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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례거행의 주체2)

 

그리스도는 아직도 '역사의 표지 안에 숨어 계신다'. 그분이 부활한 모습으로 충만한 천상에서 계신다 해도 또한 실재로 교회에, 아니 모든 역사 안에 현존하신다. 이 사실은 아직도 구약성서를, 또 같은 방법으로 다른 모든 종교들을 돌아볼 필요성을 설명하며, 또한 모든 다른 '부분적 표지'들을 포함하는 '종합적 표지'로 드러나, 그리스도의 역할 안에서 '최상의 역사적 주체'를 확립하는  교회를 강조한다.3)
 
교회는 강생한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성사요, 정배이며, 신비체이다(교회헌장 7-8 참조). 이런 배경에서 전례헌장은 "모든 전례의식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이의 몸인 성교회의 행위"(전례헌장 7)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와 함께 하신다. 따라서 교회는 시나이 산의 경우보다 훨씬 더 왕다운 겨레요 사제적 백성이다(교회헌장 10-11 참조). 그 결과 교회는 전례행위의 주체이다. 교회 공동체는, 특히 성찬례를 거행할 때,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in persona Christi 행할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서 행해지는 최상의 '교회의 행위opus operantis ecclesiae'는 바로 그리스도의 행위를 표현하고 그리스도의 행위이기 때문에 (신학에서 성사의 사효성opus operatum이라 부르는 부분),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위격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고백하고 살아가는 유일한 사제적 중개는 바로 그리스도의 그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사제적 삶이 이해되고, 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중개 안에서이다.
 
전례행위의 주체로서 교회를 이야기할 때, 교회의 어떤 개념을 언급하는지, 또 전례를 거행하고, 기도하고, 봉헌하고, 성화하는 교회에 대해 무엇을 알아들어야 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지금 언급되고 있는 교회는 그저 '교계제도-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교회'의 총체를 말하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바탕을 두고 모인 백성"(교회헌장 4)인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전례행위의 주체이다.  
 

 

1. 전례행위의 주체인 교회
 
전례행위는 몇몇 특권을 가진 이들의 행위가 아니라 온 교회의 행위이다(전례헌장 26 참조).  비록 교회가 신품성사의 은총으로 사도들의 임무를 맡아 수행하기 위해, 교회 밖에서나 위에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감사제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들을 통하여 사제적 충만성에 도달하기는 하지만; 사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요 말씀의 정배라는 본성 때문에 사제적 인호를 가진 공동체이다. 성찬례 없이 교회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거행하도록 맡긴 서품된 봉사자가 없어도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교회헌장 28 참조). 이처럼 사제들은 교회 즉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위한 봉사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사제직은 교회를, '그리스도 아래'에 있는 공동체와의 연대성을, 교회에 대한 신앙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사제 또한 그리스도의 이콘이 되는 데, 공동체 앞에서는 것은 공동체와 함께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 아래'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구체적으로 위계적 사제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분의 협조자로 우리 모두를 부르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고; 구체적인 장소에 위치하는 이 교회가 바로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것을 보증하며; 다른 교회들과의 통교 안에 그 교회가 머물러 있도록 감독한다. 직무 사제직과 신자들의 일반 사제직 - 둘 다 교회가 사제적이라는 표현이지만(1베드 2, 9 참조) - 참된 예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보충한다(참조: 교회헌장 10,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5).
 
요약하면, 전례행위의 완전한 주체는 항상 구별하지 않은 교회 전체, 즉,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체로 결합된 교회이다. 다른 한편, 만약 전례와 각 개인들 사이의 관계에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는 한 쪽 사람들의 사제직과 다른 쪽 사람들의 비사제직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제직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계층에서 주어지는 차이이다. 또한 만약 수품된 봉사자가 홀로 전례를 거행한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거행하는 것이다. 왜냐면, 이 경우에도 그는 주님의 제정에 의해 교회의 봉사자이지, 공동체의 위임에 의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최종적이고 초월적인 주체는, 교회를 전례회중과 집전자, 공동체와 교계제도, 백성과 사목자 등이 함께 하는 유기체로 체계화하여 사제적 몸(그리스도의 신비체)으로 만든, 그리스도 그분이시다.
4)

 

2. 전례회중은 교회를 드러낸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보편교회에 적용하면 틀림없이 맞다. 그러나 이 설명의 분명한 뜻은 의심할 여지없이 바로 지역교회의 단계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추상적 실재가 아니라, 사목자와 함께 하는 신자들의 합법적인 지역 공동체 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실재가 된다(교회헌장 26 참조). 신약성서로부터 '교회'라 불린 이 지역 공동체들은 특히 같은 성찬례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을 때 그리스도의 교회의 주요한 표현이 된다(전례헌장 41 참조). 그러므로 지역교회는 그저 보편교회의 '대리점'처럼 단순하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보편교회와 동일한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의 교부들은 전례회중에 대해 그것이 모든 교회의 고유한 것이라 말하는 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교의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한다(교회헌장 26 참조).
 
전례회중이나 예배를 위해 모인 공동체는 모든 인류를 위해 세상에서 그렇게 사제직을 수행하는 교회-구원의 성사의 진정한 현시이다(교회헌장 1. 8; 전례헌장 2. 5. 26; 사목헌장 40). 전례회중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현존과 행위를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교회를 인정하고, 교회를 건설하는 순간이 되기 때문에 교회의 필요조건이다. 특히 전례회중에서 교회는 자리매김의 구체적 형태를 발견하고, 이로써 그곳에 교회가 있고 선교와 증거의 사명을 가진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리스도교 회중은, 사막에서(출애 19, 24), 약속의 땅에서(여호 24), 유배 이후에(느헤 8; 9) 나타난 이스라엘의 제의적 회중 안에서 미리 예고되었고, 신약에서 예수의 영광받으심과 오순절의 성령강림 직후 확연히 드러났다(참고: 사도 2, 42-47; 4, 32-35; 5, 12-16 등). 그 초기 형성기에는 부활의 체험과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 대목에 반영된 성찬례가 중요하였으나(루가 24; 요한 20), 시간이 경과하면서 각 지역 고유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예루살렘(사도 1-6), 안티오키아(사도 13, 1-3), 트로아데(사도 20, 7-11), 고린토(1고린 11; 14) 등의 전례회중.
 
오늘날의 특징인 그리스도교 백성의 유동성과 특정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예배장소들의 존재는, 한 고정된 공동체와 관계없는 전례회중의 모임을 가능하게 했고, 그리스도인들이 여기 혹은 저기의 전례회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이 현상은 많이 실용적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교회와 접촉하고 통교를 이루는 전례회중에 참여하기 때문에, 결국 교회에 대한 소속을 강화하는 것이다. 전례회중은 교회와도 공동체와도 서로 바뀌어지지 않는다. 왜냐면 전례회중은 전례거행의 순간에 존재하고 종료하면 사라져 버리고; 교회는 전례거행 밖에서도 유지되며; 공동체는 개별화되고 표현되는 데 다른 여러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3. 전례회중의 특징
 
전례회중은 아주 독창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고유의 모습에 적합한 자율성과 긴장성을 가진다.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는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었기에,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구원업적을 거행하기 위해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 모인 전례회중은, 자신의 역할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효과적이고 창조적이게 해주는 일련의 긴장을 가진다. 이런 긴장들을 함께 살펴보자.5)

 

3.1.

 

전례회중은 통상적으로 예수의 하느님 안에 신자들을 모은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회개하고 다시 방향 잡을 필요가 있는 남녀로 남아있는다. 다시 말하면, 전례회중은 신앙의 힘으로 모였지만 항상 신앙을 바라본다(전례헌장 59 참조).
 
3.2.

 

긴장이 나타나는 두 번째 관점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거룩함(성성)의 신학적 실재이다. 이 관점에서 전례회중은 마치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가 거룩한 것처럼 거룩하다(참조: 골로 3, 12; 1고린 11, 2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전례회중에 순수하고 완벽한 엘리트들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인 백성을 모은다(참조: 1고린 11, 30; 1요한 1,8-10). 따라서 전례회중의 모든 구성원은 참회와 속죄의 자세에 머물러야 한다.
 
3.3.

 

또 하나의 긴장은 전례회중의 단일성과 다원성 사이의 깊은 변증성에서 나타난다. 전례회중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받아들이는 단일성의 요인으로 있어야 하고 또 있다. 그리스도교 전례회중 안에서 성별, 출신 성분, 문화 등에 의한 구별이 없다(갈라 3, 28; 로마 10, 12-14 등). 비록 사람들 사이의 기호와 성향이 다를 수 있고(야고 2, 14)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에 관해서도 각 사람의 상황이 다를 - 예비자, 참회자, 어른, 아이 - 수 있다 할지라도 구별이 없다.
 
3.4.

 

전례회중은 은사적이고 동시에 교계제도적이다. 즉 그것은 개개인들의 어설픈 비인격적 결합이 아니라, 사랑과 직무(봉사)의 교계제도와 함께 하는 체계, 은총, 그리고 은사를 찾아볼 수 있는 공동체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것은, 전례거행에 있어서의 수많은 직무와 역할의 조화를 표현한다(전례헌장 28 참조). 다양한 직무 혹은 봉사는 전례회중에게 고행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활성화시키는 임무를 가진다.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임무(봉사)이다. 이런 이유로 전례거행은 본질적으로 대화적이고, 누군가가 모두를 위해 움직일 때, 반드시 거기에는 전례회중으로부터의 화답의 목소리가 있게 마련이다.
 
3.5.

 

전례회중은, 개인과 집합사이, 주관과 객관사이, 특별한 것과 공통적인 유산사이, 지역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사이 등에 존재하는 긴장들을 넘어서는 공동체이다. 전례회중은 사람을 지워버리지 않고 모으되, '나', '너' 그리고 '우리'의 단계(인격 상호간의 개방과 만남)가 아니라, 초월과 영원을 향해 가는 역사적이고 가변적인 단계에서,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만남을 이러한 공동체적 지평 안에서 이루어 주는 그리스도의 은총과 구원의 신비를 통해서 모은다.
 
3.6.

 

전례회중은 참여자들의 대조적인 감정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수단을 제공하고, 방향성을 준다. 전례회중은 구체적으로 종교적, 복음적인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모든 감정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와 신앙의 같은 경험을 나누는 모든 구성원이 그에게 집중한다.
 
3.7.

 

단순한 사실에서 추출된 관점이 하나있다. 전례회중은 항상 지역적이고, 특별하고, 한정적인 실재라는 것이다. 지리적 제약을 가지고, 분명한 시간 할당을 가진다. 제한된 수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즉, 인간 조건의 모든 고유한 부분성parzialit 을 드러낸다.
 
3.8.

 

끝으로 전례회중과 선교 사이에 성립되는 긴장이 있다. 사도적 활동은 전례회중에 명령되었으니, 사실 "사도적 활동의 목표는 모든 이가 신앙과 성세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한데 모이고, 교회 가운데서 하느님을 찬미하여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고, 또한 주의 만찬을 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볼 때, "전례 특히 미사성제에서, 흡사 샘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은총이 흐르고, 또한 여기서 성교회의 모든 활동의 목적인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전례헌장 10).

 

4. 전례회중의 능동적 역할
 
앞의 설명에서, 전례회중에 대한 좁은 신학적 전망은 그것의 몇몇 인간학적 관점에 대한 소개로,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전환되었다. 이런 인간학적 관점들이 '작용함'은 근원적인 행위자인 그리스도와 함께 전례행위의 통합된 주체로서 존재하는 전례회중의 '신비로운' 목적을 달성하는 보증이 된다.
 
'전례회중이 전례거행의 주체'라는 것은, 그 안에서 각각 서로 구별되고, 각자는 자신에게 속한 부분을 행하지만, 그 결과는 전체의 행위가 되는 '복수주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거행의 순서는, 다양한 품계와 직무로 구성되는 교회를 드러내어야 하고, 하느님의 백성의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구조를 분명하게 표현하여야 한다. 전례거행 장소의 일반적인 준비는 그곳에 모이는 전례회중의 형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되어야 한다.
 
전례회중이 교회를 드러내는 표지이며, 전례거행의 드러나는 행위자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 전례회중이 모이고, 기도하고, 경청하고, 응답하고, 감사드리고, 봉헌하는 등은 바로 교회가 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례회중이 전례를 거행한다. 아니 보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전례회중은 근원적인 집전자이며,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중개자이며, 그의 실체(현존) 안에서 사제와 직무자들이 행동하는, 그리스도와 '함께' 전례를 거행한다.
 
전례헌장은 신자들이 전례에 "마치 국외자나 묵묵한 방관자인 양"(전례헌장 48)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고, 오히려 능동적인 구성원으로 또 자각하는 참여자이기를 원하다. 전례회중 안에 구경꾼은 없으며, 다만 행위자만 있다; 전례회중은, 각 구성원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도하심에 의해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한 마음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의 생생한 표현인 전례회중의 가치 - 전례의 능동적 주체 - 가 밝혀졌으니, 전례에 대한 능동적 참여뿐만 아니라, 의식적이고, 내적이고, 경건한 참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전례헌장 10. 11. 14. 21. 48. 50 참조). 결국 전례회중은 실천의 영역과 교의의 영역에서 함께 평가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전례는, 참례자로 하여금 기도와 예절들을 통하여 거행되는 신비로 몰입할 수 있도록 특별한 교육방법을 가진다. 그러나 이 교육법은, 전례거행에 투신하는 또 그리하여 함께 하는 참례자나 주인공들이 되는 방식으로 신자들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그러므로 본문과 예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거룩한 침묵은 내적심화와 경청의 요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6)
 
오늘날 어떤 이들은 '전례거행에 참여'뿐만 아니라 '전례적 참여(참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7) 또 다른 이들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참여(참례)하다'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거행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목록을 작성해서 말한다.8) 그러나, 서로 다른 어감을 가지고서 표현하는 저자들의 염려는 항상 같은 것이다: 전례의 참여는 단순히 전례가 거행되는 순간에 국한된 하나의 활동으로 전락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존재 안에 광범위하게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각주]

1) 역주. 이 부분은 마티아스 아우제(Matias AUG )의 저서 Liturgia - Storia, Celebrazione, Teologia, Spiritualit , Edizoni Paoline, 1992 Milano, pp. 63-72 의 번역이다.

 

2) J. G lineau, Le caratteristiche dell assemblea cristiana, in: Aa.vv., Nelle vostre assemblee. Teologia pastorale delle celebrazioni liturgiche, Queriniana, Brescia 1970, pp. 69-85; S. Marsili, La Liturgia culto della Chiesa, in: Aa.vv., Anamnesis. Liturgia, momento nella storia della salvezza, pp. 107-113; Aa.vv., L assembl e liturgique et les diff rents r les dans l assembl e. Conf rence Saint Serge, XXIIIe Semaine d  tudes liturgique, Edizioni Liturgiche, Roma 1977; B. Neunheuser, La liturgia della Chiesa come culto del corpo di Cristo, in: Aa.vv., Mysterion, 위의 책, pp. 25-47; A. Cuva, Assemblea, in: NDL, pp. 118-131; A. Pistoia, L assemblea come soggetto della celebrazione, in: RL 72(1985), pp. 428-435; A. G. Martimort, L assemblea, in: Aa.vv., La Chiesa in preghiera. Introduzione alla liturgia (a cura di A. G. Martimort), I, 위의 책, pp. 109-132; E. Costa, Assemblea liturgia, in: Enciclopedia di Pastorale, 3: Liturgia, 위의 책, pp. 10-24; L. Della Torre, Celebrare il Signore. Corso di Liturgia, Edizioni Paoline, Roma 1989, pp. 39-56; J. L pez Mart n, "In spirito e verit ". Introduzione alla liturgia, 위의 책, pp. 261-286; A. Donghi, Liturgia e vita ecclesiale, Edizioni O. R., Milano 1991, pp. 15-20. 44-83; G. Savornin, L assemblea dei cristiani, in: Aa.vv., Assemblea santa. Manuale di liturgia pastorale (opera diretta da J. G lineau), Edb, Bologna 1991, pp. 274-284.

 

3) 참고: L. Sartori, "In persona Christi", "In persona ecclesiae". Considerazione sulla mediazione ministeriale nella chiesa, in: Aa.vv., Sacerdozio e mediazione, 위의 책, pp. 83-84.

 

4) 참조: J. L pez Mart n, "In spirito e verit ", 위의 책, pp. 264-267.

 

5) 참조: G. Savornin, L assemblea dei cristiani, in: Aa.vv., Assemblea santa, 위의 책, pp. 277-279.

 

6) 참조: D. Sartore, Silenzio, in: NDL, pp. 1382-1390.

 

7) 참조: A. M. Triacca, Solo "partecipare alla celebrazione liturgica" o anche e soprattutto "partecipazione liturgica"?, in: Aa.vv., Assisi 1956-1986: Il movimento liturgico tra riforma conciliare e attese del popolo di Dio, Cittadella, Assisi 1987, pp. 331ss.


8) 참조: L. Maldonado Arenas, Verso il futuro: fedelt  creativa nello Spirito, in: 위의 책, p. 177. [장신호 신부 번역 / 전례학 동호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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