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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교회의 선집 - 구약성경의 경전화 과정 -

 

그동안 우리는 구약성경을 이루는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의 형성 과정을 세 차례에 걸쳐 각각 살펴보았다. 편의상 셋으로 갈라 보았지만, 각 모음집별로 형성과정이 따로따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모르긴 해도 각 모음집의 자료가 된 전승은 거의 동시에 생겨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오랜 시일에 걸쳐 다듬어지다가 각각의 모음집으로 굳어졌을 것이다.모음집으로 굳어지기 전 낱권별로 통용되고 있을 때에는 훗날 그 낱권이 한데 모아져 경전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를 거쳐오면서 이들 낱권성경에 하느님 말씀이 깃들어 있다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면서, 공동체 안에서 시나브로 권위를 인정받다가 오랜 시일이 흐른 후 경전으로 자리잡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어떤 책이 경전으로 인정받는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경전이 되는가? 이미 경전으로 확정된 낱권들이 모아진 성경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런 물음이 낯설게 와 닿을지 모르지만, 외경과 위경이 한데 섞여 있는 가운데에서 경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낱권을 하나하나 선정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어찌 되었든 율법서는 공동체의 지침 내지 가르침인 까닭에 경전으로서의 위치가 처음부터 확고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 이후에 생겨난 성경을 경전으로 받아들이냐는 문제서부터는 서로 일치되지 않는다. 실제로 사마리아인들은 오경은 경전으로 인정하지만, 그 외의 다른 성경은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언서의 경우 바빌론 유배 체험으로 그 말씀들이 진실되고 힘이 있음이 극적으로 입증되었기에, 사마리아인 이외에는 모두가 모세오경에 버금 가는 가치를 지닌 경전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예언서 이후에 선정된 낱권성경 모음집인 성문서의 경우는 어디까지를 경전으로 인정하느냐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함께 알아보기로 하자.

 

경전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유대교와 개신교는 39권의 구약성경을, 가톨릭은 거기에 제2경전까지 포함한 46권의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받아들인다. 동방정교는 각 국가와 민족별로 자치교회를 이루기 때문에 경전으로 인정하는 구약성경의 권수가 서로 다르다. 어디에 근거를 두고 각 낱권을 경전으로 판가름했기에 이와 같은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어떤 이는 이들 책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니냐며 손쉽게 처방전을 내어놓기도 하지만, 그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느냐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가름하기가 수월치 않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이미 경전으로 인정받은 율법서와 연관이 있느냐를 우선적인 조건으로 꼽기도 한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성서는 에스델서이다. 이 책은 그리스어로 쓰인 부분을 제외하면 하느님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을뿐더러, 율법서에 언급되지 않은 부림절의 기원에 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봉헌제물의 수량이 율법서와 일치되지 않는(에제 46.6 비교 민수 28.11) 에제키엘서 등도 논란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그 외에도 야훼 하느님의 활동을 어떤 식으로든 보고 내지 찬양하고 있느냐가 경전을 판가름하는 기준이었을 것이라고도 한다(외스트본). 이 경우 각 권에 제의적인 가치를 부여함과 동시에 그 책이 회당에서 사용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성전에서 노래로 불리워졌던 시편을 생각할 때 이 견해가 설득력 있게 와 닿지만, 구약성경의 낱권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축제오경이 후대에 가서 유대인들의 주요 축제 때 봉독되었던 관습으로 보면, 이전에 회당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성경을 봉독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원후 1세기 무렵에 회당에서 율법서와 예언서를 봉독하도록 1년이나 3년 주기로 짜 놓은 범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면 각 지역과 종교별로 경전목록이 어떻게 확립되어 갔을까?

 

1) 팔레스티나의 경전

 

대략 세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째는 기원전 400년경 에즈라가 구약성경을 결정적으로 집대성했다는 전승이다. 구약성경 집필의 전환점을 기원전 5세기에 두고 있는 요세푸스의 기록도 여기에 해당된다. 기원후 90-120년경에 쓰여진 외경(Apocrypha) 에즈라 4서는 14.45에서 이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 70권의 책은 비밀로 남겨두었지만, 온 백성에서 유익이 될 24권의 거룩한 책은 직접 에즈라에게 이야기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즈라 이후에도 경전의 많은 부분이 쓰여졌음이 밝혀진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이 전승에는 역사적 가치가 별로 담겨져 있지 않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에즈라가 최소한 율법서 모음집을 완성시켰을 것으로는 보인다.

둘째는 대회당(大晦堂)의 사람들이 에즈라의 자극을 받아 경전을 확정지었다는 전승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대회당이 존재했는 지가 의문일 뿐만 아니라, 에즈라 이후에 대회당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경전 작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 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구약성경이나 그 외의 요세푸스, 필로, 외경 등의 문헌에서도 대회당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대회당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기원후 2세기경의 미쉬나에 나온다.

셋째는 그리스도교 시대로 접어들기 전까지는 구약성경의 경전이 완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취하고 있는 이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책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자극을 받아 유대교의 경전이 마감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묵시 경향을 띤 유대교 분파와 바리시아파 간에 벌어진 논쟁이 직접적인 동인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여하튼 예루살렘 멸망 이후 라삐 요하난벤 자카이가 얌니아에 세운 학교에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추정일 뿐이다. 여기서 작성된 경전목록이라든가 경전에서 제외된 책들의 명단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2) 꿈란과 알렉산드리아의 경전

 

팔레스티나에서 확정된 목록이 유대 공동체 안에서 곧바로 규범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꿈란의 사해문헌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꿈란에는 히브리 성경의 정경이 된 모든 책들이 다 보존되어 있는데, 유독 에스델서만 없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엄격한 규칙에 따랐던 꿈란 공동체에 부림 축제에 대한 강조가 걸맞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 외에 꿈란 공동체에 보존되어 있던 사본들은 여러 가지이다. 제2경전 중에서 예레미야의 편지, 토비트서, 집회서 등이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희년서나 에녹1서 등의 외경 사본들도 상당량 보존되어 있다. 이를 보면 경전으로 확정된 낱권들과 그 외의 낱권들을 분명하게 구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경향은 알레산드리아의 경전목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70인역 성서의 목록에는 제2경전을 비롯하여 외경이 선별적으로 수록되어 있어, 팔레스티나의 목록보다는 긴 편이다(뒤의 도표 참조). 이 목록도 팔레스티나의 목록처럼 유대 공동체 안에서 규범력을 갖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 중에는 고정된 목록 자체가 알렉산드리아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순드베르그). 사본마다 실려 있는 낱권 및 배열순서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만 2세기경 경전이 확고하게 굳어질 때,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도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처럼 팔레스티나의 경전 목록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115-117년에 일어난 폭동으로 그동안 이집트에 거주한 유대인들이 거의 전멸한 후, 팔레스티나에서 유대인들이 새로 이 지역으로 이민해 오면서 팔레스티나의 경전 전통을 지니고 왔기 때문이다.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경전목록은 그리스도교에 전수되어,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의 경전목록이 선정되었다.

 

3) 그리스도교의 경전

 

기원후 1-2세기는 그리스도교가 한참 움터나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유대교의 경전을 사용하면서 교회가 형성될 무렵에, 교회가 받아들일 만한 확고한 경전목록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신약성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들은 히브리 경전의 책들, 그중에서도 특히 율법서와 예언서와 시편을 많이 인용하였다. 더불어 제2경전을 비롯한 외경에서도 인용하기도 하였다. 유다서 14절에 언급된 에녹1서의 구절이 그 단적인 예이다.

신약성경 시대(기원후 50-150년) 이후에도 그리스도교에서는 70인 역 성경을 계속 인용하였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70인 역 성경은 유대교 내에서도 경전목록을 한정짓지 않은 쪽에 해당되므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저술가들은 경전목록에 관한 한 분명한 지침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교에서 경전목록을 분명히 하려는 시도는 2세기경에나 나타난다. 2세기 중반 유스티노가 유대인과 논쟁하면서 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와 유대인들의 성서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아주 민감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로마의 클레멘스, 뿔리까르뽀, 이레네오 등)들은 유대교의 경전에서 외경까지 폭넓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후 4세기경 북아프리카의 힙포와 카르타고 회의에서 70인 역 성서에 나오는 제2경전까지 포함한 긴 경전목록을 작성하여 서방교회의 호응을 받았지만,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작성한 짧은 경전 목록쪽으로 끌리었다. 이런 두 입장은 예로니모에게서 묘하게 얽힌다.

예로니모는 개인적으로 히브리 경전목록을 선호하였지만, 그가 번역한 불가타 성경에는 제2경전을 포함한 긴 성서목록에다 외경 5권까지 부록에 포함시키게 되었다(옆의 도표 참조).

불가타 성경에 수록된 경전목록은 이후 플로렌스 공의회의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가톨릭의 경전으로 거듭 천명되었다.

 

4) 개신교와 동방정교의 경전

 

개신교에서는 루터 이전에 위클리프 성경(1382년)에서 39권의 구약성경 목록이 선을 보이지만, 구약성경의 경전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루터와 에크 마이어의 논쟁(1519년)에서 비롯되었다. 루터는 마카베오 후서의 경전성에 대해 의심을 품다가 마침내 히브리 전통에 따라 39권의 성서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여기서 빠진 7권에 외경(Apocrypha)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에 비해 동방정교는 훨씬 복잡하다. 국가 내지 민족별로 독립교회를 운영하고 있어 그에 따라 각각 다르다. 시리아 교회가 맨 처음으로 제 2경전을 비롯하여 역대기 상하를 경전에서 제외시켰지만, 그리스 정교회의 영향을 받아 곧바로 70인의 역 성경과 조화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경교에서는 에스델서의 경전성을 의문에 붙이는 가운데 짧은 경전목록을 사용한 반면, 콥틱 교회와 에디오피아 교회는 제2경전을 비롯하여 외경의 일부도 포함시키고 있다.

1627년 베들레헴에 소집된 예루살렘 시노드에서는 짧은 경전목록에다 토비트서, 유딧서, 집회서, 지혜서 등 4권을 경전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보았다.

 

 

공동체와 경전화 과정

 

성경은 책장이다. 책장을 운영하는 이에 따라 그 안에 소장된 책이 39권이든, 46권이든, 아니면 그 외의 몇 권으로 바뀌어 지든 그게 중요하랴. 몇 권이 소장되어 있든 그 책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자주 읽히면 그 이상 무엇을 아쉬워하랴. 7권이 더 있고 또 없다고 해서 성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데 커다란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닌데.

실로 우리가 개탄하며 안타까워해야 할 일은 책장에 꼽혀 있는 채 먼지만 뽀얗게 쌓여가는 우리의 독서 현실이다. 특히 성경은 매년 변함없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지만,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데 쏟는 정성과 시간은 이 기록에 무색치 않은지 곰곰이 새겨볼 일이다.

- 월간 성서와 함께/이우식 베드로(본지 편집차장)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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