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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의 사도 성 바오로

 

 

 * 5-10년경 길리기아의 다르소 에서 출생

  * 18-22년경 히브리 교육받기 위해 예루살렘 유학

 * 광신적 유다인으로 그리스도교 박해

 * 36년경 다마스커스에서 그리스도 만남과 체험

 * 45-58년 예루살렘에서 체포됨

 * 67년 로마에서 순교

다르소의 사울과 사도 바오로는 그 성품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같은 특징을 지니었다. 정열적이었으며 다혈질적이던 그는 유다교를 신봉하던 바리사이파 사람이었을 때나 사도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때나 자신의 삶과 본분에 남달리 적극적이고 철저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할 만큼 조상들의 종교에 충실했던 사울이 어떠한 계기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은총을 받았으며 어떻게 생활했고 사도직을 수행했는지 그리고 그 당시를 비롯하여 교회 역사 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1. 생 애

 

사울이라고도 불리는 바오로는 히브리 전통을 충실히 고수하던 벤야민 지파의 유다인 집안 출신으로서(필립3,5-6참조)5-10년경 길리기아의 다르소(지금의 터키 동남부 지역)에서 태어났다(사도21,39참조).그는 태어날 때부터 부친의 상속으로 로마 시민권을 지니게 되었는데(사도16,37-39 ; 22,25-29참조),그것은 훗날 선교 활동하는 데 유용한 것이었으며 특히 로마 황제에게 직접 상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했다(사도25,1-12참조).

가죽 다루고 천막 짜는 기술 지녀

그는 당대에 명성 높던 랍비 가브리엘 1세 문하에서 히브리 교육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유학했다(사도 22,3참조).그곳에서 성서에 관한 정규 교육과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였고 바리사이파 교육방침에 따라 토라를 철저히 익혔다. 또한 랍비 관습을 쫓아 그는 육체 노동을 배워 실천하였다. 가죽 다루는 기술을 포함한 천막 짜는 기술을 배웠다(사도18,3참조).그는 사도로서 당연한 보수를 받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신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몸소 일하여 필요한 것을 마련하였다(사도20,34 ;1 고린 9,7-15 ; 2 고린 12,13 참조).

 

"그리스도교, 아예 없애겠다"

 

예수님의 생애 동안 바오로가 그분을 직접 상봉했다는 역사적 흔적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사도행전은 그가 그리스도교와 첫 대면하던 장면을 예루살렘에서 스테파노가 순교하던 때로 기록하고 있다(사도7,54-8,1참조).그가 당시에 얼마나 광신적 유다교인이었으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자였는지 스스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습니다.아니,아예 없애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갈라1,13).그의 박해 활동은 다마스커스 까지 확장되어 갔다.그가 그곳에가까이 이르렀을 때 일생 최대의 사건이 일어났다.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체험한 것이다. 그는 그 계기로 "그리스도께 사로잡힌"(필립3,12)사람이 되었으며 다음과 같이 선언할 만큼 전혀 다른 인생관, 신앙관을 갖게 되었다.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애물로 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애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필립3,7-8).

 

그를 사로잡은 것은 위로부터 내리친 어떤 위협적 위력, 번개처럼 그를 땅에 내동댕이친 그런 물리적 힘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사랑,형언할수 없는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의 발견이었다. 결국 박해자가 박해받는 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그사랑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려 하면서(1고린9,19-23참조)만민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독실한 구성원의 하나였으며 모세의 율법학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던 그가 이제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구원하고자 앞장서는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이다.

유다인들로부터의 박해와 천대받음, 이방인들로부터의 냉대, 그리스도인들로부터의 오해받음 그리고 인간적 나약성은 바오로가 매일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되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살아 계시고 희망과 용기를 주셨기에 자신의 사도직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성숙해 나갈 수 있었다.

 

아라비아 사막서 은수생활

 

바오로가 부르심을 받은 때(사도9,1-9; 갈라1,15-16참조)부터 제 1차 전도 여행(사도13,4; 필립4,15참조)을 떠나기까지 10년이란 기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그의 서간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학자들은 바오로가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 3년 정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은거하며 엄격한 기도생활을 한 것으로 본다. 아무튼 그는 긴 세월 동안 침묵과 기도 중에 하느님께서 자신을 불러 주신 사명에 응답하고자 준비하며 수련과정을 지낸 것임에 틀림없다. 하느님이 그분의 특별한 일꾼으로 키우신 훈련의 기간이었을 것이다. 이 침묵의 기간은 영적으로 성숙하고 이방인의 사도로 양성되던 은총의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가 더욱 주님과 친교를 맺으면서 성화 되고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수행해야 할 사도직 활동의 본질과 목적을 분명하게 깨닫고 사도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 오늘의 신학교 과정 같은 상당한 양성기간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이 기간에 바오로는 몇 몇 교회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데 그중 그에게 특별한 곳은 안티오키아 공동체이다.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바오로의 선교 수업과 활동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라르나바는 사울을 찾아 다르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데리고왔다.(사도11,25-26).
 

성령 안에서 친교 공동체 체험

 

당시 안티오키아는 선교의 중심지였으며 바오로가 그리스도교 전례와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곳이었고 그가 선교 여행을 시작하여 다시 돌아 온 그에게 신앙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공동체였다. 바오로는 그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역사 하심과 신자 상호간 일치와 협력 중에 친교의 공동체의 삶을 처음으로 경험하며 복음 선교의 영성을 갖추어 나갈 수 있었다. 그는 세 차례의 선교 여행에서 온갖 곤경과 여러 차례의 죽음의 위기를 겪었으나 '이방인의 사도'라 불릴 만큼 성령이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그는 정신적 고향 예루살렘에서부터 지중해 연안 주요 도시들과 그 주변을 돌아서 영원한 도시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증거 하였던 것이다.

 

지중해 전역 3차 선교 여행하며 복음선포

 

바오로의 일차 선교 여행(45~49년)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교회로부터 파견을 받아 키프로스로 떠나면서 시작되는데 아나톨리아중남부 주요 도시들을 거쳐 리가오니아, 리스트라, 데르베 등지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안티오키아로 돌아 왔다. 복음을 선포하는 바오로의 고유 방식은 당시 의 큰 도시들을 먼저 선정했고 선교 대상은 우선적으로 가난한 이들이었고

그 다음엔 지성인들 그리고 이어서 중산층의 사람들 순이었다.

 

데살로니카서 · 갈라디아서와 감옥서 필립비 · 필레몬서 작성

 

두 번째 선교 여행은 50-53년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바오로는 실라와 함께 안티오키아를 떠나 육로로 리스트라를 거쳐 프리기아,갈라디아,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에 도달했다. 거기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면서 시모그라게 섬을 거치고 네아폴리스,필립비,암피볼리스,아폴로니아,데살로니카,베레아를 다녀서 아테네에 도착했다.유명한 아레오파고 설교가 그때에 이루어졌던 것이다(사도17,16-34참조).

 

바오로는 고린토로 가서 일년 반 가량 체류하며 교회를 세웠고 거기서 데살로니카 1서를 썼다. 그리고 거기를 떠나 에페소에 들려 예루살렘까지 갔다가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그는 안티오키아에 얼마간 머물다가 마지막 선교여행(53~58년)을 떠났다. 갈라디아와 프리기아를 거쳐서 에페소에 도착했고 거기에서 두해 이상 머물렀다. 그는 디란노 학원에서 날마다 토론을 벌였는데 많은사람들이 그 기회에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사도19,9참조).에페소에서 바오로는 고린토 교회와 자주 서신을 주고 받았으며 두 차례나 그공동체를 다녀왔다. 에페소에서 그는 갈라디아서를 썼으며 적대적인 사람들로부터 곤경을 겪었고 옥살이를 해야했는데 감옥에서 필립비서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썼다.

 

그리스에서 로마서 집필

 

그후 마케도니아를 거쳐 그리스도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로마서를 집필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떠나 여러 도시들과 섬들을 거쳐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예루살렘에서 바오로는 일부 유다인들이 소란을 일으키고 그를 고발하여 로마군 파견대장에게 체포되었으며 로마로 압송되었다.로마에 도착한 바오로는 연금 장소로 정해진 집에서 그를 지키는 군인들과 두 해를 보냈다. 연금 생활이 끝난 때는 네로 황제 치하의 63년경으로 추정되며 67년에 바오로는 순교하였다.

 

 

2. 선교 영성

 

하느님은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직에 바오로를 직접 부르셨다(갈라1,15-16;사도22,21참조).그리고 바오로는 언제나 그 사도직의 소명의식에 철저했으며 실로 사명 수행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면서 일생을 마쳤다.한편 그에 앞서 하느님은 도구로 쓰실 그에게 요청되는 적성을 미리 태워주셨고 또한 맞갖은 자질을 키워주셨다.

 

"은총은 본성 파괴 않고 완성시킨다"적용돼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아니하고 완성시킨다는 원리는 바오로 사도의 영성 여정에서 볼 때 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실로 은총은 그의 천부적 능력, 성향 ,기질 그리고 감성을 희생시키지 아니 하면서 잘못된 부분은 지배하고 예속시키며 좋은 것은 고무하고 거양하여 발전시켰다.바오로의 총체적 인간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천부적 재능, 기질과 함께 은총의 생활 (성성)로 높여질수 있었던 것이다. 미지근한 중도적입장을 싫어하는 다혈질적이며 불 같은 성격을 타고난 바오로가 유다교인이었을 때 광신적 바리사이파 사람으로 활동한 것이 조금도 이상한 것일수 없었듯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면서 이번에는 어떠한 역경이나 박해 그리고 죽음의 위협도 결코 그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고 외치는(로마8,35-39참조) 열정적 사도가 된 것도 그의 성품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는 하느님은 빗나간 방향에서 저항하던 바오로의 본성적 재능과 기질을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은총의 선물로 전환시켜 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철저히 대적하던 박해 자에서, 그리스도를 극진히 섬기며 그분의 복음 선포에 모든 정력을 바치는 충직한 기사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성령 원하시는 대로 활동

 

바오로는 우선 그러한 기질 성품상 이방인의 사도로 적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전진하는 성격이었으므로 보수적인 성향을 띤 예루살렘 모교 회나 그 주변에 안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그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그분을 내어주시는 '아버지'시라는 진리를 확신하였기에, 모든 이방인들이 성서의 하느님, 은총의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필요성을 민감하게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 (1고린 10,23참조)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그는 교회의 건설(1고린3,1-17참조)과 공동 유익을 위해(1고린12,7참조)"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1고린 12,11)베풀어주시는 카리스마들 중 무엇보다도 복음전파, 특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전파가 그의 몫임을 절감했던 것이다(갈라1,15-16참조).

 

성서교육과정 이수가 선교활동의 기초돼

 

또한 그의 성장과정의 문화 배경과 교육 여건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 자질의 기초를 닦고 갖추도록 하였다. 그는 그리스 디아스포라 다르소 에서 태어나 당시 주변의 지배적 상황인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면서 성장하였던 것이다. 그의 서간에서 그 문화의 요소들이 자주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하느님께 관한 자연적 지식과 깨달음 (로마1,19-20참조),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수사학적 언변 (로마2,27-3,8참조),인간학적 어휘들의 구사(2고린 4,16-5,9참조),경기장의 시합에 관한 지식(1고린9,24-27참조),양심에 대한 개념(로마 2,15;13;5참조)등이 그것이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에 유학을 가서 히브리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특히 정기 성서교육 과정을 이수하면서 상당한 성서지식을 습득했다. 이것은 그의 미래의 선교활동을 위해서 가장 유익한 기본적 갖춤이 되었다.

 

이방인 선교에 막강한 영향

 

어느 누구도 이방인을 위한 초창기 선교에서 바오로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없다. 바오로의 활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유다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응용했으며 거기에 적절한 결론들을 이끌어내 그에 기초한 교회공동체들을 세웠고 또한 그 공동체들을 이끌어 갈 지도자들을 육성했다.

 

다마스커스서 그리스도체험, 변화정점

 

다마스커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극적인 만남은 은총으로서 그의 개인적 변화의 정점이었지만, 초대 교회 역사에 그리고 세상 마치는 날까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전환점을 이루게 했다. 바오로는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이방인의 사도로 불렸음을 여러 차례 표현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나기 전에 이미 은총으로 나를 택하셔서 불러주셨고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시려고 기꺼이 그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갈라1,15-16)"내가 은총으로 사도직을 받은 것도 그분을 통해서였습니다"(로마1,5)"그때 주께서 '나는 너를 멀리 이방인들에게 보낼 터이니 어서 가거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사도22,21)

 

이러한 이류로 바오로는 자신이 '사도'(apostolus)라고 호칭되어야함을 강력히 주장하며 열두 사도들에게 유보된 채 통용되던 사도직 사명에 관한 신학적 체계에 이의를 제기했다(1고린15,9-11참조).이같이 자기의 입장과 이방인들에게 설교하는 합법적 권리 및 자유를 변호하던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두 번이나 사도들을 만나 결국 그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갈라1,18선교지 선택;2,9참조).

 

성령께서 선교지 선택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다마스커스 사건 이후부터 본격적인 선교 활동 전까지인 아라비아 사막의 은거생활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본인의 서간에서 직접 술회한다(갈라1,17-18참조).학자들은 그가 그곳에서 은거한 기간을 약 3년 정도로 본다. 고독하게 은거하던 그 시간들은 그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한 은총의 때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친교를 나누고 두터운 우의를 키우면서 성령께로부터 주님의 사도로 양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오로는 자신을 가르친 교사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밝힌다(갈라1,11-12참조). 그는 선교활동 장소를 옮기는 것이나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이끌어 주셨으며 그 인도하심을 따라 활동하였다(사도16,6-8참조).그리고 사도직을 수행할 즈음,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도록 일깨운 것도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그러므로 그의 선교활동은 기도와 통합되어 하나의 실재가 되면서 성령께서 결실을 이루시도록 하였다.

 

바오로가 복음선포 사도직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엿볼 수 .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9,16).

 

온갖 고통들을 예수께 선물로

 

그의 선교 여행은 순탄하거나 환대 받는 평화로운 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시련, 장애, 박대, 박해가 가로놓인 고통의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많은 모욕과 반대, 적대, 배신을 받았으며 여러 질병에 시달리기도 했고 옥살이, 매맞음, 항해, 중 폭풍으로 인한 죽음의 위기 등을 수없이 겪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로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사랑하는 그리스도께 선물로 바쳤다. 바오로는 다음과 같은 불가분의 두 진리를 사명 수행의 기본 척도로 삼았다. 하나는 그에게 선교사명을 맡기신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요한15,5).다른 하나는 체험을 통한 그의 신념 고백에서 나타난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필립4,13).

 

이것은 그가 주임의 일꾼으로서의 부당함과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로서의 위대함을 동시에 느끼는 이중적 자기의식이었다. 즉 아무 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것은 바오로가 기도와 사도직 활동 안에서 값진 체험으로 얻은 은총의 결실이었다. 그것은 바로 바오로의 사도직 영성의 기초이며 핵심이었다.

 

 

3. 사도적 기도

 

자신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 복음 전파라고 확신하며 온통 투신하던 바오로의 신념과 용기 그리고 열성은 기도를 통해 받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했다. 바오로의 기도의 특성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당연히 사도적 특성이다. 그는 기도가 사도적 과업의 필수 요건일 뿐 아니라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바오로는 사도직 생활의 한 걸음 한 걸음을 하느님의 역사 하심이라고 판단했으며(에페2,10참조)하느님의 현존과 배려 그리고 인도해 주심이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불가분의 것이라고 생각했다(필립1,6;1고린 3;6로마8,31참조).인간사에 으레 따르게 마련인 현세적 곤경과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전력 투구로서 신념 있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였다. 바오로의 기도는 실생활과 사도직 활동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의 기도는 자신의 온 인격과 사명 전체를 걸고 성심 성의껏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오로는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가 복음을 전해주고 신앙을 키워준 이들, 자신이 세운 교회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 그리고 아직 하느님의 신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모두를 기도지향의 대상으로 삼았다. 다른 한편 그는 자신의 선교 활동을 위하여 그리고 신자 공동체들의 복음화와 성장을 위하여 신자들의 적극적인 기도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신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

 

바오로의 사도적 기도의 내용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여러 공동체의 신자들을 위한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보편성을 띤 기도이며 또 하나는 신자 공동체의 기도협력 청원이다.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흔히 그 서두를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는데 ,거기엔 그들을 위해 축복과 은총을 비는 청원기도가 포함된다.

 

바오로는 그가 선교하여 교회를 세운 데살로니카의 방문 계펂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한다(1데살3,10-11참조).바오로는 또한 로마 공동체 신자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며 주님의 축복을 빌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전한다(로마1,9-10참조).그가 신자공동체를 방문하는 목적은 영적인 기쁨을 나누고 힘을 북돋아 주고자 하는 것이다."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 주려는 것입니다"(로마1,11).

 

감옥에 갇혀서도 신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

 

바오로는 신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그들이 합당히 응답하게 해 주길 빌며, 믿음의 행실을 하느님의 능력으로 완성해 주시어 주 예수님의 이름이 그들에게 영광을 받고 그들도 주님에게서 영광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실행하는 것이다(2데살1,11-12참조)

 

그는 감옥에 갇혀서도 신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는 필립비의 신자들에게 이렇게 썼다.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필립1,3-4)

 

바오로는 여러 편지에서 신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다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분명히 밝혔다. 그는 신자들이 어떠한 곤경이나 역경 중에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의 일치 안에서 성장하도록 권고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빈다. 그의 이러한 사도적 기도는 사목자나 선교의 본분을 수행하는 이들의 훌륭한 귀감이다.

 

구원의 보편성은 바오로의 사상 및 영성의 특성이다.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다마스커스에서 모든 민족의 사도로 불렸으며 그 사명을 위촉받았던 것이다(갈라1,15-16;사도22,21참조).그러므로 그의 기도 또한 보편성을 띠며 어느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다. 모든 이의 구원을 지향하는 보편성의 기도는 신앙으로 결속된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포함하여 바치는 기원인 것이다.

 

언어 · 종족 · 가까운 이 · 적대자 막론기도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표현한다."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와 기원과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 권하는 바입니다"(1디모2,1).

여기에 바오로 사상의 특유한 면모가 나타나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 계펂에 들어있어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느님 뜻의 심오한 신비를 깨닫고서 개개인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자 열망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언어와 종족, 가까운이나 적대자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이를 위하여 간구하고 감사기도를 드리라고 권면한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모든 신자들을 당신의 구원 사업의 협조자로 부르셨기 때문인 것이다.

 

정치 · 지역 · 지도자 위해 기도당부

 

바오로는 또한 국가와 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위정자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길 당부했다."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오. 그래야 우리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아주 경건하고도 근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1디모2,2).기도의 목적은 그들이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사회의 질서와 평화 발전을 위해 기여하여 백성이 평온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바오로는 신자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기도가 자신의 사도직을 위해 절실히 필요함을 느껴 지원을 요청한다. 그리고 다른 교회 공동체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한 기도는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받는 방법일 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사도와 신자들 그리고 신자들 및 공동체 상호간의 친교와 선교의 사명을 고취시키고 복음화 활동을 촉진시키는데 효율적인 것이었다.

 

"말씀 빨리 멀리 전파되길" 기도 요청

 

바오로가 신자들에게 요청하는 기도의 지향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말씀이 빨리 그리고 멀리 전파될 수 있기 위하여 그리고 그 말씀 전파사명이 방해받지 않고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는 것이다(2데살3,1-2;골로4,2-4;로마 15,30-32참조).

 

주님으로부터 사도직을 위탁받은 바오로였지만 그의 사명 수행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신자들의 기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편지 여러 곳에서 자주 표현되어 있다(2고린1,11;에페6,19;1데살5,25참조).

 

사도적 기도의 결실을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바오로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과 은총의 결실이며 다른 하나는 신자 공동체들에 이루어지는 영향과 은총의 결실이다.

사도적 기도가 바오로에게 어떠한 영향과 결실을 이루었을까?

 

바오로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과 은총의 결실

 

1) 기도는 영적 인간으로서, 사도로서 성숙하도록 하였다.

그는 기도하면서, 성령의 비추심과 영감을 받아가면서 나아가야 할 길을 분별하고 결정할 수 있는 식별과 지혜의 은총을 얻었다. 그는 어떤 활동을 전개하기에 앞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서 식별하는 자세로 그것을 검토하고 계획하며 결정하였던 것이다.

 

2) 기도는 바오로의 사도직 활동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선교 여행 중 부딪치는 온갖 장애와 곤란 그리고 위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리고 복음선포의 열의와 사목적 사랑을 끊임없이 새로이 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시는 힘, 용기의 은총을 필요로 했다. 그의 선교 여행은 순탄하거나 환대 받는 평화로운 여건이 아니었다. 그의 꾸준한 기도와 신자들로부터 받은 기도의 지원은 그의 사도적 소명의 확산과 사명수행을 위한 용기의 은총을 받도록 한 방편이었으며 기회였다.

3) 교회의 신비체 안에서 신자들의 기도의 지원은 바오로 자신의 사도직 수행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주님의 은총을 받도록 한다고 확신했으며 또한 그렇게 체험했다.

 

사도적 기도를 통해 신자 공동체가 받은 영향과 결실은 무엇일까?

 

1) 신자들은 사도직 활동에 직ㅑ간접으로 돕는 것이 본분임을 알게 되었다.

바오로는 신자들을 위해 그리고 선교의 대상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한편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기도를 통해 그의 사도직에 협력해야 함을 가르친다(2고린1,11참조). 신자들의 그러한 협력은 그들의 의무이고 과제임을 일깨워 주고자 했던 것이다. 사도직 수행에 직ㅑ간접적 협력활동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2) 기도의 지원은 신자 공동체에 유익을 가져다주었다.

바오로는 사도직 수행을 위해 지원하는 신자들의 기도가 그들 자신들을 위해 유익하다고 믿었다. 기도를 통해서 공동체의 신자들이 일치와 친교를 긴밀히 이룰 수 있고 또한 사도적 공동 책임의식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바오로는 기도의 통교로써 흩어져 있던 교회 공동체의 신자들과 긴밀한 유대를 이루며 박해와 곤경 속에서도 그들이 일치하여 사도직을 수행하고 협력할 수 있는 은총을 받도록 했던 것이다.

 

 

4.그리스도인 완성으로서 성성

 

바오로는 인간의 의화와 성화가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인한 율법이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임을 자주 강조한다.

실로 성성(성덕)은 그리스도인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선물이며 단순한 피조물인 인간을 천상적 존재로 들어 높이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 은총이다. 본래 하느님만이 거룩하시지만, 그분과의 관계에서 비로서 피조물은 거룩해질 수 있다."거룩하신 분"(사도3,14;묵시3,7)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을 믿는 이들과 성성을 나누며 그들을 성화 시키신다. 한편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세례성사를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1고린 1,30;6,11참조).이런 의미에서 바오로는 자주 그리스도인을 곧장 '성인'(성도)이라 지칭한다(2고린1,1-2;히브3,1;필립1,1;에페5,3등 참조).

 

이같이 그리스도인이 새로 태어나면서 무상적 선물로 받는 은총의 상태를'존재론적 성성'이라 한다. 이러한 성성 단계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베푸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고 협력하면서 구체적인 선행을 통해 더 높은 단계의 성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바오로는 더 큰 은총의 선물을 받기 위한 인간편의 협력으로서 체계적이고 항구한 노력을 제외시키거나 경시하지 않는다. 한편 은총은 그러한 노력을 가능하게 해준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필립2,12-13)

 

마음 일으켜주고 힘 주시는 분은 하느님

 

그는 또 이렇게 가르친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인처럼 살지 마십시오...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에페4,17,22-24).

 

이로 인해 성성은 이제 개별적인 것이며 은총에 대한 각자의 생활 자세에 따라 다른 성격을 나타내게 된다. 이를 일컬어 학자들은'윤리적 성성'이라 한다. 각자는 은총의 수용, 그리스도와의 일치, 사랑 및 수덕실천의 개별적 역량에 따라 하느님과의 친밀도, 곧 성화의 성숙도를 다르게 이룰 수 있게 된다.

 

"모든 신자가 끊임없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완덕"

 

성화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끊임없이 성장하면서 지향해야 할 목표는 완성적 성성 즉, 완덕이다. 바오로는 완성을 향해 전진하는 자신의 자세를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생활의 충만함, 성성의 높은 발전도를 지칭하기 위하여'완전한','완성'이란 용어를 쓴다. "나는 이 희망을 다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다만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필립3,12-15).

 

성령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위탁하며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종이 된(로마6,18-22참조)그리스도인은 성령을 통하여 끊임없이 하느님께 적극적으로 위탁하며 나아가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노력을 바오로는 운동선수의 신체단련과 연관시켜 수덕의 영성을 전개한다. "나는 내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고린9,27).그리고 그는 이러한 수덕의 자세를 경기장에서 우승하려는 운동선수의 훈련에 비교하여 설명한다."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1고린9,24-25).

 

인간은 충만한 자기 완성을 하늘 나라에서 얻게 되는데 거기서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그분의 진선미를 영원히 소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 여정 중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완성은 상대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인간이 은총에 협력하며 사랑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지만 이 세상에선 은총에 대해 인간의 응답이 한계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오로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뿐이지만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1고린 13,12).

 

 

5. 영성사 안에서의 위치

 

1) 첫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가 기록되었을 무렵 (약70년경)은 바오로가 쓴 서간들이 널리 알려진 다음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관하여 최초로 글을 써서 파급한 이가 바오로인 셈이다. 다양한 교회 공동체들의 생활 현장에서 깊이 개입하고 체험한 그는 그 현장을 직접 현실감 있게 문제점들과 더불어 우리에게 증언해 준다. 복음사가들이 예수님의 역사적 과거 사실을 증언하는 데 비해 바오로는 새로 세워진 교회들 안에서 신령한 방법으로 현존하시면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즉 그는 복음사가들과 달리 성령을 통해 활동하시는'교회의 예수님'을 증거 한다. 달리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고 희망의 대상으로서, 신앙의 예수님을 보여준다.

 

"영성은 '성삼위의 친교에 참여하는 것'이고 영성생활이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성삼위의 신비로운 삶을 사는 것"

 

2) 오늘날 영성 신학에서 '영성'은 '성삼위의 친교에 참여하는 것'이고, '영성생활'이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성삼위의 신비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의 골격을 처음으로 형성한 이가 바오로이다. "이방인 여러분과 우리 유다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에페2,18)."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2고린 13,13).

 

3) 우리는 바오로 안에서 다른 어느 그리스도인에게서 찾을 수 없는 뛰어난 창의성을 보게 된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복음적 토대를 다양한 인간 환경 및 교회의 여건에 따른 문화와 생활에의 구체적 정황에 접합시킬 줄 알았다. 그는 유다 문화도 그리스 문화도 배격하지 않으면서 그에 적응하고 복음을 토착화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의 신학과 영성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 작업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인 생활에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생동감 있는 답변이었다.

 

4) 바오로는 자주 '낡은 인간'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새로운 인간'을 대칭시키면서 그의 가르침을 전개해 가는데 이것이 그의 영성의 주요 기반이다.

이 세상의 타락은 역사 안에 죄를 일으킨 아담의 첫 범죄에서 그 근원을 갖는다(로마5,18)

 

악의 힘은 모든 이에게 죽음의 왕국을 펼친다(로마5,17참조).한편 생명의 원리와 근원은 새 아담, 부활한 그리스도이시다(1고린15,22참조).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 인간 안에 성령의 현존은 그리스도와 존재론적 친밀 관계를 이루도록 한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고 그분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새로운 창조물이 되며 새 사람이 된다. 이 새 사람은 그리스도를 입고 쇄신되어 그리스도의 삶을 함께 살고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신비 체의 부분을 이룬다.

바오로의 서간에 자주 쓰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생활의 친밀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분과 일치 중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부터 마음에 부어진 애덕으로 인해 사랑해야 할 (로마5,5참조)형제들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그 애덕은 성령의 첫 결실이며 모든 카리스마 중 첫째(1고린13,13참조)이다.

5) 바오로는 희랍적 이원론이나 영지주의의 이원론과 달리, 구약성서와 유다교적 사고에 따라 인간을 전체적으로 본다.

 

영 ·육 구분 않고 인간을 전체로 봐

 

바오로에 의하면 '육'(flesh)은 영혼(soul)에 대칭되는 몸이 아니다. '육'이란 말은 '영'(spirit),'그리스도의 영', 하느님의 영'에 정반대되는 것으로서, 살아 있는 몸이 아니라 생명의 숨결을 빼앗긴 존재로서 시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선택된다. 그것은 하느님과 원수지게 하는 그 무엇을 가리키고자 한다(로마8,7-8참조).

 

바오로는 영혼과 몸을 이분(二分)하는 희랍적 이원론 사고에는 관심이 없다. 유다교적인 사고의 사실주의에 충실했던 그는 언제나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았다. 그에게 인간의 '몸'이란 영성과 반대되는 인간 생명의 물질 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분리되지 않는 물질적인 동시에 영적인 인간 생명의 유기적 통합으로 여긴다. 구원이 이루어지는 영원한 생명은 몸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몸'을 그리스도의 지체, 성령의 성전이라고 일컫는다.

 

한편 영은 초월적인 것으로서 하느님 생명의 살아 있는 숨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총 그리고 믿음과 세례로 그분과 맺는 일치의 결과로 주어지는 영은 인간 존재의 깊숙한 곳, 인간의 삶 전체에 생기를 주며 그곳에 침투하고 일치하여 영적인 결실을 맺게 한다. 바오로에게 '영'은 그러한 신적인 '영'에 살지 않는 인간의 삶이다. 이 삶은 죽음을 향해 운명지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죽음 자체이다.

 

희랍적 이원론과 달라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바오로가 구별한 '육'과 '영'의 이중성을 희랍적 사고나 영지주의의 이원론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육'이 인간의 육체적 본성과 공통적인 것은 아무 것도 지니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바오로는 드물기는 하지만 '육'이란 단어를 써야 할 곳에 유사한 의미로 '몸'이란 말을 사용하는 경우(로마7,24;1고린9,27;로마8,10-11참조)가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갈리디아에서 '영'을 따라 거닐기를 권고하면서 '육'의 행실들과'영'의 열매들을 나열한 후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은 육을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갈라5,24).

6) 바오로는 율법과 성령 혹은 율법과 은총을 대조시키면서 인간의 의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 은총임을 강조한다. 그는 그 가르침을 특별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전개한다. "여러분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로마6,14)."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갈라5,18).

 

바오로에 의하면 율법이란 십계명에서부터 옛 계약 전체에 분포되어 있는 광범위한 의미와 내용을 지닌다. 그는 인간이 그러한 율법의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에 반대하여 이렇게 선언한다."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아무도 하느님 대전에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율법은 단지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알려 줄 따름입니다"(로마3,20)"우리는 사람이 의화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갈라2,16)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안에서 은총에 의한 죄인의 의화는 단순히 외적, 법률적인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정의를 전가하는 것(imputation)도 아니다(로마4장 참조).그것은 인간이 성령에 의해 변화(transformation)되는 것이다(로마5,17,20참조).

 

율법의 목적 · 종점은 그리스도

 

바오로는 은총이 율법을 대신하고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고 주장한다(갈라5,18참조).율법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후견인 역할을 하며(갈라3,24참조),그러므로 율법에 의한 은총(성령)의 대립은 법의 폐지가 아니라 완성으로서 초월성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성령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랑할 힘 갖도록 해주는 선물"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의 최고 선물이며 성령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랑할 힘을 갖도록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7)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체험한 위대한 '회심자'였다. 광신적 바리사이파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에 혹독한 박해까지 서슴지 않았던 그가 모든 정열을 쏟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복음 선포에 목숨 바쳐 헌신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놀라운 은총 때문이었다.

 

 

 

 

 

  시성이란       성인이란      시복이란       복자란       성인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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