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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말

 

성체성사는 교회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성사를 통해 지극히 숭고한 방식으로 당신 교회 안에 현존하신다. 성체성사는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며, 사제의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사 거행이라고 할 것이다(『본당 공동체의 목자이며 인도자인 사제』(이하 ‘본당사제’), 1항 참조).

 

그런데 오늘날 적지 않은 사제들에게 이 중요한 임무가 그야말로 하나의 성가신 일 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만일 어떤 사제가 그저 의무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미사를 매일 또는 자주 형식적으로, 심지어 해치우는 식으로 봉헌한다면, 그는 결국 사제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어떤 면에서 불행하다고 할 수도 있다. 어떻게 가장 기본적인 일을 소홀히 하면서 사제로 살 수 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사제생활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미사와 사제생활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사제의 신원과 임무

 

사제는 누구인가? 사제는 주교의 집전으로 하느님께 축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특별한 자격으로 참여하며, 성사 거행에서 그리스도의 봉사자로 행동하는 사람이다(사제 생활 교령, 5항 참조). 물론 사제의 신원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제는 우선적으로 미사를 드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제라는 말 자체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가? 미사의 본질도 무엇보다도 제사이므로 사제는 우선적으로 미사를 드리는 사람인 것이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2항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제의 신원과 임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곧 사제는 사제이시며 왕이신 스승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발탁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사제의 직무를 통하여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궁전으로 이 지상에 끊임없이 세워지고 있는데, 이러한 사제의 기본적이고도 가장 큰 임무가 미사 집전이며, 이를 통해 사제 임무가 최대한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사제들은 성찬의 예배 또는 집회에서 자기의 거룩한 임무를 최대한으로 수행한다.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고,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며, 신자들의 예물을 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제물과 결합시키고, 신약의 유일한 희생 제사를, 곧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깨끗한 제물로 성부께 단 한 번 바치신 희생 제사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서 재현하고 봉헌한다”(교회 헌장, 28항).

한마디로 성찬의 희생 제사로 ‘몸’의 건설을 완성하는 것이 사제의 임무인 것이다. 사제들은 신자 공동체에서 성품의 거룩한 힘으로 희생 제사를 봉헌하고 용서를 청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공적인 사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사제는 참으로 그가 지닌 거룩한 힘으로 사제다운 백성을 모으고 다스리며, 성찬의 희생 제사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거행하고 온 백성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한다(교회 헌장, 10항 참조).

교회는 성품성사를 받아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있는 사제를 통해 비로소 그리스도의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있다. 성품성사 덕분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사를 거행하고 자기 제사도 거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제는 자기 힘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in persona christi)’ 제사를 드린다. 사제가 미사 성제를 봉헌할 때에 비록 혼자서라도 그는 성품성사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는 사람이므로 또한 교회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본당사제, 6항 참조). 따라서 사제는 자기의 제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사와 교회의 제사를 드린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성사적 현존과 그분의 제사를 드러내고자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교회에 봉사하려고 파견된 사제는 성찬례를 집행함으로써 성체가 순수한 선물임을 드러내보이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힘으로 모였음을 보장해 준다. 이렇게 하여 사제는 미사를 드릴 때 그리스도를 나타내보이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미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청 성직자성의 훈령 『본당 공동체의 목자이며 인도자인 사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교회에서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인 사제는 본질적인 구원활동의 교역자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는 희생 제사의 능력과, 복음을 선포하는 권위, 성사적 용서를 통하여 죄악을 이기는 능력에 힘입어, 교회와 그가 맡은 본당 안에서 생명과 활력의 원천이 된다. 사제 자신이 이 영적 생명의 원천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느님의 모든 백성에게 그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분에게서 온다. 성령의 도유를 받은 사제는 성사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봉사자이다. 그 지성소는 십자가에 못 박혀(요한 19,31-37 참조)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구원의 원천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8항).

사제들의 신원과 임무가 그러하다면 사제생활의 목적은 무엇인가?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사제들이 그 교역과 생활로 추구하는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느님의 업적을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자유로이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온 삶으로 이를 드러내는 데 있다. 따라서 사제는 기도와 경배에 전념하며, 말씀을 선포하고, 성찬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며, 다른 성사들을 집전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그 밖의 교역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거룩한 삶에서 사람들을 진보시킨다”(사제 생활 교령, 2항).

 

 

2. 사제생활의 원천인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교회생활의 원천이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 헌장, 11항)으로서 그 안에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내포되어”(사제 생활 교령, 5항)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에 성찬례의 “놀라움”을 되살리고자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발표하였다. 교황은 여기서 성체성사를 파스카 신비의 뛰어난 성사이며, 교회생활의 중심이라고 강조하였다(3항 참조). 교회의 생명은 성체성사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것은 성체성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생명을 주시기 때문이다(6항 참조).

성체성사는 또한 사제생활의 원천이다. 교회생활의 원천이 성체성사이므로 사제생활의 원천도 당연히 성체성사인 것이다. 성체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자신의 거룩한 임무를 최대한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사제이므로 사제생활의 원천도 성체성사 안에 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사제의 손을 통하여 온 교회의 이름으로 성찬례 안에서 피 흘림 없이 완성되는 것으로, 사제는 복음 선포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서 그 힘과 가치를 길어올리는 것이다(사제 생활 교령, 2항 참조). 따라서 사제는 자신이 거행하는 성체성사에서 영적 보화를 얻으며 성체성사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자신이 수행하는 성무를 통해 완덕에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서 교회를 통하여 끊임없이 이루시려고 당신 교역자들을 통하여 일하시며, 언제나 교역자들에게 그 생활 통합의 원리와 원천이 되어주신다. 따라서 사제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자신을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자기 삶의 일치를 이룬다. 이렇게 착한 목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제들은 바로 목자다운 사랑의 실천에서 그 생활과 활동을 일치시켜 주는 사제적 완덕의 끈을 찾는다. 이 목자다운 사랑은 주로 성찬의 희생 제사에서 흘러나온다. 따라서 성찬례는 모든 사제생활의 중심이며 근원이다. 사제의 정신은 희생 제단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사제들 자신이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 속으로 언제나 더욱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사제 생활 교령, 14항).

 

 

3. 사제에게 필요한 성덕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제의 교역을 위하여 개인적 신심과 성체조배와 기도, 피정과 영성지도를 비롯한 영성생활을 강조한다.

“사제 교역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께 대한 개인 신심과 조배로 날마다 주 그리스도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기꺼이 영성 피정을 하며 영성 지도를 중시하여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특히 올바른 마음 기도와 자유로이 선택한 여러 기도문을 통하여 사제들은 진정한 경배 정신을 찾고 이를 하느님께 간청하여야 한다. 그 정신으로 사제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백성과 함께 신약의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와 자신을 밀접히 결합시켜, 하느님의 자녀로서 외칠 수 있다. ‘아빠, 아버지!’(로마 8,15)”(사제 생활 교령, 18항).

사제는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사람이므로 이러한 성덕은 사제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11월 23일 교황청 성직자성의 총회 연설을 통해 사제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제가 자신이 받은 은총에 합당하게 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면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아주 가까이하여야 합니다’(『현대의 사제 양성』, 26항). 비록 사제가 말하는 능력에서 비수품자보다 못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이 머리이시며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성사적으로 대신하는 그의 존재를 위축시키지는 못하며, 그의 설교의 효력은 사제의 정체성에서 나옵니다. 본당 공동체는 특히 성품 교역자가 말씀을 선포하는 가장 특별한 순간에 이러한 효력을 필요로 합니다”(본당사제, 4항).

『본당 공동체의 목자이며 인도자인 사제』 역시 사제는 “견고한 사제 영성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실제로 열성적인 교역도 얼마 가지 않아 아무런 예언자적 특성이 없는 공허한 활동으로 변질되기 쉽다. 분명히 사제의 내적 일치의 붕괴는 가장 먼저 그의 목자다운 사랑의 감소에서 온다.”(11항)라고 하면서, 목자다운 사랑을 성체성사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제 생활 교령’ 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이 목자다운 사랑은 주로 성찬의 희생 제사에서 흘러나온다. 따라서 성찬례는 모든 사제생활의 중심이며 근원이다. 사제의 정신은 희생 제단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사제들 자신이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 속으로 언제나 더욱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14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에서 성체조배는 일상의 중요한 신심 실천이 되고 무한한 성덕의 근원이 되었다면서 성체조배를 여러 번 강조하고, 아울러 일부 지역에서 이 관습이 사라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17항 참조).

“제대의 지극히 거룩한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그분께 조배 드리는 시간을 갖는 것은 목자로서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다. 공동체의 인도자인 모든 사제는 영적으로 메마르거나, 아무에게도 어느 것 하나 줄 수 없는 텅 빈 구멍이 되지 않도록, 이 일에 우선적으로 전념하여야 한다”(본당사제, 11항).

“사제에게 성찬례는 ‘사제직을 수행할 때나 영성생활을 할 때나 진정한 중심점’(『현대의 사제 양성』, 26항)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익은 성찬례에서 나오며, 성찬례는 그 자체로 모든 복음화의 원천이며 정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를 바치기 전에 합당한 준비를 하고, 날마다 희생 제사를 거행하며, 감사를 드리고, 하루 중 언제라도 거룩한 성체를 조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본당사제, 13항).

또한 사제는 자신의 기도생활로 성체성사를 통한 찬미와 감사의 행위를 계속한다. 성찬례를 거행하며 사제가 드리는 찬미와 감사는 성무일도를 통하여 하루의 여러 시간으로 퍼져나간다. 사제는 교회의 이름으로 성무일도를 바치고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백성을 위하여, 그리고 온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사제 생활 교령, 5항 참조). 이렇게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는 성덕의 증진을 위하여 늘 힘써야 한다는 것이 훈령 『본당 공동체의 목자이며 인도자인 사제』의 가르침이다.

“사제들에게 맡겨진 교역은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께 성사적으로 거룩하게 동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제들은 성덕을 쌓고자 더욱더 노력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사제가 부름 받은 성덕이 모든 신자가 세례성사를 통하여 부름 받은 성덕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은 아니다. 형태는 달라도 성덕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러나 사제가 성덕을 위하여 노력하게 되는 이유는 다르다. 곧 머리이시며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위격을 대신함으로써 구원활동의 살아있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인호를 새겨준 새 은총에 합당한 자가 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제는 ‘영원한 사제(sacerdos in aeternum)’로서 자신의 교역을 수행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줌으로써’(사제 생활 교령, 14항) 자신을 주님과 결합시켜 모든 일에서 주님의 모범을 따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본당사제, 10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사제 공동체의 거룩한 특성과 유기적 구조도 성사와 덕행을 통하여 현실화되는데(교회 헌장, 11항 참조), 사제는 무엇보다도 봉사정신으로 충만해야 한다. “사제직은 신자 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교역’, 곧 ‘봉사’이며 …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합당한 성찬의 희생제사를 드리고자 한다면, 우리의 모든 사제생활은 이러한 봉사정신으로 깊이 고취되어야 마땅하다”(본당사제, 7항).
봉사정신과 함께 친교의 정신 또한 사제에게 필요하다.

“당신의 신비체의 머리이시며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지도활동에 참여하는 사제는 사목 차원에서 모든 신자를 다스리고 섬기는 ‘친교의 인간’이 될 권한을 특별히 부여받았다. 사제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지체들 사이의 일치뿐만 아니라 지체들 상호 간의 일치를 증진하고 유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사제는 자신의 성소로써 이러한 두 가지 차원의 그리스도의 목자적 역할을(마태 20,28; 마르 10,45; 루가 22,27 참조) 일치시키고 거기에 이바지한다”(본당사제, 9항).

이렇게 사제는 미사를 드리는 사람으로서 성덕의 진보를 필요로 한다. 단순히 직무상으로만이 아니라, 사제가 거행하는 미사 자체가 사제의 성덕을 필요로 한다. 미사 거행이 사제의 성덕을 요구하는 것이며, 사제는 미사를 드리면서 성덕의 진보를 요구받는 것이다. 따라서 사제는 미사 거행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성덕에 진보할 충동을 더 받는 것이며, 반대로 미사 거행을 소홀히 할 때에는 성덕도 소홀히 하게 된다.

 

 

4. 사제를 통한 신자들의 영신적 제물의 완성

 

성사적으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는 사제는 홀로,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자들과 함께, 신자들을 위하여 미사를 드린다(교회 헌장, 10항 참조). 이 일을 위하여 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형제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제의 교역을 통하여 신자들의 신령한 제사는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결합되고 완성된다(사제 생활 교령, 2-3항 참조). 신자들은 사제들의 봉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영적 제사를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제사와 일치시켜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5항 참조).

사제들이 매일 집전하는 미사 성제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신자들 안에 현존하시고 본당 사목구를 진정한 신자 공동체가 되게 한다(본당사제, 2항 참조).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머리이시며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자기 안에 현존케 하기 위하여 직무 사제직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본당사제, 5항 참조).

“사제는 신자들에게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임을 일깨워주고 ‘신령한 제사를 드리게’(1베드 2,5 참조) 하며,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아버지께 드리는 영원한 선물이 되게 하십니다(1베드 3,18 참조). 공동체의 성사적 길잡이 사제가 대신하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없다면, 공동체는 완전한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본당사제, 6항).

성찬례 모임은 사제가 주재하는 신자 집회의 중심이다. 따라서 사제는 신자들이 미사의 희생 제사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신적 제물을 봉헌하고 또한 그 제물과 더불어 자기 삶을 바치도록 가르쳐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동체를 돌보는 것이 사제의 임무이며, “사제는 전례 집전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날로 더욱 완전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사제 생활 교령, 5항)라고 하면서, 공동체 정신을 기르는 교육은 미사를 거행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목자의 임무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는 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참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그 본래의 임무이다. …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성찬례 거행에 그 기초와 중심을 두지 않으면 결코 세워질 수 없으므로, 공동체 정신을 기르는 모든 교육은 성찬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사제 생활 교령, 6항).

사제의 미사 거행을 통해 신자들의 성덕도 진보하게 된다. 사제가 열심히 미사를 거행하면 할수록, 그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받는 은총도 더 클 것이다. 물론 성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은총의 기본적인 것은, 성사가 집전자의 성덕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진다는 이른바 ‘사효성(ex opere operato)’이다.

하지만 성체성사의 집전자인 사제가 이 사효성 교리에만 안주하여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는 미사 거행을 소홀히 하여서는 결코 안 된다. 물론 성사는 집전자의 성덕과는 상관없이 유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성사를 통해서 전달되는 은총의 정도까지 집전자의 성덕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제는 사효성보다 ‘인효성(ex opere operans)’에 치중해야 한다. 사제는 신자들의 인효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효성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사의 수령자인 신자들에게만 성사에 대한 열심한 준비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사제 자신이 열심한 준비로 성사 거행을 잘함으로써, 자신의 성사 집전을 통해 그 성사를 수령하는 신자들이 더 많은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효성 교리가 성사의 유효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전례양식문만 읽어 내려가는 형식적인 성사 거행을 통해 전달되는 은총과, 확고한 믿음 안에서 뜨거운 사랑과 간절한 소망으로 준비되고 진행되는 성사 거행이 전해주는 은총의 정도는 분명 다를 것이 아닌가!
미사는 사제 개인의 제사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잔치이다. 전례는 더 이상 사제 개인의 독점물이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사제는 평신도의 보편 사제직을 존중하면서 미사를 평신도와 함께 준비하고 거행하여야 할 것이다. 사제가 모든 달란트를 다 가질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여러 달란트를 가진 평신도들과 함께 미사를 준비하고 거행함으로써 미사는 그야말로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드러내는 공동체의 잔치가 되고, 그럼으로써 미사에 참여하는 사제와 신자 모두가 풍성한 영적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음악에 재능이 있는 신자들은 성가대 외에도 솔로로 노래를 한다든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이고, 연극에 재능이 있는 신자들은 연극으로, 미술에 재능이 있는 신자들은 그림 등으로, 문학에 재능이 있는 신자들은 시나 산문과 같은 글 등으로 미사와 관련하여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사진이나 슬라이드, 동영상, 꽃, 예술 작품 등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신자들도 있을 것이다.

 

 

5. 사제의 미사 집전

 

미사 집전은 사제에게 그저 채워야만 하는 의무 그 이상이다. 미사 집전은 그 미사에 참여하는 교우를 위해서도 그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 개인을 위해서도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미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제사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축성되고 나누어지는 거룩한 일이다. 신자들은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는 미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만난다. 미사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를 드리고, 은총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제의 미사 집전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 잘 만나고,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를 더 잘 드리고, 은총을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어야 한다. 사제들은 미사 집전을 열심히 준비하고 정성을 다하여 집전하며 신자들이 영적인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미사 집전은 단순히 전례양식문을 읽는 것만이어서는 안 된다. 사제는 시기와 축일 등에 따라, 그리고 그날 미사의 고유한 성격과 특성에 맞게 미사를 잘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시작부터 늘 똑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시작만이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신자들이 식상하지 않고 기쁘게, 또 그러면서도 경건하게 참여하도록 미사를 준비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사제의 몫인 것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말씀의 선포이다. 사제의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신자들에게 와 닿게 되는 것이므로 강론 준비부터 성실히 해야 한다. 사제는 먼저 자신이 선포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며, 열심한 묵상과 준비로 강론을 잘함으로써 자신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더 잘 선포되도록 해야 한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목말라하고 있다. 강론은 주일미사에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미사에서도 하도록 권장된다. 미사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강론 없는 미사는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강론은 그때그때 복음 내용에 따라서만이 아니라, 그날의 특성을 잘 살리고, 이왕이면 가럼し다해 전례주년에 맞게 전체적인 강론계획과 맥락에서 해야 할 것이다. 이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에서 간행한 「주일과 축일 강론 계획」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매일미사이다. 근래에 사제들이 몇몇 평일미사를 없애거나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미사를 생략하는 등 매일미사를 소홀히 함은 심히 유감스럽고 염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회는 2003년 9월 20일에 발표한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라는 제목의 권고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사제들의 매일미사와 신자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적 미사를 강조하고 있다.

“성체성사는 사제 직무의 출발이자 목표이고, 성찬례 거행은 사제의 주된 임무입니다. 성찬례는 인간을 섬기고 인류 구원에 이바지하는 사제 직무의 중심이며 정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매일미사 거행을 소홀히 하거나, 전례 규정을 소홀히 하는 경향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교회 전례의 정점인 미사 거행은 바로 ‘교회’ 공동체의 행위이므로, 부득이한 경우에 사제 혼자서도 미사를 드릴 수 있지만, 사제는 날마다 공동체와 함께 미사를 거행하여야 합니다.

본당 사제들은 성찬의 희생 제사 거행이 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 전체의 중심이 되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신자들은 날마다 특히 주님의 날인 주일에 성찬례, 곧 미사 성제에 참여하여 새 힘을 얻고 무한한 은총을 받으며, 신자생활의 중심이 바로 성체성사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미 『미사 전례서 총지침』이 강조한 사항이기도 하다.

“신자들이 함께 능동적으로 전례행위에 참여할 때 그 거행이 지닌 교회적 본성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신자들의 현존과 참여가 보장되지 못한 경우에도 성찬 거행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로서 여전히 효력과 중요성을 지닌다. 사제는 성찬 거행에서 자신에게 고유한 제일의 임무를 수행하며 또한 항상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성찬례를 거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제들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매일 성찬 제사를 거행할 것이 권장된다”(19항).

“여러분의 게으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이냐시오 성인에게 한 말이다. 사제는 이 말씀을 깊이 새기며 살아야 한다. 자신의 게으름으로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거나 하느님과의 만남을 소홀히 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미사 성제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일차적으로 사제를 통해 신자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므로, 사제는 사제로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여 신자들과 하느님과의 만남을 도와야 한다.

 

 

6. 사제와 마리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청 성직자성 총회 연설에서 사제들이 성모 마리아와 친교를 이루며 성찬례를 거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저는 모든 사제가 날마다 사목활동에서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의 도움에 의지하고, 성모님과 깊은 친교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1979년 ‘성 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썼듯이 사제들은 직무 사제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어머니와 놀랍고도 깊은 친교를 이룹니다”(11항). 친애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우리가 거룩한 미사를 거행할 때에 구세주의 어머니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이신 당신 아드님을 봉헌하는 구원의 신비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Ad Jesum per Mariam).” 이 말씀이 우리의 영성생활과 사목생활의 일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본당사제, 6항).

사제는 영원하신 대사제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구원을 위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복되신 동정 성모님과 사제의 관계는 보호와 도움의 필요성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모님의 현존’ 곧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살아가도록 하는 효과적인 현존’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에 더욱 바탕을 두고 있다”(본당사제, 8항). 마리아께서는 사제가 드리는 미사에 함께하시어 사제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얻어주신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구세주와 결합되어 그 신비를 파고들며 우리를 도와주시러 오신다. ‘우리가 거룩한 미사를 거행할 때,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아드님의 구원의 희생 제사의 신비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모님께서는 이 희생 제사에서 흘러나와 교회와 모든 신자에게로 전해지는 모든 은총의 중개자이시다’(요한 바오로 2세, 쳉스토호바의 성모 기념일 때 한 인사).

실제로 ‘성모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그리스도의 뜻을 함께 나누심으로써 유일하게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동참하셨다. 성모님께서는 ‘사제이며 제물(Sacerdos et Hostia)’이신 그리스도의 봉헌에 함께하신 최초의 완전한 영적 동반자이시다. 그러므로 성모님께서는 교역자로서 당신 아드님의 사제직에 동참하는 사제들에게 사제직이 요구하는 영적 희생의 요구에 더욱 부합하는 은총을 얻어주실 수 있다. 특히 성모님께서는 구원의 희생 제사에 더욱 헌신적으로 참여하도록 고무하는 시련들 앞에서 믿음과 바람과 인내의 은총을 얻어주실 수 있다”(본당사제, 13항).

 

 

나오는 말

 

사제는 일차적으로 미사를 드리는 사람이다. 미사를 드리는 일은 사제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이는 사제 개인의 일일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제는 그저 자신의 의무를 채운다는 마음보다는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해야 할 것이며,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신자들과 함께 공동체의 잔치가 되도록 준비하고 거행해야 할 것이다.
미사에서는 성찬 전례 못지않게 말씀 전례도 중요하니 사제는 무엇보다 강론 준비를 성심껏 해야 하며, 성찬 전례 안에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미사를 드린다면 사제 자신의 성덕의 진보는 물론이요 신자들의 영적 진보도 도와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고해성사의 성실한 집전이다. 사제가 고해성사를 성심껏 거행하는 것은 바로 신자들의 열심한 미사 참례를 위하여 참으로 중요하다.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의 내적 준비의 정도에 따라 성체성사를 통해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결실도 다를 것이므로, 사제가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데 성심을 다하는 자세 그 자체가 미사를 위한 중요한 준비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고해성사는 미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가능하면 미사 전에, 필요에 따라서는 미사 후에도 사제는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신자들의 성화는 물론이고 사제 자신의 성화를 위해서도 유익한 것이 고해성사이다.

사제가 거행하는 미사를 통해 신자들은 하느님을 만난다. 신자들이 미사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데는 온전히 신자들의 준비와 참례 자세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사제의 역할에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의 장은 얼마든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사제는 미사를 드릴 때 사제이다. 미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미사를 거행할 자격이 있기 때문에 사제가 아니라, 미사를 거행하기 때문에 사제이고, 미사를 드릴 때 사제이다. 또한 사제는 미사를 드리면서 더 사제답게 된다. 사제는 미사를 드리면서 참 사제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제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서이다. 사제가 드리는 미사는 인간의 제사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제사이다. 그러므로 사제는 이러한 숭고한 일을 수행하는 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 조 현 권(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 / 사목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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