나온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런 기록이 있기 전에 이 노래와 춤사위가 바로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역시 역사 안에서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글로 남기기에 앞서 노래 등 삶의 언어로 이야기했다. “야훼를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처넣으셨다”(출애 15,21)는 미리암의 승전가나 “샘물아, 솟아라. 너희들 샘물에 맞추어 노래 불러라. 흙과 지팡이를 가지고 지휘관들이 파고 백성의 귀족들이 터뜨린 샘이란다”(민수 21,17-18)는 샘물의 노래 등은 모세오경에 기록되기 이전에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즐겨 불려진 것들이다.

비단 노래뿐이랴. 이야기나 관습, 신화나 민담 등도 기록과는 별도로 입으로, 또 삶의 방식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나 구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우리나라의 구비문학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 기획 편찬된 것이듯, 이스라엘도 어느 시기에 와서 그간에 전해 내려오던 구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였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그런 시도가 몇 차례 이루어졌을까?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4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마다 연대설정이 다르긴 하지만 대략 솔로몬 시대(J), 남북조 시대(E), 남유다 왕국 시대(D), 바빌론 유배 시기(P)에 각기 다른 관점 아래 문서화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면 그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 보기로 하자.


① 제1차 문서화 작업

문화의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라가 평화롭고 윤택해야 된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모세오경의 제1차 문서화 작업이 솔로몬 시대(기원전 950년경)에 이루어졌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솔로몬은 주변국가를 무력으로 정복하였던 선왕 다윗의 덕분으로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국제교역 또한 성행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성전을 건축하는 등 대규모 건축문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풍요로움을 누리는 대상이 모든 국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위화감 내지 불만 또한 팽배해졌다. 이런 현실에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 하느님께서 원하신 참된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사색이 고조되었다. 이런 사색은 옛부터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되씹어 보게 하였다. 그로 인해 야휘스트 문헌(J : 이 이름은 문헌 안에서 하느님을 주로 야훼로 부르기 때문에 붙여졌다)이 생겨났다. 


② 제2차 문서화 작업 

솔로몬 시대에 누적되었던 불만은 기원전 933년에 그가 죽고 나서 대대적으로 터져나왔다. 유다 지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우를 받아 왔던 북쪽의 10지파가 대거 이탈하여 그들만의 독자적인 왕국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후 반 세기 가량 불안한 정국이 이어지지만, 기원전 886년 오므리 왕조가 열리면서부터는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시기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차지하던 지역이 오므리의 땅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다졌다. 이후 기원전 841년에 예후 왕조가 열렸을 때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북왕국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잇는 무역로에서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한 남왕국과는 달리 국제정세의 영향에 아주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중계무역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기는 했지만, 상거래와 더불어 다른 나라의 문화 또한 스며들어 왔다. 이로 말미암아 북 이스라엘 안에는 갖가지 혼합문화들이 판을 쳤고, 그에 따라 유일신 야훼를 섬기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는데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엘리야를 비롯하여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등의 예언자들이 북왕국에 잇따라 등장한 것만 보아도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고질적이었는 지를 엿볼 수 있다. 바로 이 무렵에 야휘스트와 마찬가지로 옛부터 내려온 전승을 깊이 사색하는 이들이 등장하였다. 바로 엘로히스트(E : 이 이름은 문헌 안에서 하느님을 주로 엘로힘으로 부르기 때문에 붙여졌다) 다. 그들은 야훼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초월적인 하느님 상을 제시함으로써 난관을 타개하려고 했다. 
엘로히스트 문헌은 후에 남왕국에 전해져 야휘스트 문헌과 결합하여 예호비스트 문헌(JE)을 파생시켰다.


③ 제3차 문서화 작업

북왕국에서 외치는 예언자들의 소리는 결코 공허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예언한 대로 기원전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게 망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자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었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 그들이 치른 댓가는 너무나 컸다. 그러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틔울 수 있었다.

나라를 잃은 대신 눈이 틔인 한 무리의 사람들. 그들은 남왕국 유대로 피신해서 옛 전승을 되씹으면서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주로 설교의 형태로 정리하였다. 이를 신명기계 문헌(D)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갈림길에 놓여 있음을 강조하면서, 생명과 죽음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됨을 역설하였다. 생명을 택하려면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충실히 지키라고 호소하였다.

므나쎄 왕 통치시절에 쓰여졌다고 보여지는 이 원 신명기 문헌은 성전에 보관되다가 후에 요시아 왕이 즉위한 뒤에야 개혁의 불길을 당겼다(기원전 622년).


④ 제4차 문서화 작업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에 이어 남왕국 유대 또한 기원전 587년에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했다. 이 사건은 북왕국의 멸망보다 더 큰 충격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안겨주었다. 이제 하느님의 약속을 계승해서 실현시켜 나가는 왕국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서 하느님의 약속에 대해서 깊이 사색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을 늘려 주시겠다는 약속과 그들이 살아갈 터전인 땅을 마련해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또 약속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등의 물음을 깊이 파고 들었다. 그 결과 구원사의 계승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고, 이를 족보의 형태로 표출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은 유배지 바빌론에서 여러 지역의 다채로운 문화양상에 접하면서, 하느님에 관해 근원적으로 재정립할 필요성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옛 전승을 다시금 새로운 시각 아래 다듬고 손질하였다. 그럼으로써 이방풍습으로 말미암아 제기된 여러 가지 위기를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극복해 내었다. 이 문헌은 예루살렘의 제관들에 의해 문서화된 까닭에 제관계 문헌(P)이라 불리운다.


(3) 공동체와 모세오경

바빌론 유배에서 풀려나 팔레스티나에 귀향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는 아주 곤란하였다. 계속되는 흉년으로 생계가 막연해짐에 따라 먹고 사는 데에만 연연해 하느님께 뽑힌 백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자의식은 접혀져 있었다. 이 때 나타난 인물이 에즈라와 느헤미야다. 그들은 축제 및 공동체 예식을 되살려 내면서 하느님 백성 공동체를 굳건히 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의 결과로 통일왕국 시대서부터 바빌론 유배 중에 생겨났던 야휘스트 문헌(J), 엘로히스트 문헌(E), 신명기계 문헌(D), 제관계 문헌(P)이 한데 엮어져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세오경이 되었다. 대략 기원전 4세기경에 현재의 꼴로 굳어졌으리라고 생각되는 모세오경은 역사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걸었던 이들의 삶을 힘있게 제시해 준다. 그럼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하느님과 함께 충실히 걸어가면서 알찬 공동체를 이루라고 촉구한다. 

- 월간 성서와 함께 93년 7월호(208호)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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