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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말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신자들은 주의 기념일인 주일에 주님의 성전에 모여 그분의 구원 사업을 기념하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미사를 통해서 하느님께는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이웃 형제들과는 한 몸을 이룬다.  이렇게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중심이 되는 영광스러운 권리이며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미사에서의  예절과 기도를 통해 주님 안에 실재하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가며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그 신비를 온 삶으로 증거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많은 수의 신자들이 미사를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크나큰 은총-신자 생활의 활력이 되는-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미사 성제보다는 묵주 기도나 성체조배 등의 신심 행위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예비 신자 시기부터 미사 성제에 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으며, 이해되었다 하더라도 반복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없어 점점 그러한 감각이 무뎌져서 만성화된 채로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미사의 외형적인 면보다는 그런 외적인 표징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실체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중심으로 서술해 나아가도록 하겠다.

 

 

제 1 장 미사란 무엇인가? (미사의 일반적 이해)

 

Ⅰ. 도 입

 

우리는 주님의 날인 일요일만 되면 성당에 모여 주례자인 사제의 집전하에 감사의 제사인 미사를 드린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듣고 봉헌하고 영성체도 한 후에는 끝나기가 무섭게 성당문을 나서서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고민하다가 자기가 계획한 일들을 하러 간다. 이 모든 일들은 길게는 한시간 반에서 짧게는 한시간 정도의 시간에 다 이루어진다. 그리고는 다시 한 주일을 살아간다. 일주일이 지나면 성당에 모여 미사를 보고.... 하는 일의 순환이다. 정작 중요한 미사에서의 의미와 하느님께로부터의 큰 은총의 힘도 잊은 채 말이다.

 

우리는 가끔 ’미사 보러 간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다가 본당 신부님께 혼나기도 하지만 도대체 그 말이 뭐가 틀렸는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세상의 바쁜 일과에 쫓기다 보니 이렇게 우리는 어느새 미사의 방관자 혹은 구경꾼으로 절락해버린 것이다. 다시말해서, 미사의 주인공은 사제이고 우리는 그 사제가 공연하는 한시간 짜리 연극을 일주일에 한번씩보고 오는 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미사는 사제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드리고, 우리를 구원에로 이끌어 주신 예수의 거룩한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미사는 마치 신비스러운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교향악단에는 각 연주자가 있고 지정된 자리와 연주할 악보가 있으며, 그 역할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이 제한되어 있다. 지휘자만이 연주들을 통할하고 전체의 책임을 맡는다. 그렇다고 지휘자만이 전적으로 모든 것을 독점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교향악단의 모든 소리가 다양하지만 교향곡을 하나로 엮어 내는 것처럼 미사도 다양한 하느님 백성의 참여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다양함 가운데서 하나로 일치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오늘날과 같은 미사의 형태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Ⅱ. 전 개

 

1. 미사의 일반적 이해

 

동방예의지국인 우리 나라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서도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를 공경치 말라고 하는 말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부모를 공경하며 도움을 받으면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잘못하면 용서를 청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교회에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주의 모든 것을 조성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주권과 섭리에 복종하면서 최대한 공경을 표시하고,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필요한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 왔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제사를 통해서 하느님께 합당한 제물을 봉헌하고 하느님의 높은 신 권능 앞에 경의를 표하면서 그 마음을 표현해 왔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최상의 제물은 바로 우리에게 주신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은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대신해서 다른 생명체나 생명과 관계되는 예물을 드려 왔다. 아벨의 제사나 아브라함의 제사, 멜키세덱의 제사는 그 모범적인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완전하고 참된 제물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야말로 최고의 제사이며 유일한 제사이고 완전한 제사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는 하느님의 가장 사랑 받는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제물이 되시고 제관이 되시어 아버지의 뜻을 따라 바치신 제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 서간에서 "성령께서는 당신 자신을 오직 한번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죄를 없애 주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효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히브리서 10,12)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에 사랑하시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같이 하시며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통해 빵과 포도주의 모양으로서 우리에게 확실한 모습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다. 동시에 이 거룩한 제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하는 봉헌 의식을 거행하시고 십자가상의 죽음으로써 완전한 희생의 제사를 완성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이 예식을 기념하라"고 하시면서 사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변화시켜 주시는 권한을 위임해 주셨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사도들의 전통에 따라 사도시대부터 주님의 날인 일요일에 모임을 갖고,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기념하고 기리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친교를 맺고,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행전 2,42)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해주신 것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우 사랑하는 이와 헤어질 때, 항상 같이 지내고 싶은 마음으로 이별의 선물을 주고받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에게 "이 예식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매 미사 때마다 빵과 포도주의 모습 안에 오시어 실제로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미사는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하느님 백성의 행위로서 각 신자들의 교회 생활의 중심을 이룬다. 미사야말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을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의 절정이며 사람들이 성자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를 흠숭하는 성부 공경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중을 통해 미사로써 구원의 신비가 기념, 재현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미사는 다양함 가운데서 하나 곧 일치를 드러내게 하는 교향 악단과 같기 때문에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신앙인은 미사에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그래서 "미사 참여는 신앙인들의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펴낼 첫째요 또한 불가결한 샘"이다. 또한 "미사에서는 성직자이든 평신자이든 각자 자기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의식의 성직과 전례 규정을 따라 자기에게 관계되는 모든 부분을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행해야 한다"

 

즉, 미사에서는 공동체적인 참여 안에 모든 사람의 고유한 역할이 있으므로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고유한 역할에 따라서 다양한 참여 가운데서 일치의 정신으로 임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미사에서의 모임의 뜻과 의미를 잘 이해하고 참여함으로써 하느님과 교회가 더욱 일치하는 거룩한 잔치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미사에서의 경문들과 기도문, 성가, 여러 동작들이 살아 있는 언어와 사건들이 되어 우리의 삶의 중심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미사의 어원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미사(Missa)라는 말은 라틴어의 ’Missa’를 한자로 음역한데서 유래한다. 원래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거룩한 잔치인 식사 형태를 지칭하는 의미에서 ’빵의 나눔’ 혹은 사랑의 잔치인 ’아가페(Agape)’라고 했다. 2∼3세기에 와서는 미사를 감사의 의미에 치중하면서 ’감사의 기도’ 또는 ’감사’라고 지칭했다. 또 종교의 자유를 얻은 3세기경에는 ’제사’, ’봉헌’, ’성무’, ’집회’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5세기 라틴어가 일반 대중화되면서부터 서방 라틴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 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당신 교회 안에 물려준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만찬 제사를 지칭하는 말로써 ’Missa’라는 명칭이 통용되기 시작했고 라틴어 ’Missa’는 ’보내다’, ’떠나 보내다’, ’파견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Mittere’에서 파생된 말이다. 본래 ’Missa’라는 용어는 교회 안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로마 시대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던 것이다. 즉 ’Ite Missa est’라는 관용어는 법정에서 ’재판이 끝났다’는 것을 선포한다든지 혹은 황제나 제후가 고관대작들을 알현한 뒤 ’알현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었다.

 

이것을 교회가 받아들여 거룩한 집회인 미사 성제가 끝났다는 것을 선포하는 말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또한 Missa는 ’파견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신자들은 미사 성제에 참여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무한한 구원의 은총에 감싸였으므로 이제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과 구원의 희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기 위해 파견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3. 미사의 역사적 변천 발전

 

① 구약의 빠스카

 

복음서들과 교회의 오랜 전통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의 사건들은 시기적으로 유대인들의 빠스카 축제와 일치된다.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베푸신 최후의 만찬도 빠스카 축제의 일부였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도 유대인들의 빠스카 예식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예수께서는 구약의 전통적인 예식을 빌어서 최후의 만찬을 베풀어주시고, 그것을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기념케 하셨다. 그렇다면 구약의 전통적인 예식인 빠스카 예식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빠스카 축제는 유대인들 나름대로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축제로, 그들은 에집트에서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고, 구원을 받들기에 합당한 백성이 되기 위해 각 가정에서 혹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모여 축제 의식을 거행하였다.

 

’빠스카(Pascha)’란 말의 의미는 ’거르고 지나간다’로 그 유래는 앞에서 언급한바 같이 출애굽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즉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불에 구워서 누룩 없는 빵과 곁들여 먹도록 했다. 그래서 죽음의 천사는 피묻은 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표시로 알고 그냥 지나치고, 그렇지 않은 집의 장자는 모조리 죽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그래서 ’거르고 지나간다’는 의미가 ’빠스카’라고 표현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출애굽 사건과 모세에 의해 이스라엘이 광야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된 사건은 신앙의 원점이 된다. 즉 그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자손 대대로 전하고 기념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보호해 주심을 상기시키며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을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해마다 같은 시기에 양을 잡고 함께 식사를 나누고 빠스카 축제를 지내 왔던 것이다.

 

 

② 신약의 빠스카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에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새로운 계약을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그리스도인과 맺으셨다. 또 사도들과 빠스카 축제를 같이 하심으로써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한 새로운 계약에 제자들을 참여시키시고 그들로 하여금 영원토록 기념시키도록 명하셨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영적인 생명을 위한 양식이고 천사의 빠스카 잔치의 전신이다. 구약의 빠스카와 신약의 빠스카(최후만찬)를 비교해 보면 그 뜻이 더 확실해 진다.

 

신약의 빠스카인 최후 만찬은 구약의 빠스카 축제 양식을 본 딴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과 차원에 있어서는 월등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거룩한 식사 예식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도록 빵과 포도주의 형태 안에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미사 성제(성체성사)를 제정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당신의 구원 사업을 기념하여 당신의 부활로 가져다주신 새생명에 참여하기 위해 언제까지나 함께 모여 식사를 나누기를 원하긴 것이고, 바로 예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빠스카 잔치이자 당신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고 그를 통해 얻게 된 우리의 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는 제사인 미사를 제정하신 것이다.

 

 

③ 초대교회의 미사

 

초대교회의 미사는 예수의 최후 만찬 예식을 원형 그대로 재현하고 반복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와 성서 경청을 위해 유대인의 성전 예배에 참석한 후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사도행전 2,46∼47). 이렇게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서 서로 형제적인 사랑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충만히 나누고 일치를 체험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예식은 ’사랑’ 또는 ’사랑의 잔치’라는 뜻의 ’아가페(Agape)’라고 불렸던 것이다.

 

앞에서 본바와 같이 초대교회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있어서 식사와 성찬 예식(또는 성체성사)은 따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된 하나의 것이었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성찬 예식은 일반 식사와 구별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작은 공동체가 성전에서 성서봉독예배가 끝나고 나서 신자들 중 누군가의 집에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어 먹고 마시는 예식이었던 것이다(Ⅰ고린 11,17∼34;사도행전 2,46 참조).

 

하지만 이런 식탁 공동체로서의 성찬 예식은 신자수가 급증하고 공동체가 비대해짐에 따라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 등의 여러 문제가 생겨서 일반 식사와 따로 분리해서 거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성찬례를 거행하기 전에는 거룩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마음의 타당한 준비를 갖추고자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해오던 아침, 저녁기도를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여 성서 봉독예배를 성찬례전에 거행하였다. 이렇게 성서 봉독 예배인 말씀의 전례와 성찬례의 전례가 연결되어 미사의 형태를 이룬 것은 대략 150년경이다.

 

처음 3c간의 미사는 하나의 통일된 순서와 일련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나, 기도문의 많은 부분을 사제가 자기 나름대로의 기도로 대신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융통성 있게 거행되었다. 그 전례 구성의 주요 요소들은 다음과 같이,

 

      1. 사도들의 서간에서 택한 독서

      2. 독서에 이어지는 설교

      3. 신자들의 기도

      4. 평화의 인사

      5.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성찬 기도

      6. 양형 영성체

      7.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금

 

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제들의 미사 집전시 언어는 회중의 언어였고, 의복은 그 당시의 일상복이었다. 또, 이 시대에는 박해로 인해 공공연히 미사를 거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당시에는 전례를 위한 교회 건물이 따로 있지 않았으므로 신자들 중 비교적 비밀리에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집이나 ’까따꼼바’등이 주일의 예배 집회 장소로 많이 선택되었다.

 

 

④ 이후 미사 형태의 변천과정

 

박해 끝나는 4세기 이후에 공공연히 집회를 가질 수 있게 되자 신자 수가 급증하면서부터 성찬 장소는 가정집에서 큰 장소인 고대 로마의 궁전과 같은 장방형의 큰 건물인 바실리카와 같은 로마 시대 건물이 미사를 위해 사용되었다.

 

5세기 전에는 앞에서 언급한 요소들에 공동기도, 예물봉헌, 성찬기도의 고정, 주의 기도가 첨가되었다. 6세기 초엽에 이르러서는 입당송, 자비를 구하는 기도, 대영광송, 본기도, 봉헌송, 봉헌 기도, 거룩하시다, 영성체송, 영성체후 기도 등이 첨가되었다. 또, 7세기 중엽까지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성체. 성혈을 조금 들음, 천주의 어린양 등이 도입, 첨가되었다. 이와같이 7세기 중엽에 와서 오늘날과 거의 같은 미사 형태가 완성되었다.

 

특히 6∼7세기에는교황의 막강한 정치 권력으로, 왕들이 갖는 온갖 영예와 권리가 교황에게도 쉽게 부여되었기 때문에 이시기에 비잔틴 - 로마 궁전의 의식이 미사 예식 안으로 유입되었다. 장궤, 입맞춤, 깊은 절, 분향, 촛불, 반지 등이 그 시기에 궁전 의식에서 유래된 특징이다. 또 이시기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창안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회중이 부르기에 너무 어려워 성직자들 사이에서만 존속되어 왔다.

 

그리고 교회와 국가가 거의 하나의 체제가 되어 제국의 모든 국민들이 가톨릭 신앙과 라틴 전례에 무분별하게 강요당했던 시기인 8∼11세기에 와서는, 성체 성사에 대한 지대한 경외심이 조성되어 순전하고 흰 밀떡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종래의 누룩 없는 빵보다는 쉽게 떼어 나눌 수 있어 축성된 빵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염려 등이 없어지게 되었다. 또, 이 시기에는 봉헌 행렬이 차츰 없어지고 미사 중에 영성체를 위해 빵을 떼어 나누는 대신에 이를 미리 나누어 놓거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작은 제병을 사용하게 되었다.

 

12∼15세기에는 개회식에 성호경이 첨가되고, 분향, 타종들의 예식이 생겼고, 죽은 이의 기억이 주일과 축일에도 행하여 졌다. 하지만,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은 시간이 흐를 수록 한낱 관객으로 되어 갔다. 그래서 신자들은 미사 중에 외적인 행동에서 그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또,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의 사용으로 민족 고유 문화와 그 심성들을 참작하지 못하여 미사가 실생활에까지 적응되지 못하였다. 신자들이 미사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때는 헌금하는 순간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사제가 신자들을 등지고 미사를 집전하는 동안 신자들은 묵주 기도를 드리는 등 미사가 전례가 아닌 한낱 신심 행위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다.

 

이후 교회에서는 전례에 대한 문제점을 논하기 위하여 뜨리덴틴에서 공의회를 열고, 그 전례 쇄신 의도에 따라 새로 정비된 ’통일 로마 미사 경본’을 157년에 출간하였다. 이 ’통일 로마 미사 경본’은 전 교회의 통일성 유지를 위해 사적인 개혁이나 개인적 과장으로부터 미사를 보호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1920년의 전례 부흥 운동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의한 교황 바오로 6세의 미사 경본이 출간되는 1969년까지 통일적이며 고정된 미사 경본에 따라 미사가 거행되어서, 지역 교회에 대한 토착화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아니라, 전례에 쓰이는 용어도 라틴어를 고수함으로써 미사 성제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 신자들이 이 위대한 신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반면, 교황 바오로 6세의 개정된 미사 경본에는 모국어 사용을 허용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능 동적인 참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복음과 구원의 진리를 선교적 선포의 강조로 성서 봉독의 폭을 크게 늘려 3년을 주기(가, 나, 다 해로 구분)로 복음서의 주요 부분을 모두 봉독하게 하였으며, 신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위해 미사 중에서의 역할을 분담케 하였다. 이로써 오늘날과 같은 미사의 형태를 이루게 된 것이다.

 

 

Ⅲ. 심 화

 

미사에 임하는 자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았다. 또, 예수께서는 최후 만찬 때, 사도들에게 사제로서의 권한을 주시면서 세상 마칠 때까지 십자가의 제헌이 계속되어 모든 이가 구원을 받도록 미사를 거행케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에도 최후 만찬의 연속인 미사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재현되는 미사는 십자가상의 제헌처럼 무한한 가치와 효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외아들이 스스로 제물이 되시고 제관이 되시어 봉헌되는 미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사의 은혜는 무한한 것이지만 그 정도에 맞갖도록 사람이 그 준비를 할 수 없기에 무한한 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무한한 효과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미사에 참여하는 우리는 미사의 각 부분의 뜻을 이해하고 열심한 마음과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미사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기념하며 그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거룩한 잔치를 베푸는 이 미사 성제가 우리들의 그리스도교적 삶의 중심이며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미사 성제가 삶의 정점이자 원천이 되도록 제사와 잔치의 성격을 조화시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되며, 전체 삶안에서 미사가 좀 더 생생한 신앙과 사랑의 제사가 되게 하여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는"거룩한 잔치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마음의 자세로 미사에 참여하고, 자기 소리에 마음을 합하고, 미사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모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사에 임하기 전에 미사에 대해 잘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또한 효과적으로 참여토록 노력해야 할 것 이다.

 

 

Ⅳ. 응용 및 실천

 

1. 미사가 시작되기 적어도 15분전에는 성전에 와서 오늘날의 미사를 잘 준비한다. 특히,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고백 성사를 통하여 영혼과 육신을 깨끗이 하여 합당한 미사 성제가 되도록 준비한다.

 

2. 성체 성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현존을 우리에게 상기 시켜 주므로, 우리는 자주 성체를 영하여 그리스도와의 사랑을 깊게 한다.

 

3. 미사 중에도 한마디 한 동작들을 마음에 두고 행함으로써 미사가 사제만이 아닌 그리스도를중심으로 한 우리 모두의 미사 성제가 되도록 유의한다.

 

4. 무엇보다도 지극한 사랑으로 빵이 되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생활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의 음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미사에서 흘러나오는 무한한 은총이 우리 신자들의 나눔과 일치의 모습을 통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흘러가도록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미사가 끝난 후에도 미사에서 길러 낸 힘으로 매일을 살아가면서 평범한 우리의 일상생활을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생활로 성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제 2 장 미사의 구조

 

Ⅰ. 도 입

 

미사는 크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말씀의 전례’와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그대로 재현하는 ’성찬의 전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나 서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단 하나의 거룩한 예배 행위를 구성한다. 그 밖에도 말씀의 전례전의 시작 예식과 미사를 마감하는 마침 예식이 있다.

 

미사 전례에서의 중심은 구원에로의 초대이며 피로 맺는 세 계약인 성체성사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 구원을 위해 봉헌하고 그 사명을 수행해 나아가게 된다.

 

 

Ⅱ. 전 개

 

1. 시작예식

 

말씀의 전례 앞에 있는 도입부(입당송, 인사)와 참회 예절, 자비를 구하는 기도, 대영광송, 본기도는 미사를 시작하는 예식으로 미사 성제의 안내와 준비 역활을 한다. 즉 한자리에 모인 신자들의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성찬의 전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예식인 것이다.

 

 

① 입당송

 

우리는 가끔 텔레비전에서 귀한 손님이나 올림픽의 영웅들이 공항에 도착하여 카퍼레이드를 할 때 양 길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군중들을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보고 군중들은 종려가지를 손에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하였다. 왜 그랬을까 ? 아마도 그것은 귀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니 너무도 기뻐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서 기뻐 뛰놀며 환성을 지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가 미사 집전을 위해 제대를 향해 행렬을 할 때이다. 예전에는 이때 시편을 읊었으나 차차 간소화되어 한 구절의 시편만을 읊게 되었다. 여기서 시편은 그날 미사의 현의와 축제의 뜻에 맞는 한 구절을 택하여 불렀다.

 

이렇게 주례사제의 행렬을 보고 시편을 읊은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우리의 구원자시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대리하는 사제의 입장을 성대히 영접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따라서 오늘날도 신자들이 모인 다음, 사제가 제단으로 나올 때는 미사경본에 있는 입당송이나 그를 대신하여 성가를 부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입당송의 목적은 "미사를 시작하며 신자들의 일치를 강화하고 전례 시기와 축제의 신비를 깨닫도록 그 마음을 잘 준비시키고 사제와 복사들의 행렬에 가담하게"하는 것이다.

 

 

② 인 사

 

행렬이 끝난 후에 제단에 도착한 사제는 감실과 제단에 깊은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되는데 이는 제단과 감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곳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당 노래가 끝나면 사제와 신자들은 "성부와 ∼"하며 그리스도의 표지인 십자성호를 그음으로써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희생되심으로써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을 상기시킨다.

 

십자성호를 긋고 난 후 사제는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고 신자들에게 인사를 하게 되는데, 이 인사는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뜻깊은 인사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시요,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을 맛보게 해주신 구세주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심을 기원하는 인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큰 소리로 "또한 사제와 함께"하고 응답하게 된다. 따라서 이 인사는 이 집회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시이며 교회 집회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③ 참회 예절

 

우리는 큰 명절 때마다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항상 몸을 깨끗이 씻고 마음을 정갈하게 하여 조상들에 대한 제사가 부정타지 않도록 한다. 인간에 대한 제사가 이럴진대, 우리를 위해 사랑하는 외아들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셨던 하느님께 대한 예배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

따라서 교회에서는 미사 시작 예식 중에 참회 예절의 순서를 가져서 좀 더 합당하게 미사 성제에 임하도록 하고 있다.

인사가 끝나고 사제나 해설자 등 적당한 사람이 그날 미사의 지향을 짧게 설명한 후에 사제는 신자들에게 참회를 하도록 권고하게 된다.

이렇게 신자들이 자기 죄를 생각하고 고백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은. 민물의 주재자이신 하느님 대전에 나아가려 할 때, 많은 죄에 물든 자신을 합당하게 하지 않고는 이 제사에 참여 할 수 없으므로 자기 가슴을 질 정도로 겸손되이 통회하여 용서를 얻고, 미사에서 은총을 받으며 하느님과 천상 성인들에게 은총과 도우심을 풍성히 내려 주시도록 경건한 마음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자들이 일반적인 고백을 하고 나면 사제는 사죄경으로 끝맺는다.

 

 

④ 자비를 구하는 기도

 

참회 예식의 끝에는 자비를 구하는 기도인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외치거나 노래하게 되는데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는, 불쌍한 사람들 의 간구다. 즉 태생 소경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의 일행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군중들의 소리에 자신의 외침 소리가 들리지 않을세라, 큰 소리로 "다윗의 아들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외치는 그 소리가 바로 우리가 미사 중에 외치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인 것이다. 그 태생 소경은 어떠했는가 ? 주위의 군중들이 시끄럽다고 꾸짖자,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아들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마르꼬 10, 26∼52 참조)하고 외치지 않았는가 ? 하지만 우리는 이토록 애절한 간구의 기도를 무심코, 아무런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어 버리고 있다. 우리가 그 구절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아마 매우 열정적으로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간구의 외침은 개인적 비참만을 탄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비참함을 탄원하는 외침이다. 즉 이 자비를 구하는 기도는 주님을 부르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로써 우리의 미사 안에 함께 하시는 주님께 대한 고백인 것이다.

 

 

⑤ 대영광송

 

사순절이나 대림절 이외의 모든 주일과 대축일에 우리는 "하늘 높은 곳에는 천주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하며 대영광송을 부른다. 이 노래는 하느님 찬미 노래로, 성탄날 밤의 천사들이 노래한 성서 구절로 시작하며, 그의 엄위와 영광을 찬송하고 다음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결정적으로 드러내신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과 그로인하여 받은 영광을 찬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날 것임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는 분인 성령께 대한 감사와 영광을 드리며 끝맺는다. 그래서 이 노래는 성부, 성자, 성신의 현현, 즉 삼위일체적인 조화로 끝을 맺는다.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영광의 신비를 찬미하는 기도의 내용으로 정리한 때는 대략 4세기경으로 동방 교회의 수도승들이 즐겨 바쳤던 기도로 추정된다.

 

어쨌든 대영광송은 하느님의 신비를 표현하고 그분께 대한 신앙을 모두가 함께 더욱 깊이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노래이다.

 

 

⑥ 본기도

 

본기도는 미사에서, 하느님의 백성인 신자들을 대표하는 사제가 모든 신자들의 마음 속 청원을 모아 함께 바치는 첫번째 공적인 기도이다.

 

사제가 팔을 벌린 자세로 "기도합시다"하고 기도를 권고하면 신자들은 이 기도에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고, 기도가 끝나면 "아멘"하고 응답한다. 즉 이 공식 기도가 마무리 지어지고 나서 신자들이 함께 "아멘"하고 응답함으로써 그 기도가 자신들의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기도로써 신자들은 개회식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씀의 전례를 준비하고 그 말씀의 전례 안에서 공동체로 하여금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신비와 그분이 주도하시는 구원 사건에 신자들 스스로가 몰입하도록 인도한다.

 

 

2. 말씀의 전례

 

말씀의 전례는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시고,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듣고, 그 구원의 신비가 옛적에 한번만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지속될 신비라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구원 사건의 현실성을 부각시킨다.

 

말씀의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과 신자들의 응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씀의 전례 중의 독서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구원의 신비를 밝혀 주시며 우리 영혼에 양식을 제공하신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심으로써 신자들 가운데 함께 계신다. 신자들은 이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거룩한 노래로써 자시의 것으로 만들며, 사제는 신자들에게 하느님 말씀의 심오한 진리를 강론을 통해 설명해 주어 삶과 밀접히 연결시켜 준다. 또 신앙고백문을 함께 낭송함으로써 주님의 말씀에 동의한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은 신자들은 신자들의 기도로써 온 교회의 필요와 전 세계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바친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그대로 재현하고 그리스도께서 세계약을 세워 주시는 성찬의 전례를 준비한다.

 

 

① 독 서

 

말씀의 전례 중의 주요 부분은 성경의 독서들과 그 사이에 외는 시구들로 되어 있다. 강론, 신앙고백, 신자들의 기도는 말씀의 전례를 더 깊이 설명하고 끝맺는다.

 

이렇게 말씀의 전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독서는 단순히 성서를 읽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말씀의 전달이다. 그래서 이 말씀 속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심으로써 신자들 가운데 함께 하신다. 또 하느님의 말씀은 하늘과 땅과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치유, 구마, 부활 등의 능력을 발하였듯이 성서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이나 축일에 회당에 모여 율법 또는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고 랍비들의 교훈을 듣는 회당예배에서 유래한다. 예수께서도 유대인이 풍속대로 이러한 성서봉독 예배에 참여(루가 4.16∼20 참조)하셨으며 초대 교회 공동체도 이러한 전통을 존중하여 성서봉독 예배에 참석한 후에 신자의 집에 모여 성찬례를 거행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범과 교회 전통에 따라 성서를 봉독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초세기에는 그 당시 독서 관습에 따라 연속적으로 이어서 읽었으나, 후세기에는 선택하거나 준 연속적으로 읽게 되었다. 초대 교회와 로마전레 미사에서는 구약성서 중에서 하나, 신약 서간 중에서 하나, 복음 성서 가운데서 하나를 뽑아 낭독하였는데, 지금도 교회에서는 주일미사 때에는 예전처럼 2개의 독서와 1개의 복음을 미사 중에 봉독한다. 또 이는 삼년을 주기로 성서의 주요 부분을 다 봉독하여 구원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듣도록 하였다.

 

제 1 독서는 구약성서를 봉독하게 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루가 4, 27절 참조) 본받는 행위이고, 또 실제로 초대 교회부터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미리 예시한 구약성서를 봉독해 온 것은 전례 안에서 봉독해오던 전통을 그대로 잇는 행위이다.

 

제 2 독서는 복음서를 제외한 사도 서간을 주로 봉독하게 된다. 여기서 사도 서간을 주로 봉독하는 이유는 사도서간이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지를 그리스도의 사도들 자신이 복음의 씨를 뿌린 각 교회에 써 보낸 서간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활화해 나아갔는지를 잘 알아듣고 깊이 새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 1·2독서는 복음성서와 서로 주제의 조화를 갖도록 되어 있어 긴밀히 연결된다. 독서자는 봉독할 성서 내용을 이해하고 묵상하며 기술적으로도 정확하게 읽어서 진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해야 한다. 즉 성서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아 새 삶을 가져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주의 말씀입니다"라고 독서가 끝났음을 독서자가 알리면 신자들은 과연 그렇다는 뜻으로 "천주께 감사"하고 우렁차게 응답하는 것이다.

 

 

② 응 송

 

제 1 독서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통해서 하느님의 신비와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은 공동 체는 잠시 침묵 중에 구원 사건을 묵상한 후 같은 구약성서의 내용 중에 하느님을 찬양하는 시를 근간으로 해서 들은 말씀에 대해 응답하게 된다.

유다인들의 회당에서도 독서나 강론 후에 노래가 있었고, 교회 초기에도 시편이나 창작 노래를 불렀다. 이것을 응송, 층계송, 응답이라 표현했는데, 현행 예식서에서는 응송이라 칭한다. 이것은 말씀의 전례를 보완하는 것으로 신자들로 하여금 방금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에 순종하도록 하는데 그 뜻이 있다. 또 응송은 오랜 세월과 교회 전통 속에 남아 있는 삶의 표현이고,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의 찬미이고 원의이다.

 

 

③ 알렐루야

 

제 2 독서가 끝나면 공동체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를 영접하며 환호했던 사람과 같이 일어서서 "알레루야"하고 노래한다.

 

알렐루야는 주님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다. 즉 히브리어로 알렐루(hallelu)는 찬양하라이고, 야(jah)는 야훼의 약칭이다. 이 노래는 유다인들이 회당에서 말씀의 전례 중에 행한 시편의 낭독에 대한 환호의 답변이었다. 그리고 사도시대에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승리자로 오심을 기뻐하고 외치는 노래가 되었다.

 

알렐루야는 사순시기를 제외하고 모든 시기에 노래하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그분의 구원 업적을 보는 것으로써, 그저 기쁨의 표현일 뿐이기도 하다. 즉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부활의 완성, 죽음에서의 승리, 죄를 없이한 해방자로서의 광채를 바라보고서 더없이 희열을 느껴 환호하는 노래인 것이다. 또 말씀의 전례 안에서의 가장 중심이며 절정인 복음봉독을 잘 듣기 위한 준비이며 인사요,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따라서 복음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생애, 수난, 죽음, 부활, 재림이 담겨 있는 거룩한 책으로 예수의 현존을 드러내므로, 신자들이 예수를 맞으려고 일어서서 오실 주님 앞에 흠숭의 표시로 환호하게 되는 것이다.

 

 

④ 복 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복음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하심을 드러내며, 말씀의 전례에서 복음봉독은 그 절정을 이룬다. 따라서, 복음을 봉독하기 전에 신자들은 모두 일어나서 인사와 환호를 보내며, 분향과 촛불로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사제나 부제는 "주여 이 사제(부제)의 마음과 입술을 지켜 주시어 복음을 타당하고 정중하게 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하고 주례자에게 강복을 받거나 "전능하신 천주여, 내마음과 내 입술을 깨끗이 하시 어 주의 거룩한 복음을 타당히 전하게 하소서"하고 기도한 후 사제는 먼저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주의 현존을 환기시킨다. 공동체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한다. 그 다음에 사제는 "∼에 의한 거룩한 복음"이라 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성령의 감도에 의해 저술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린다. 그리고 동시에 엄지를 복음에, 다음에는 이마, 입술, 가슴에 차례로 십자성호를 긋는다. 이와 함께 신자들도 "주께 영광"이라 응답하며 이마, 입술, 가슴에 작은 십자성호를 긋는다. 이는 9세기부터 생긴 관습으로, 머리를 중심으로 복음 말씀을 잘 깨닫고, 입으로는 깨달은 바를 전달 또는 고백하며 가슴 속 깊이 간직하여 생활 속에 실현하려는 의지의 표시이다.

 

복음선포가 끝나면 사제가 "이는 주의 말씀입니다"하고 외치면 공동체는 "그리스도께 영광"하고 크게 대답한다. 이어서 선포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 죄를 사하소서"하고 기도함으로써 복음선포 과정이 끝난다. 여기서 그리스도께 찬미라는 응답도 죽음을 이기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고 계시다는 그리스도께 대한 찬미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곧 그리스도인 것이다. 따라서 복음은 미사 중에 잠시 낭독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기쁜 소식"을 다시 들을 때까지 마음에 새기고 행동과 말로서 이웃들에게 그 복음의 진리와 의미를 전해야 하며 생활 속에서 복음의 생활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복음이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⑤ 강 론

 

복음선포 이후 실시되는 강론은 말씀의 전례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 구원의 신비가 생활화 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 봉독 후에 강론을 한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유다인들이 회당에 모여 성경을 읽고 그에 관한 설교를 했고,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예배 중 성경의 말씀을 해설하신 적이 있었고, 사도들 특히 바오로 사도는 밤을 새워 가며 강론을 하기도 했다(사도행전 20. 7∼11).

 

하느님의 심오한 신앙진리를 담고 있는 성서를 설명하는 강론은 본래 신앙의 수호자인 주교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 지역 교회가 늘어남에 따라 이 권한이 주교에서 사제와 부제들에게로 위임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적어도 부제품을 받은 사람이 강론을 할 수 있다. 한때, 중세기에는 강론을 소홀히 다룬 경향도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전례헌장 52항에서 보듯이 "강론은 전례 자체의 한 부분으로 적극 권장"하고 있다. 주일이나 축일, 신자가 많이 모일 경우에는 중대한 이유 없이 강론을 생략할 수 없다.

 

강론을 통해서 공동체는 구원 사건이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공동체로서 구원 사건의 실현을 위한 몫을 다해야 할 것임을 체득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찰이 요구하는 애덕실현과 신앙생활을 강화시켜 준다.

 

강론은 사람의 입으로 말하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Ⅰ데살 2.13) 따라서 신자들은 강론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잘 새겨들어서 성서 말씀과 현실문제, 그리고 그에 따른 사제의 해설 강론을 잘 알아들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⑥ 신앙고백(사도신경)

 

성서봉독과 그에 대한 해설들을 통해서 선포된 하느님의 구원사를 듣고 난 후 그에 대한 응답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고백이다. 이는 신경이라고도 하는데, "신경은 미사 중에 성서 봉독과 강론으로 들은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는 것이며, 성찬의 전례 시작 전에 신앙 개조를 위해 상기하는 행위이다. 신경은 미사 집전자와 교우들이 주일과 대축일에 외워야 한다. 노래로 할 경우에는 모든 이가 함께 혹은 교대로 한다."

 

’신앙고백’이라는 말 그대로 신경은 그리스도인이 맨 처음 세례로써 자신을 신앙인 공동체에 들게 해주신 하느님께 자신의 공동체 신앙을 고백할 때 표현했던 내용들과 근본적으로 같다. 즉 세례 신앙고백과 미사 중 고백하는 신앙은 내용면에 있어서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미사 중에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또한 세례 때의 신앙을 재확인하면서 고백하는 셈이 된다. 또 이 신앙고백은 거룩한 역사 자체(창조에서부터 강생을 통해 성신강림과 성사들의 신비에 이르는 영원한 생명에로 초대된 구원 역사 자체)의 요약이며 곧이어 거행될 성찬전례 때 일어나는 신앙의 신비를 함축하고 있는 기도이기도 한다.

 

가톨릭 기도서를 보면 두 종류의 신경이 나와 있는데, 우리가 주로 많이 외우는 사도신경과 가끔 주일 또는 대축일에 외우게 되는 니체아 신경이 그것이다.

 

먼저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의 바탕이 되는 핵심교리를 담은 초대 교회의 신앙고백문으로 그 기원은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도신경’이라는 표현은 이 신경에 포함된 12항목이 12사도가 각각 한 항목씩 신조를 고백한데에서 유래한 것이다(최근 학자들의 견해로는 신경의 내용이 모두 성서적·사도적 기원을 가지고 있을 밝히고 있다). 현재의 사도신경을 수세기에 걸쳐 이 뤄진 공동체의 전례문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도신경은 초세기부터 에비자를 위한 일종이 길잡이 교육지침으로써 세례성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또한 미사 중 말씀의 전례에서 바쳐지고 감사의 기도였다. 그래서 4∼5세기를 지나면서 교회 공동체의 반성과 숙고, 전례를 통해 다듬어 지게 된 것이다.

 

사도신경의 12항목의 내용은 6세기에 완성된 것이며, 중세 초기에 이르러 서방교회에서 전례 의식 때 사용되었다. 매 주일미사 때 신자들은 이 신경을 욈으로써 신앙을 고백하며 새롭게 한다. 동방 교회에는 없다.

 

사도신경에서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그리고 니체아 신경 중간 부분에서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으며"를 합송할 때 신자들은 머리를 숙이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은 주님께 대한 흠숭과 찬송의 표시이다. 즉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구원을 시작하시는 순간이므로 머리 숙여 주님을 내안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표시인 것이다.

 

 

⑦ 보편지향 기도

 

(보편지향 기도로써 말씀의 전례가 끝난다)

신앙고백이 끝나면 즉시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셨듯이 공동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느님 아버지께 공동체의 염원을 기도하고 권고한다. 이 신자들의 기도는 이미 2세기 말경에도 있었던 기도이다. 그런데 6∼7세기경에는 이 기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기도에 지나친 사적, 개인적 감정 표현으로 남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기도는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에 대답키 위한 기도이며 신앙에 따라 사는데 필요한 은혜를 청하는 기도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을 청하는 기도나 아니라 신앙은 공동체에 의존하는 은총이고,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은총의 필요성을 통감하는 신자들이 공동체를 위해 바치는 기도인 것이다. 따라서 기도의 지향은 성교회를 위하고, 위정자들을 위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고, 모든 사람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기도 지향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에 필요한 일들을 청한다. 여기서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인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뜻하는 것이므로 하느님 백성이 된 사람, 즉 모든 신자, 교회 전 체, 세계의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이다.

둘째, 위정자와 세계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 즉 모든 민족, 국가, 각종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회개, 위기와 평화, 구원을 위한 기도이다.

셋째, 온갖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는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노인, 병자, 실업자, 감옥의 수인 등을 위한 기도로 아주 총체적인 긴급하고 필요한 이들을 위한 기도이다.

넷째, 지역 공동체를 위한 기도이다. 이는 지역 공동체, 즉 교구, 본당, 각종 단체, 가정, 냉담자 등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여기서는 이런 지향으로 기도하는 중에 대표로 기도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중에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특정한 이들을 기억할 수도 있다.

부제나 평신도가 기도를 바칠 때마다 신자들은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 함께 탄원하거나 침묵으로 그 기도 지향에 동의한다. 그리고 지향별로 너댓개 기도가 다 끝나고 나면 사제는 신자들의 기도를 마무리 짓는다. 이에 신자들은 "아멘"하고 응답함으로써 그 기도 자체가 자신들의 것임을 확인한다.

 

 

3. 성찬의 전례

 

보편지향 기도가 끝나면 말씀의 전례는 마치게 되고 성찬의 전례가 시작된다.

 

성찬의 전례라는 말은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예수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제정하신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그대로 재현하면서 일반적으로 ’성찬’이라고 한데서 유래하는 말이다.

 

이 ’성찬’이라는 말의 어원은 ’에우카리스타’라는 그리스어로서 ’감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감사의 전례하고 부르기도 한다. 또 앞에서 언급했듯이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는 따로 구분된 예절이 아니고 하나의 미사 성제로 연결되어 있는 예식이므로, 성찬의 전례라고 해서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이 식사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식상에서 이 위대한 빠스카의 제사와 잔치를 설정하시고 이로써 교회 안에 십자가상의 거룩한 제사가 되도록 하시며 우리를 위한 구원 신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그 표징으로써 우리는 미사 때마다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주님의 몸과 피가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바쳐져 드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빵과 포도주는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에너지를 제공하는 육신 생명의 양식이며, 이것이 거룩한 식사 예식을 통해서 육신 뿐 아니라 영혼에도 큰 힘과 기쁨이 되게 하는 생명의 양식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또 우리 모두는 이 생명의 양식을 받아먹는 사람들은 개개인이지만 그 개개인 안에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먹히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결국 하나이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심이고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기도 하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갈라 2. 20) 것이며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고 하나가 된 우리는 "빵을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Ⅰ고린 10. 17)이 되어 이웃과도 서로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미사에 참여하며 이 모든 것을 되새기게 된다면 이 성찬의 전례는 큰 감사의 행위가 된다. 그래서 성찬의 전례는 그리스도의 기념제사이고 감사의 제사,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신비가 지속되는 십자가 제사인 것이다.

 

 

① 봉 헌

 

말씀의 전례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체험 우리는 이제 울 마음에 가득찬 기쁨과 사랑과 감사를 봉헌 예절로 표현하는 예식을 하게 된다.

원래 미사에서의 봉헌은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자신의 죽음을 지칭한 것이었다. 그 죽음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을 위한 계약의 피로서 바쳐진 봉헌 행위였다.

 

이 봉헌된 그리스도의 삶과 피의 형상인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고 마실 때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봉헌에 참여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빵과 포도주는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 예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와 공동체에 대한 배려요 준비이다. 그리스도께서 참사제로서 자신을 아버지 하느님께 제헌하며 우리도 함께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일컫는 봉헌은 현행 예식서에서는 ’제물 준비’라 지칭한다. 원래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데는 아무런 예식이 없었으나 이미 2세기경부터 빵과 포도주를 대표 신자가 바치는 행렬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생명과 노동에 의한 결실, 즉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표시를 했다.

 

봉헌 노래가 시작되면 복사들은 우선 주님의 식탁인 제단에 성체포, 성작수건, 성작, 미사경본 등을 준비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자신들이 공동으로 거행하는 미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표시로 빵과 포도주를 대표 신자로 하여금 제단에 드리게 된다. 또 신자들은 가난한 형제들과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하게 되는데 이런 물질적인 희사는 이웃을 돕자는 사랑에서 나온 행위이다. 헌금은 감사송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 끝내도록 해야 하며 제단이 아닌 곳에 따로 모아둔다.

 

빵과 포도주의 제물을 받은 사제는 빵과 포도주가 담긴 그릇을 들고 "온 누리의 주 천주여, 찬미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땅(포도)을 가꾸어 얻은 이 빵(술)을 주께 드리오 니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음식(음료)이 되게 하소서"하고 예물 준비 기도를 하여 빵과 포도주는 하느님의 선물이고 인간 노동의 결실임을 드러내고 감사와 축복을 빈다. 포도주를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전에 사제는 포도주에 물을 몇 방울 섞으면서 "이 물과 술의 신비로 우리도 우리의 비천한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천주성에 참여케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뜻하는 포도주와 인성을 뜻하는 물을 섰음으로써 우리 인간도 그리스도의 신비에(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한다.

 

감사의 기도를 마치고 나면 사제는 허리를 굽히고 "주 천주여 겸손한 마음으로 통회하는 우리를 굽어보시어 오늘 우리가 어전에 드리는 이 제사를 기꺼이 받아들이소서"하고 기도함으로써 하느님께 올리는 이 제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제사임을 상기시킨다.

 

다음에 사제는 손을 씻으면서 "내 잘못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허물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하고 기도하는데, 이는 더러워진 손만이 아닌 영혼의 정화까지도 하느님께 청함으로써 더 합당한 제사가 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사제는 "형제들이여, 우리가 드리는 이 제사를 전능하신 천주성부께서 즐겨 받으시도록 기도합시다"하면서 신자들에게 봉헌에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다시 일깨운다. 그러면 신자들은 "주여 사제의 손으로 드리는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주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우리와 온 성교회에는 유익이 되게 하소서"하고 화답하고 사제는 곧바로 그날의 전례문에 따라 봉헌기도를 바친다. 이 봉헌기도는 제대 위에 바쳐진 제물 위에 하는 기도로서 제물 준비의 부분을 끝맺는 기도이다. 봉헌기도는 그 날의 현의를 드러내고, 얼마 후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성변화할 빵과 포도주에 대한 축복을 청하며, 하느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청한다. 또 우리의 기도 및 우리 자신을 봉헌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기도가 끝나면 신자들은 "아멘"하고 응답한다.

 

 

② 감 사 송

 

성찬의 전례 중심 부분에서 처음 나오는 것이 감사송이고 이어 성찬기도가 이어진다. 감사송을 하기 전에 사제는 이제 비로소 성찬의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이르렀음을 알리고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고 인사하고, 신자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하고 화답한다. 이 인사가 있은 후 사제는 다시 "마음을 드높이"하고 외치면 신자들은 "주를 향하여"하고 답한다. 사제는 또 "우리 주 천주께 감사합시다"하고 재촉하면 신자들은 "우리 주 천주께 감사합니다"하고 대답한다. 이어서 사제는 감사의 정을 다하여 그 날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주 성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께 감사함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우리의 의무요 구원이로소이다"를 감사송 안에서 노래한다. 즉, 이 감사의 기도로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 인간을 위해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구원 사건을 회상하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우리를 그 구원에 참여케 하심을 감사하며, 이러한 위대한 구원 사업을 하시도록 당신 외아들을 보내주신 천주 성부께 감사 드리는 것이다.

 

 

③ 거룩하시다

 

감사송이 끝나면 사제와 신자들은 함께 하느님께 깊은 삼사의 정을 느끼며 주신 은혜에 대한 찬미의 노래인 ’거룩하시다’를 노래한다. 이는 이사야서 6.3절과 마르코 11.9∼11에서 취한 것으로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가 함께 부르는 우주적인 감사의 노래이다. 즉, 이 노래는 우리 신자들 뿐 아니라 천상의 합창대와 함께 모든 피조물이 더불어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의 정을 발하며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④ 성찬기도

 

성찬기도는 성찬의 전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가장 거룩한 기도이다. 이 기도는 성체, 성혈로의 성변화를 중심으로 한 거룩한 행위로써 성령을 청함, 성별함, 기념과 재현, 봉헌, 전구, 끝영광송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 성찬기도의 전체적 의미는 예수께서 만찬을 베풀면서 행하신 말씀과 행위를 중심으로 엮은 감사와 성화의 기도이다. 즉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기리며 감사드리고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 뿐 아니라 산이와 죽은이 모두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구원에 참여케 하는 기도인 것이다. 따라서 성찬기도는 미사의 중심이고 절정이다.

 

이 성찬기도는 처음부터 고정된 하나의 기도문이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 있었던 것을 제 1·2·3·4양식의 네 가지 성찬기도문으로 발전시켜서 오늘날의 형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성찬기도 제 1 양식은 대략 4세기 중엽부터 4세기말에 걸쳐 고정되면서 5세기에 이르러서 오늘날의 산술 형태와 같이 고정되었다. 이후 로마 전례 양식을 확립한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이 제 1 양식을 로마 양식으로 고정한 이래 전통적인 로마 전례 양식으로 전해 오고 있다.

 

제 2 양식은 히뽈리뚜스 주교가 ’사도전승’에 성찬기도의 중요한 요람을 뽑아 수록 한데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제 1 양식에 비해 짧은 편이다. 또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에 현 대인들에게 매우 적절해서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성찬기도 제 3 양식은 로마 전례 양식인 제 1 양식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2 양식을 보충하여 로마 전례의 성찬기도로 완성시킨 것이다. 따라서 제 3 양식은 제 1 양식보다 더 풍부한 내용을 지닌 성찬기도이다.

 

성찬기도 제 4 양식은 동방 교회에서 감사송 부분과 전문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성찬기도를 사용하던 그 기도문을 라틴어로 옮기고 문장과 표현을 간략하면서도 세련되게 다듬어 놓은 것이다.

 

위의 4가지 성찬기도 양식은 필요에 따라 하나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데 그 시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제 1 양식 : 성탄, 공현, 부활, 승천, 강림, 세례, 서품, 사도 축일 등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으나 특히 주일과 이 성찬기도에 이름이 나오는 사도들과 성인들의 축일에 사용된다.

제 2 양식 : 주간 평일이나 어린이 미사 같은 특수한 환경에 사용된다.

제 3 양식 : 특히 주일과 축일에 그에 맞는 감사송과 함께 사용된다.

제 4 양식 : 감사송이 변하지 않으므로 그날의 고유한 감사송이 없는 연중주일이나 평일에 사용할 수 있다.

 

ⅰ) 변화기원

감사송에서 성체축성으로 이어지기 전에 간단한 연결기도를 하는데, 이때 신자들이 봉헌한 예물을 하느님께서 축성해 주시기를 바라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이 되도록 기원하며 그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이 구원을 얻도록 간청한다.

 

ⅱ) 성체축성

이는 최후만찬 때 행하셨던 말씀과 행위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주님의 현존을 구현한다. 이때 축성 후 성체 성혈을 높이 들면 신자들은 큰 흠숭의 뜻으로 깊은 절을 한다.

 

ⅲ) 환호(신앙의 신비여)

이는 거룩한 변화로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됨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에서 나온 환호성이다. 즉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깊게 체험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굳게 믿고 전하겠다고 외치는 환호성인 것이다.

 

ⅳ) 기념 봉헌 일치 전구

"이 예식을 기념하라"(루가 22, 19)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교회는 특히 성찬 예식을 통해 주의 수난과 부활, 승천을 기념하고 그리스도를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봉헌하고 하느님과의 일치와 신자들간의 일치를 도모한다. 뿐만 아니라 죽은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함으로써 주님께서는 산이와 죽은 이의 구원을 위한 제물임을 표현한다

 

ⅴ) 끝영광송과 아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신과 더불어 전능하신 천주성부, 온갖 영예와 영광을 세세에 영원히 받으시나이다"하면서 사제는 성체와 성혈이 담긴 그릇을 들어올리는데, 이는 이 모든 신비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 성령과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신자들의 자세를 드러내는 기도이다. 이때 신자들은 "아멘"하고 응답함으로써 성찬기도가 끝맺어진다.

 

 

⑤ 주님의 기도

 

성찬의 기도가 끝나면 영성체 예식이 거행되는데 신자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가장 완전한 기도인 주의 기도를 바치게 된다.

 

이 기도가 영성체 바로 앞부분에 위치한 이유는 영성체를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신자들이 성찬의 빵인 그리스도의 몸을 암시하는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또 죄를 깨끗이 씻어 달라고 간청하여 거룩한 빵이 실제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 받아 모시게 하기 위함이다.

 

사제가 먼저 "천주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하고 신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고하면 신자들은 함께 주의 기도를 바친다.

 

주님의 기도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는데, 그 첫부분은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아버지,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심, 당신의 나라. 당신의 거룩한 뜻을 말한다. 그리고 그 뒷부분은 인간의 관심과 관련되어 있다. 즉 일용할 양식, 용서, 늘 따라다니는 유혹,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는 악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를 다시 세분해서 그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을 ’아빠(Abba, 아람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가 가르친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빠라는 말은 나이 어린 자식이 그 아버지에게 쓰는 호칭이다. 그리고 근동 지방에서는 성인들도 그들의 아버지나 노인들에게 존경을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애칭이였다. 이렇게 익숙하고도 평범한 표현을 창조주이며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느님께 사용한다는 것은 신성 모독의 불경한 태도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이 표현을 무려 170회나 사용하신 것을 복음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 ’아빠’라는 표현을 통해서 마치 어린이가 아버지와 이야기하듯이 말하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시었고, 우리도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의 자녀됨을 깨닫고 더욱 하느님의 나라를 열망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신 것이다.

 

ⅱ)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거룩하다(sanctus)’는 말과 비슷한 말로는 ’의롭다, 완전하다, 선하다, 순수하다’ 등이 있다. 이 거룩하다는 말은 본래 ’속된 것으로부터 따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순수한 것 혹은 선한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또 이는 하느님의 본질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은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신 분이지만은 않다. 그분은 그분 자신이 거룩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거룩해 지기를 권하신다(루가 11,13 참조).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이 우리 인간들에게도 깊이 새겨짐으로써 빛나기를 바라셨다. 이에 우리 신자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거룩하심이 우리 안에서 실현되도록, 그리고 이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빛나도록 신앙생활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될 것이다

 

ⅲ) 그 나라가 임하시며

여기서 ’하느님 나라’는 당신의 영광이 결정적으로 빛나시게 되는 곳이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러한 나라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알려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 부활을 통해서 그 나라에 초대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가 이 세계 저쪽의 또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이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그 나라를 체험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나라가 완전히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 나라는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으며 종말에 가서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될 것이다(마태 24,1∼14 참조).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 그 나라는 궁극적인 희망이다. 그런데 그 희망이 현실과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그 나라의 완성을 희망하면서도 그 희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현실의 삶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함께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나라를 실현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ⅳ)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 ? 어디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는가 ? 이것은 모든 신앙인이 부딪치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 중의 하나이다.

 

예수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뜻은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선포는 그분의 가르침의 핵심적 주제가 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를 선포함으로만 끝내지 않고 몸소 행하심으로써 현실화시키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영광을 위해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여, 주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분이 살아가신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 즉 그분이 가지셨던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며,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추종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는 우리가 행해야 할 바를 충실히 한 후에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루가 22,42)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당신의 뜻에 온전히 맡겨 드리고서 살아가야 한다.

 

 

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인간은 양식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들은 양식을 얻기 위하여 땅과 힘을 투자하여 노동을 한다. 하지만 양식은 인간 노동에 의해서만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 애용할 양식을 주실 것을 청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한 개인만이 그 양식을 먹고 생명을 연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로써 모든 자녀들이 함께 먹고 배부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양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친교를 나누며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도록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양식은 물질적인 ’밥’으로서의 양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양식은 영혼의 삶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영혼의 양식으로 오신 혹은 미사 성제 중에서 빵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어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ⅵ)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인간 중에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완벽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말과 행동으로 혹은 생각으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또 이것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대한 것도 있고 하느님께 대한 것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잘못을 하게 되므로 용서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용서를 받았다면, 우리도 용서를 청해 오는 사람에 대해 용서를 해 주어야 한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를 통해 자비롭게 우리를 용서해 주시듯이 우리도 타인에 대해 자비로운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골로 3,13)해야 한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용서를 구할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이다. 타인과 응어리진 관계를 자비로운 용서로써 화해한 이후에야 우리는 "우리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청할 수 있는 것이다.

 

ⅶ)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자유’라는 놀라운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기를 용인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그 자유를 당신 뜻에 따라 사용하기를 바라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종 그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에 맞게 사용하여 ’악의 세력’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를 오직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온갖 형태로 드러나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를 청하며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의 기도를 전체가 바치고 나면 사제는 양손을 펴 들고 공동체를 악의 세력에서 구하시고 평화를 주시기를 청하는 부속기도를 한다. 이에 신자들은 "우리 주 천주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세세에 있나이다"하고 환호하며 영광송을 바치며 주의 기도를 마무리한다.

 

 

⑥ 천주의 어린양

 

주의 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평화의 인사를 권고하고, 신자들은 교회와 전인류 가족의 평화와 일치를 청하며 같은 빵을 나누어 받기 전에 서로의 사랑을 표시한다.

평화의 인사가 끝나면 사제는 "우리 모두가 영성체로써 그리스도 자신이신 같은 한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심으로써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표시"로서 빵을 나누는 데 이때 신자들은 "천주의 어린 양"을 노래로 또는 큰 소리로 왼다. 이 기도의 운 모습은 세례자 요한이 자신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요한 1,29)라고 한 말에 구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기도문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청하는 기도이다. 이 기도문이 미사에 도입된 것은 7세기말로 교황 세르지오(687∼7이 재위)에 의해서이며, 이 기도의 마지막 부분은 미사 안에서 창조 종말론적 평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지속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10세가 경에 첨가되었다.

 

⑦ 영성체

영성체는 축성된 빵의 모습으로 오시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먹는 예식으로 이 예식에서 미사의 기쁨과 즐거움을 드러내는 잔치성이 잘 드러난다. 자신의 몸을 우리 영혼의 영식으로 내 놓으신 그리스도의 지극한 희생적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이 예식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영성체가 끝나면 사제와 신자들은 잠시 침묵 중에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또 사제는 미사의 효과를 위해 영성체 후 기도를 드리고 신자들은 ’아멘’으로 그 기도에 참여한다"

 

 

4. 마침예식

 

성찬의 전례 다음에 있는 인사와 축복, 파견예식은 미사를 마감하는 예식으로서 우리가 미사에서 받은 은총으로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선포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한다.

 

① 인사와 축복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친 다음 사제는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고 신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면 신자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하고 화답한다. 그러면 사제는 큰 십자성호를 그으며 "전능하신 천주 †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우리에게 강복하소서" 하고 확인의 응답을 한다. 이렇게 사제가 축복하는 것은 미사의 시작예식에서의 십자성호와 의미를 같이한다. 즉, 모든 일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시작되고 마쳐진다는 창조 종말적인 신앙의 표현이다. 또, 이 축복은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에게 미사에서 받은 하느님의 축복을 상기시켜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② 파 견

인사와 축복의 예식이 끝나고 나면 사제나 부제는 신자들을 향해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고 외치게 되는데, 이는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이 미사에서 받은 은총을 일상 생활 안에서 증거하며 선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히 살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파견됨을 의미한다. 즉, 복음을 전하라는 이 명령은 비신자들에게 가서 복음적 교리를 가르치고 성당으로 그들을 인도하라는 의미보다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된 우리가 그들에게 신앙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모범적인 혹은 복음적인 생활로서 그들도 하나가 되도록 아니 모두가 하나 된 모습으로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파견식을 통하여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증거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기들의 사명과 책임을 다시 깨닫게"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Ⅲ. 심 화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느님과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본이시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참여하는 미사를 통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같은 피조물인 이웃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복음에 충실한 생활을 해야 하며, 일치의 제사인 미사에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 주일의 개념을 단순히 휴일이라는 데서 끝내지 말고 우리를 위해 수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는 날이며 미사성제를 통해 부활에 참여하는 날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Ⅳ. 응용 및 심화

 

1. 우리는 미사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 미사 전에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하도록 준비한다.

2. 말씀의 전례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듣기 위해 그날 미사의 현의를 잘 드러내는 본기도, 독서, 복음 등을 미리 읽는다.

3. 성체를 영하기 전에는 영적, 육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백성사와 공복제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단정한 자세와 옷차림에도 유의한다.

4.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써 증거 하기 위해서 이웃 형제를 특히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에 대해 관심을 표현하고 깨어 기도한다.

 

 

맺 는 말

 

미사에서 받은 은총과 그리스도의 신비를 우리의 일상 생활 안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리스도인다운 참여 자세를 갖추게 된다면, 우리는 미사를 통해서 받은 활력을 그리스도의 지체답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즉 그분의 사명에 참여하고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 파견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복음적 생활에 충실하게 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신자들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되어 미사에서의 근본 목적인 ’하느님 예배와 구원을 위한 인간성화’를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목자 및 전례교육자들은 예비신자 기간 뿐 아니라 신자 재교육을 통해서 미사 전례의 각 부분의 의미 등을 쉽게 이해하도록 교육시키고 신자들이 실제로 말이나 노래, 동작 등으로 예식에 직접 참여하는 폭을 넓혀 주어야 한다. 그리고 신자들 개개인의 개인적인 노력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 백성인 그리스도인 모두는 한 마음이 되어 미사성제를 통해서 하느님 예배와 인간성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 참고 도서 목록 *

 

☞ 교회 공식 문헌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서울 : C. C. K., 1983.

2.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전례에 관한 의안]. 서울 : 200주년 사목 위원회, 1983.

3. [미사경본 총지침]. 서울 : C.C.K., 1990.

 

 

☞ 단행본

 

1. 가톨릭 대학 신학부 91년도 부제반 공저. [가톨릭 교리]. 서울 : 가톨릭 출판사, 1991.

2. 가톨릭 대학 신학부 92년도 부제반 공저. [성인 예비자 교리]. 서울 : 가톨릭 출판사, 1993.

3. 과르디니. [거룩한 표징]. 왜관 : 분도 출판사, 1989.

4. 김경식. [생활교리]. 대구 : 대건 출판사, 1985.

5. 백 쁠라치도. [미사도 빠스카 잔치이다]. 왜관 : 분도 출판사, 1976.

6. 안병철. [성서에 나타난 성체성사]. 서울 : 가톨릭 출판사, 1989.

7. 이기명. [미사해설]. 서울 : 가톨릭 출판사, 1992.

8. 이순성. [의미로 본 성사와 미사]. 서울 : 대홍, 1993.

9. 정대식. [전례와 영성생활]. 서울 : 가톨릭 출판사, 1993.

10. 쯔찌야 요시마사. [미사]. 최석우 역. 서울 : 성바오로 출판사, 1990.

11. 최윤환. [미사해설]. 서울 : 계성 출판사, 1990.

12. 최정호 편역. [세상의 미사]. 서울 : 계성 출판사, 1990.

13. 칼 라너. [일상]. 왜관 : 분도 출판사,

14. 클리포드 하우웰. S. J.. [진실한 응답]. 생활성서 편집부 역, 서울 : 생활 성서사, 1990.

15. 한국천주교 중앙 협의회. [주일미사경본]. 서울 :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16. 한영일. [미사통상문과 미사해설]. 부산 : , 1990.

 

 

☞ 간행물

 

◈ 경 향

1. 이인모. "전례해설". 91년 1월∼93년 5월.

 

◈ 생활 성서

1. 이성배 역. "주님 예배 1". 90년 5월.

2. 이성배 역. "주님 예배 2". 90년 6월.

3. 이성배 역. "하느님 말씀과 표지". 90년 7월.

4. 편집부. "미사때 사용하는 제대와 초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91년 10월.

5. 편집부. "사도신경은 어떤 기도인가?". 91년 9월.

6. 편집부. "알렐루야와 호산나의 뜻". 91년 8월.

7. 편집부. "왜 미사중 자세를 자주 바꾸는가?". 91년 7월호

 

◈ 전 망

1. 백 쁠라치도. "미사를 중심으로 한 전례". 63호.

2. 이홍기. "미사독서". 80호.

3. 이홍기. "미사 절차 개요". 86호.

4. 이홍기. "미사의 본질적 요소인 말씀의 전례". 76호.

5. 이홍기. "신자들의 기도". 78호.

6. 이홍기. "자비송과 대영광송". 97호.

7. 이홍기. "현행 미사전례의 역사적 배경과 전반적인 특징". 84호

 

전례헌장

입 문

역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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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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